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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한국의 세계유산 시리즈 - 아리랑①] 익숙한 흥겨움과 새로 만든 아리랑극, 밀양 아리랑
[한국의 세계유산 시리즈 - 아리랑①] 익숙한 흥겨움과 새로 만든 아리랑극, 밀양 아리랑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9.09.11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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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대표 민요, 밀양 아리랑
아리랑아트센터, 밀양 아리랑 공연 및 전수해

[여행스케치=밀양] 밀양시에는 아리랑아트센터가 있다. 아트센터에는 전시관과 공연장, 체험전수관이 있다. 전시관에서는 밀양아리랑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리랑아트센터는 오직 밀양아리랑을 공연하고 전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밀양시민들은 물론,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밀양아리랑을 쉽게 이해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시장에는 밀양아리랑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아리랑의 역사를 알기 쉽게 정리해 두었다. 

새로 창작한 점필재아리랑극을 공연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새로 창작한 점필재아리랑극을 공연하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독립군이 즐겨 불렀을, 밀양아리랑
김원봉, 윤세주 등 밀양 출신 독립군이 워낙 많아 밀양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사나 독립군들이 밀양아리랑을 즐겨 부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타국살이를 하는 동안 고국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불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밀양아리랑에는 밀양의 역사가 담겨있다. 공연장에서는 향토 소리꾼들이 전통 밀양아리랑을 부르고, 어린이들이 현대적 감각에 맞춘 아리랑극을 보여준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면 아리랑이 왜 수백 년 동안 시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며, 앞으로 계속 전승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아름다운 편곡이나 재미있고 유익한 개사 등 새롭게 창작한 콘테츠가 구경꾼의 시선을 붙잡는다. 

밀양 어린이들이 꾸민 밀양아리랑 창극 장면.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 어린이들이 꾸민 밀양아리랑 창극 장면. 사진 / 박상대 기자

아리랑공연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마다 공연을 한다. 아리랑공연은 아랑낭자의 가엾은 죽음을 모티브로 삼은 아랑아리랑,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두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선비정신을 담은 점필재아리랑, 밀양시어린이들이 꾸민 아리랑 친구들과 날 좀 보소~ 등을 공연한다. 

밀양아리랑 전수관에서 밀양아리랑을 배우고 있는 여행객들.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아리랑 전수관에서 밀양아리랑을 배우고 있는 여행객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객도 배울 수 있는 밀양아리랑 체험
밀양아리랑 전수관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아리랑을 부를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장단을 맞추기 쉽도록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선생님이 장구 장단 맞추는 법을 가르쳐주고, 아리랑 가락을 가르쳐 준다. 아리랑 장단은 꼭 장고나 북 같은 악기가 없어도 장단을 맞출 수가 있다.

나무꾼들은 지게와 작대기로 장단을 맞췄고, 밭에서 일하던 어머니들은 호미자루로 땅을 치며 장단을 맞췄다. 체험전수관에서도 마찬가지. 물바가지를 두드리기도 하고, 지게 작대기나 작은 막대기를 때리기도 한다. 밀양아리랑은 장단이 경쾌하다.

박수를 치면서 따라 부르면 엔돌핀이 솟는다. 경쾌한 장단과 달리 밀양아리랑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면 너무나 슬픈 전설이 등장한다.

밀양아리랑 전시관. 아리랑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아리랑 전시관. 아리랑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옛날에 이모(某) 밀양 부사에게 아랑(阿娘)이란 고운 딸이 있었는데, 관아의 심부름꾼인 통인이 침모를 시켜 아랑을 데리고 영남루 바위 위로 달구경을 나오게 했다. 아랑이 달구경을 나오자 통인은 사모함을 고백한 후 욕을 보이려고 덤볐고, 아랑이 반항하자 칼로 찔러 죽였다는 것. 그리고 시신은 영남루 아래 대숲에다 유기하고 달아났다.

부사는 딸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밀양을 떠났고, 몇 년 후 다른 부사가 부임했다. 그 부사의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시신이 있는 곳을 일러 주었다. 그리고 낮에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놓으면 자신이 나비로 변신하여 범인의 머리 위에 앉겠다고 말하곤 사라졌다. 

부사는 꿈속의 여인이 일러준 대로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주고, 범인을 색출하여 처벌하였다. 그 후 밀양의 여인들이 아랑의 정절을 사모하여 ‘아랑, 아랑’ 하고 읊조린 것이 오늘날 밀양아리랑으로 발전하였다는 전설이다. 지금 영남루 아래에 아랑의 영혼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영남루 마당에서 백중놀이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 / 박상대 기자
영남루 마당에서 백중놀이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 / 박상대 기자

애절한 짝사랑을 담은 듯한 가사
밀양아리랑은 슬픈 전설과 달리 흥겹고 애절한 가사로 이루어졌다. 마치 시골에 사는 한 여자가 도시에서 유학하고 온 이웃집 남자를 향해 사랑과 간절함을 표현하는 듯하다. 사모하는 남자가 집에 온 것이 분명한데,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또렷한데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그와 눈빛을 마주치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은데… 임은 나를 눈여겨 봐주지 않는다. 여자는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싶지만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행주치마만 입에 물고 뒤란 장독대 앞을 서성이고 있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도 손에 땀이 나고 흥미롭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후렴)
정든 임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후렴)
(후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오늘의 밀양아리랑 가락은 60년대 어느 작곡가가 악보를 만들어서 정형화 되었다고 한다. 세마치장단에 맞추어 비교적 빠르며 경쾌하다. 첫음절이 ‘라’로 시작해 흥을 돋우고, 마지막 음절도 ‘라’로 끝내면서 여운을 남긴다. 

김금희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단장. 사진 / 박상대 기자
김금희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단장. 사진 / 박상대 기자

“밀양아리랑은 경상도의 대표 민요입니다.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현재의 노래이고, 미래에도 불리어야 하는 노래입니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계속 밀양아리랑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새로운 아리랑극을 창작 발표하는데 전국대회에서 수차례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금희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단장의 설명이다. 한편 전시관 외에도 밀양에는 조선 3대 누각에 꼽히는 아름다운 누각 영남루, 근현대문화유물이 전시된 박물관, 김원봉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생가와 항일운동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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