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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봄 볕 마중을 나가다(2) 전남 영암
봄 볕 마중을 나가다(2) 전남 영암
  • 김다운 기자
  • 승인 2016.04.07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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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차밭
​볕 따순 봄, 전라남도 영암엔 벚꽃비 예보가 발효된다. 연분홍 봄비 맞으며 2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마을과 비밀처럼 숨겨진 녹차밭, '학문의 신'왕인박사를 기리는 축제까지 두루 돌아보는 4월의 영암 여행.

 

약 20년간 덕진차밭을 관리하신 신내범 할아버지. 사진 / 김다운 기자.

[여행스케치=전남] 영암에도 녹차밭이 있다. 보성, 제주, 강진의 차밭과 비교하면 아담하기 그지없지만, 주변 경관을 놓고 보자면 앞서 언급한 곳들보다 못할 것도 없다. 앞으로는 월출산이 우뚝, 뒤로는 백룡산이 든든하니 말이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만큼 찾아가기도 힘들다.

덕진면에 있어 ‘덕진차밭’이라 부르는데, 일부 내비게이션에서는 운암제(저수지)를 목적지로 설 정해야 한다. 차 한 대 겨우 건널 만치 좁은 저수지 제방을 건너면 그제야 비밀처럼 숨겨진 약 6만㎡(약 2만 평)의 푸른 녹차밭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보는 월출산이 기가 막혀. 사진작가 하는 사람들도 가끔 찾아오는데 기자 양반처럼 큰 카메라 이고 지고 새벽부터 기다려. 어떨 땐 그림 그리는 사람도 오더라고. 차밭이랑 월출산이랑 같이 그려간다고. 다들 영암에 이런 명당이 있는 줄 몰랐대.”

안개가 내려앉은 덕진차밭. 사진 / 김다운 기자.

1980년대 초 처음 터를 일구고 종자를 심던 때부터 차밭을 관리했다는 신내범 할아버지는 10년 전 손을 놓은 뒤로 다시 올 일이 별로 없었다고 하면서도, 낯선 이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차밭을 안내해 주었다.

“이야, 참 좋네요.” 키가 작은 재래종 차나무 사이를 천천히 걷는 동안 목가적인 풍경에 걸맞게 바람도 숨죽인 듯 고요하다. 여느 유명 녹차밭처럼 관광객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기에 산책을 방해받을 일도 없다.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영암평야는 부드러운 어머니의 품을, 앞으로 우뚝 솟은 월출산의 풍채는 어릴적 보았던 아버지의 어깨를 닮았다. 그리 넓은 경지는 아닌데, 걷다가 쉬다가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진다.

"이 새순이 무럭무럭 자라서 4월이면 아주 부드럽고 따기 좋은 잎이 되지." 할아버지는 마치 옛날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며 찻잎을 만지작거렸다.

민속놀이 '도포제 줄다리기'. 사진 / 김다운 기자.

일본인도 찾아오는 남도의 축제
영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왕인박사는 일본왕의 초청으로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간 인물이다.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도공기술과 직조기술까지 전수하여 일본 문화사에 불후의 위업을 남겼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왕인을 '학문의 신' 또는 '아스카 문화의 시조'라 부르며 오래전부터 그를 기려왔으며, 오사카 히라카타시에는 왕인의 묘라고 전해지는 무덤이 남아 있다. 일본은 이 무덤을 사적 13호로 지정해 관리하는 중이다.

'영암왕인문화축제'는 4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구림마을 일대에서 펼쳐진다. 참가 인원은 어림잡아 백만 명. 그들 중엔 자신이 왕인의 후에라며 매년 찾아오는 일본인들도 보인다.

"뿌리에 대한 향수, 망향(望鄕)이지요. 그렇게 찾아 온 일본인들은 왕인박사의 영정 앞에서 꼭 고개를 숙이게끔 하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일본 사람이 우리 땅에서 고개 숙일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김희석 문화관광해설가의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백제시대 의복을 입은 아이들. 사진 / 김다운 기자.

영암왕인문화축제는 군을 대표하는 큰 행사인 만큼 역사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예열에 한창이다. 왕인의 정신을 기리는 예술대회와 천자문ㆍ경전 성독대회는 쟁쟁한 지식인들의 경연장으로 일찍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고, 왕인의 이야기를 담은 트릭아트는 여행자들을 위한 포토존이 될 에정이다.

줄다리기와 강강술래, 연날리기, 봄꽃으로 전을 부쳐 먹는 화전놀이 등 전통놀이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며, 상대포와 구림 마을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자전거 탐방, 왕인전통연희단과 KBS국악관현악단의 공연, 불꽃놀이, 도갑사 템플스테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흘의 일정을 빈틈없이 수놓는다.

100리 벚꽃길에서 열리는 '왕인박사 일본 가오' 퍼레이드. 사진 / 김다운 기자.

끝으로 폐막일인 4월 10일에는 왕인박사가 상대포를 떠나 일본으로 떠나는 장면을 재현하는 영암군민 1000여명의 행진 '왕인박사 일본 가오'가 100리 벚꽃길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정말이지 이번 봄엔 영암에만 머물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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