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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봄볕 익는 호산죽염 된장농원의 이정임씨, 된장에 울고 웃는 장독 人生
봄볕 익는 호산죽염 된장농원의 이정임씨, 된장에 울고 웃는 장독 人生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6.05.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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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증평의 된장농원에 늘어선 장독대 풍경.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증평의 된장농원에 늘어선 장독대 풍경.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증평] 쉽게 쓰고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더 맛이 나는 것이 있다. 숙성될수록 깊은 맛이 배어나오는 친구와 된장이 그것이다. 생각만 해도 구수하고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된장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 충북 괴산으로 떠나 보았다.

된장에 얽힌 찐~한 추억
괴산의 한 된장농원. 알알이 터지는 산수유 꽃망울이 봄소식을 전해주는 가운데 포근한 봄 햇살을 받은 장독대 4,000여개가 줄지어 있다. 셀 수 없는 된장독 가운데서 봄바람 끝에 술술~ 실려 오는 된장냄새를 맡는데 전혀 낯설지가 않다.

어릴 적 된장에 얽힌 추억 때문일까? 다섯 살 무렵, 양봉을 하는 친척집에 갔다가 꿀벌을 벌레인줄 알고 몇 마리를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 순간 벌들이 웅웅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콧구멍 안으로 쑥 들어온 벌이 침을 놓고 나갔다.

침을 맞은 곳이 점점 부풀어 한쪽 코로 겨우 숨을 쉬는데, 벌에 쏘인 데는 특효약이라며 증조할머니가 발라준 약이 바로 ‘된장’이었다. 손녀를 사랑한 마음이 이처럼 구수했을까? 코 안에 된장을 듬뿍 발라 ‘된장소녀’라는 별명을 얻었고, 쏘인 자리가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무려 세 달을 된장과 함께 살았다.

지하 130m에서 나오는 '옻샘'으로 만든 이곳의 된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지하 130m에서 나오는 '옻샘'으로 만든 이곳의 된장. 사진처럼 3년 묵어 잘 익으면,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하고 메주를 푸는 '장가르기'를 한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처음엔 너무 가까이(?) 맡아 어지러웠던 된장냄새가 이제는 증조할머니의 향수를 대신하는 추억이 된 지금도 그 향기는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예전에 집집마다 된장을 담아 먹던 시절에는 주부들이 목욕재계하고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한 상태에서 날을 받아 만들었단다.

요즘은 대부분 사서 먹지만, 칠순이 넘은 외할머니는 아직도 전통 방법으로 장을 담가 딸이며 아들에게 보낸다. 설 명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주를 만드는 할머니 곁에서 이젠 그만 만드시라고 했더니, “나 죽으면 이제 사먹을 거 아녀. 죽기 전까진 담가 줘야지!”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생각하긴 싫지만, 된장을 사먹게 된다 하더라도 할머니의 체취가 담긴 된장 맛에 비하진 못할 것이다. 킁킁대며 손사래를 치던 퀴퀴한 냄새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촉촉이 젖어온다.

예전부터 피부병이나 옻 올랐을 때 옻샘물로 목욕을 하며 피부가 좋아져서 옻샘이라 불리며 수질검사에서 1급수로 나왔다고 한다. 때마침 1급수에만 산다던 도룡농이 알을 낳았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예전부터 피부병이나 옻 올랐을 때 옻샘물로 목욕을 하며 피부가 좋아져서 옻샘이라 불리며 수질검사에서 1급수로 나왔다고 한다. 때마침 1급수에만 산다던 도룡농이 알을 낳았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된장에 인생을 걸다
인삼이 유명한 괴산에서 비좁은 굽이길인 질마재를 지나면 죽염으로 전통 된장을 만드는 호산죽염된장농원이 나온다. 지금은 큰 농원이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숨겨진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지금부터 딱 9년 전인 1997년 4월, 된장농원의 주인인 이정임씨는(여자 이름 같지만 남자) 가족과 함께 단돈 7만원을 들고 도망치다시피 부천에서 청주로 왔다. 유통업으로 잘 나가다, 빚보증이 잘못되어 속된 말로 하루아침에 ‘쪽박을 찼다’. 빚쟁이를 피해 숨어사는 입장이었지만, 아내와 세 아이들 때문에라도 다시 일어서야 했다.

집도 없어 작은 절에 몸을 의지하며 살다가 스님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죽염이 몸에 좋다는 말에 제대로 배워보기로 했다. 대나무 통 안에 소금을 넣고 극도의 고열에서 아홉 번을 구워 죽염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이정임씨는 망가졌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의지를 얻었다.

된장농원의 이정임씨 부부.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된장농원의 이정임씨 부부.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내친 김에 된장 만드는 법도 배워 콩을 대량으로 사서 된장을 담갔다. 아내와 세 아이들과 담근 된장이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아 어렵게 대출까지 받아 많은 양을 담갔는데, 아 글쎄, IMF가 터졌다. 또 한번, 빚쟁이들이 몰려와 컨테이너로 지은 집의 문짝까지 떼 갔다.

이제는 세상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즈음, 시골에 광명(光明)이 비춰졌다. 혹독한 IMF바람이 지나간 곳엔 명퇴한 이들의 귀농열풍이 불어 귀농비법을 전수받고, 죽염된장을 맛보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신바람이 난 된장장수 이정임은 계속 된장을 만들었고, 바닥까지 추락했던 그는 정부에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어 상도 받는 상상도 못하는 기쁨을 느꼈다.

농장주변에 핀 산수유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농장주변에 핀 산수유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구수한 된장문화를 기다린다
“뭐든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사니까 되더라고. 한데, 맛이 없으면 누가 사겠어. 130m 지하 암반수에 국산콩과 죽염으로 만들어. 전통 된장은 공기와 접촉하면 새카맣게 변해서 스님에게 물어보니 방부제를 넣으면 안 변한데. 우린 못 넣어.”

높다란 돌장승이 서있는 뒤편에는 그의 집과 식당, 황토집들이 차례로 지어졌다. 농장 한켠 식당에는 무공해 밑반찬이 나오는 된장정식을 판다. 지금도 새벽 4시면 일어나 된장독부터 살피는 그의 진짜 계획은 따로 있다. 사라져버린 된장문화를 되살리는 것.

토우는 아이들을 위한 주인의 배려이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토우는 아이들을 위한 주인의 배려이다.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직접 담는 된장문화를 썩히기 아까워 봄가을에 된장체험행사를 열고, 언제 어느 때고 된장이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장으로 만드는 꿈을 갖고 있다. 궁상을 떨 것도 없었던 시절에 비해 가진 여유를 이제 소년소녀가장에게 돌려준다.

다음날 일찌감치 콩을 삶고 주걱을 휘휘 저어가며 만든 뜨끈한 손두부를 3년 묵은 김치와 함께 내놓으며 하는 말. “이거 진짜 영양 덩어리유~.” 햇살 받은 장이 맛있게 익어간다.

공림사.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공림사.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주변여행지 
● 공림사
된장농원에서 차로 20분 거리에는 신라 48대 경문왕 때 자정선사가 창건한 낙영산이 있다. 흰 바위산으로 유명한 낙영산 자락에는 공림사(空林寺)가 있다. 조선 중기에는 법주사보다 더 흥한 절이였지만, 전란으로 소실되어 근래에 다시 재건했다.

공림사 앞에는 1천년 된 웅장한 느티나무가 천년고찰과 어울려 한결 운치 있다. 인근에는 일본의 남쪽지방과 중국의 중부지방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식물이며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천연기념물 제266호, 망개나무를 볼 수 있다. 아담하고 조용한 사찰이라 가벼운 산책과 데이트 코스로 알맞다.

화양계곡 풍경.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화양계곡 풍경. 2006년 5월. 사진 / 박지영 기자

● 화양계곡
5월이면 좀 이르지만, 괴산에서 맑은 물을 보고 싶다면 주저 말고 화양계곡을 권한다.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 선생이 노년을 보냈던 그림 같은 풍광의 암서재와 300여평의 금모래 사장이 있어 가족단위로 반나절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화양계곡의 하류에는 야영장에서 화양대교까지 느티나무가 기다란 터널을 이루고 있는데 자동차를 두고 걸어서 가면 숲의 상쾌함과 계곡의 시원함을 두루 느낄 수 있다. 암서재 근처의 <화양식당>은 계곡의 풍광과 민물매운탕, 막걸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 괴산 증평 5일장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농원에서 가까운 증평에 5일장이 열렸다. 음성과 괴산, 진천과 청원 등 충북의 4개 군의 접경지에 위치하여 예전부터 충북의 유명한 장터였다고 한다. ‘살짝 둘러나 볼까?’ 하던 마음으로 장의 초입에서 어슬렁 거렸다가 점점 들어갈수록 볼거리가 많아 장장 2시간을 소비했다.

증평의 특산품인 인삼을 비롯해 태양고추, 대명한차, 백삼, 홍삼 등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특산물과 봄에 나온 싱싱한 채소며, 씨앗, 금방 짠 참기름, 병아리, 오리, 대장간에서 만든 도구 등 없는 게 없어 보인다.

‘뻥이요~ ’하고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뻥튀기와 할머니들이 직접 만들고 재배한 도토리묵, 콩, 두부 등을 광주리에 늘어놓고 파는데, 만원 한 장 달랑 들고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한 끼 차려도 푸짐하겠다. 무엇보다 증평장은 시골의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순박한 정이 있어 좋다. 증평읍 중동에서 매달 1일과 6일에 열린다.

Info 가는 길
자가운전 _ 중부고속국도 증평IC → 증평읍내 파크호텔 앞에서 좌회전 → 주유소 옆 우회전 → 직진하다 청안고개 넘어 청천 지나 → 호산죽염된장농원
대중교통 _ 서울 동서울터미널 → 증평 → 청천행 버스 → 호산 된장공장에서 하차. (2시간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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