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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용궁으로 가는 기차역이 있다면, 예천 용궁역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용궁으로 가는 기차역이 있다면, 예천 용궁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0.01.10 1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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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토끼간빵'
정겨운 시장과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용궁양조장
부호 나무 황목근과 회룡포마을까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경북 예천에 자리한 용궁역 주변은 이름만큼이나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예천]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한자를 찾아보니 용왕이 산다는 ‘용궁(龍宮)’이 맞다. 혹시 용궁으로 가는 기차역일까? 엉뚱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은 간이역에는 이름만큼이나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다.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기보다 겨울 햇살처럼 차분하게 스며드는 정겨운 풍경들이다.  

경북 예천에 자리한 용궁역은 역무실과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간이역으로 운영된다. 역무실 자리엔 베이커리카페가 들어서 이름도 재미있는 ‘토끼간빵’을 판다. 기차역을 나서면 우시장으로 유명했던 용궁시장과 막걸리 익어가는 양조장, 세금 내는 나무 등 발걸음마다 이야기꽃이 활짝 핀다.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인 회룡포도 빼놓을 수 없다. 

용궁역에 가면 토끼간빵을 판다?
‘용궁’이란 흥미로운 기차역 이름은 사실 지명인 용궁면에서 따왔다. 예부터 이곳엔 ‘용담소(龍潭沼)’와 ‘용두소(龍頭沼)’로 불리는 깊고 푸른 못이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속에 용이 한 마리씩 살고 있다고 믿었다. 또 그 아래는 서로 통하여 하나의 용궁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용궁역 앞에 조성된 용 조형물은 간이역과 마을까지 지켜줄 것처럼 용맹한 자태를 뽐낸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이들 용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졌고, 가뭄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주민들이 함께 소에 모여 제사를 올리곤 했다. 본래 ‘축산(竺山)’또는 ‘원산(圓山)’으로 불리던 마을은 조선시대 들어 아예 지명을 용궁으로 바꾸었다. 아름다운 용궁을 품은 마을이란 의미다. 

1928년부터 기차 운행을 시작한 용궁역은 마을 사람들로 매일 북적였다. 근처 도시를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찻길이 나고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이용객은 점점 줄었다. 결국 지난 2004년에는 역장과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간이역이 되었다. 무배치간이역은 기차에 올라 역무원에게 직접 표를 사야 한다. 독특한 시스템 때문인지 열차 시간이 다가오면 꽤 소란스럽지만, 잠깐의 활기가 지나면 다시 시골 간이역의 느긋한 고요가 이어진다.  

용궁역에 내리면 역무원 대신 푸른색 비늘로 뒤덮인 용 조형물이 반겨준다. 힘차게 뻗은 꼬리와 용맹스런 눈빛이 작은 간이역은 물론 마을까지 지켜줄 것처럼 든든하다. 그 뒤로 보이는 역사는 1960년대 새로 지어진 것으로, 다홍빛 기와를 얻은 소박한 삼각지붕이 친근하다. 무엇보다 다른 기차역에서 보기 드문 분홍색 외벽이 청룡상과 어울려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별주부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토끼간빵.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별주부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토끼간빵.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역무실 자리에 마련된 제빵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차역 내 역무실이 사라진 자리에는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섰다. 제빵실까지 갖추고 직접 빵을 만든다. 그런데 이곳에서 파는 빵 이름이 재미있다. 고대소설인 <별주부전>에서 병든 용왕의 생명을 구하는 영약으로 표현되었던 토끼의 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토끼간빵’이란다.

실제 간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의 토끼간빵은 예천군 내에서 재배한 밀가루와 팥만을 이용해 만든다. 맛도 맛이지만 헛개나무 추출물을 넣어 실제 간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옛이야기까지 덧입혀지니 용궁역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색다른 별미로 인기다. 기차역을 둘러싼 담벼락에도 <별주부전> 이야기를 요약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또 다른 볼거리가 된다. 

INFO 용궁역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용궁로 80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용궁시장은 과거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만큼 많은 이들로 북적인 곳이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용궁시장으로 떠나는 정겨운 시간여행
기차역을 나서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용궁시장을 향한다. 상설시장이라 언제 가도 좋지만, 장날인 매 4, 9일엔 거리가 조금 더 활력을 띤다. 한때 우시장이 따로 열릴 만큼 규모가 상당했던 용궁시장은 일대 장사꾼들이 수십 리를 멀다 않고 달려왔던 곳이다. 지금의 용궁식 순대도 그 시절 소를 사고판 장사꾼들이 즐겨 먹으며 유명세를 얻었다고 한다. 돼지 막창에 푸짐하게 속을 채운 용궁순대는 매콤한 불 맛이 특징인 오징어 불고기와 환상적인 맛의 궁합을 자랑한다.

여기에 잘 익은 막걸리 한 잔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마침 시장 끝자락에 용궁양조장이 자리해 보글보글 술 익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용궁양조장에서 안주 대신 내놓은 굵은 소금.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어르신들이 용궁양조장에서 잔술을 맛보고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붉은 2층 건물은 단번에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95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당시 1층은 양조장으로, 2층은 사무실로 사용했다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술을 빚는다는 주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에서 술 배달을 시작했다. 지금의 건물이 세워지기 전이었고, 그때 주인은 대를 이어 막걸리를 만들었다. 어림잡아도 100년이 훌쩍 넘는 양조장인 셈이다.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술 담그는 법을 배웠다는 주인은 물맛 좋은 우물 덕분에 용궁막걸리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용궁시장의 오랜 터줏대감인 제유소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손때 묻은 장부가 제유소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듯하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분 좋은 취기와 함께 시장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맴돈다. 옛 방식 그대로 참기름과 들기름을 만든다는 제유소다. 용궁시장의 오랜 터줏대감인 탓에 한쪽 평상엔 장을 보러 나온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주인이 참깨를 볶아 기름을 짜는 동안 화려했던 용궁시장의 과거가 어르신들 입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만큼 사람들로 북적이던 장터. 기차역까지 끼고 있으니 장날엔 열차부터 시끌벅적했단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용궁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운영하는 카페 용궁.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카페 용궁에서는 옛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갓 짜낸 참기름 한 병 사 들고 카페 용궁으로 향했다. 용궁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가 운영하는 카페이자 마을박물관이다. 농약방을 리모델링한 카페 내부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널찍한 뒷마당에는 옛 용궁의 모습을 담은 흑백사진들이 벽 하나를 가득 채운다. 1930년대의 용궁면장 송별식과 우량아선발대회 등 사진 한 장 한 장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다. 순진한 눈매의 삽살개도 정답다.  

INFO 용궁시장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용궁시장길 9

INFO 용궁양조장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용궁로 139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수령이 500년에 이르는 황목근을 둘러보는 여행자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부호 나무 황목근과 물돌이 마을 회룡포
용궁역에서 약 2km 떨어진 거리에 우뚝 솟은 황목근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높이 15m에 줄기 둘레만 3.2m에 달하는 이 거대한 팽나무는 수령 500년에 이르는 고목으로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매년 봄이면 나무 전체에 누런 꽃을 피운다고 하여 ‘황(黃)’씨 성을,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단다.

그런데 이 황목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땅 부자’나무다. 실제로 황목근 앞에는 이 나무가 지난 몇 년 동안 납부한 세금 현황까지 기록돼 있다. 

알고 보니 1939년 금남리 주민들이 4,000평 남짓한 공동 소유의 토지를 이 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했고, 그때부터 황목근은 세금을 납부하는 담세목(擔稅木)이 되었단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주었던 나무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자는 마을 사람들의 뜻이었지만, 덕분에 일제강점기 혹독한 토지 수탈도 무사히 비껴갈 수 있었다. 게다가 황목근이 소유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이 낸 이용료는 마을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인다니 그야말로 나무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닐까 싶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회룡포 전경.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민간신앙에서 용왕을 모신 용왕각.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예천을 대표하는 여행지인 회룡포도 용궁역에서 멀지 않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잠시 속도를 늦추며 휘돌아 나가는 이곳은 안동의 하회마을, 영주의 무섬마을과 함께 아름다운 물돌이 마을로 꼽힌다. 회룡포를 한눈에 담으려면 비룡산에 자리한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항아리처럼 잘록했던 물길이 느긋하게 곡선을 그리며 흘러간다. 

가을에는 풍족한 황금 들판을 자랑하지만, 이 무렵엔 밭이랑까지 고스란히 드러나 차분하고 단정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몇 채 남지 않은 집에서 피워 올린 연기도 겨울 정취를 더한다. 전망대 가는 길에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선사가 창건했다는 사찰 장안사와 민간신앙에서 용왕신을 모신 용왕각이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INFO 황목근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 

INFO 회룡포
주소
경북 예천군 용궁면 향석길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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