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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2월호
[박상대의 섬 여행기 ①] 인생사만큼 아름다운 비렁길, 여수 금오도
[박상대의 섬 여행기 ①] 인생사만큼 아름다운 비렁길, 여수 금오도
  • 박상대 기자
  • 승인 2020.01.10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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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조성된 비렁길
18.5km가량 이어지는 5개 코스 구성
걷는 내내 푸른 바다와 자연 감상할 수 있어
사진 / 박상대 기자
여수 금오도 비렁길은 걷는 동안 시원한 바다와 아름다운 해안선을 구경할 수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여수] 아름다운 포구 도시 여수. 한해 관광객이 1000만 명 이상 다녀간다는 명품관광 도시에 진짜 ‘명품 길’이 있다.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는 금오도 비렁길 다섯 코스를 걷고 왔다. 

돌산섬 신기항에서 한림페리9호를 타면 20여 분만에 금오도 여천항에 내려준다. 배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하늘은 곱다. 연청색 하늘에 드문드문 하얀 구름이 노닐고 있다. 바닷물은 잔잔하다. 짙푸른 바다에 하얀 물결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거린다. 

비렁길을 걸으며 마주하는 인생
비렁길을 걷기 위해서는 여천항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함구미로 가야 한다. 함구미는 조용한 어촌마을이다. 좁은 골목길 초입에서 이정표를 따라 1분쯤 오르자 오솔길이 나온다. 찬 날씨에도 부지런한 동백이 빨갛게 피어 있거나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곧 터질 듯한 모습으로 진초록 이파리 사이에 숨어 있기도 하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 옆에는 사계절 꽃이 핀다. 겨울에는 동백꽃과 억새꽃이 피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제1코스 숲길을 걷는다. 어렸을 때 소풍을 가면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했다. 함구미마을에서 비렁길을 시작할 때도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함구미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저 멀리 고흥 땅이 바다 위에 앉아 있다.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와 각양각색 폼을 잡고 앉아 있는 섬들이 한가롭다. 섬은 늘 꿈길 같은 것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거의 날마다 산길을 걸었다. 산꼭대기에 이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였는데, 바다에서는 그리움이 피어났다. 

동백나무와 떡갈나무, 드문드문 후박나무도 보인다. 동백나무숲을 지나자 곧이어 신우대 숲길이 여행객을 반긴다. 신기하고 신기하다. 숲 사이로 길을 낸 것인지 일부러 대나무를 길가에 심은 것인지….

숲속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늠름하다. 오솔길 옆에는 동백나무에 빨간 꽃이 피어 있다. 참 곱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은 절벽을 따라 나 있지만 걷기 좋은 흙길도 자주 나타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INFO 금오도 비렁길
금오도 비렁길은 섬 해안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총 18.5km가량 조성되어 있다. 5개의 코스로 나뉘어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비경을 지닌 길이다. ‘비렁’은 벼랑(절벽)을 뜻하는 여수 사투리다. 
이동경로 1코스 함구미~두포, 2코스 두포~직포, 3코스 직포~학동, 4코스 학동~심포, 5코스 심포~장지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 절벽에 조성된 전망대.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전망대에는 절벽 이름과 시인들의 여수 관련 시가 걸려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번갈아 나타나는 오솔길과 비탈길
제2코스는 두포리에서 시작한다. 두포리는 포구가 비교적 넓은 마을이다. 아늑하고 평안해 보인다. 20대 청년기에 나의 앞날은 언제나 밝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누구 간섭도 받지 않고 펄펄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전하면 다 될 줄 알았다. 산길을 걷다 보면 평탄한 오솔길도 있고, 가파른 비탈길도 있다. 

비렁길에는 군데군데 데크 길이 놓여 있다. 절벽 위에 불가피하게 만들어 놓은 데크 길을 걸을 때면 안전하고 편리해서 좋다. 누군가 이 길을 놓느라고 수고를 많이 했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 있든 길을 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개척정신과 도전정신, 그리고 희생정신이 없다면 새 길은 열리지 않는다. 여행객은 그냥 그 길을 걸어갈 뿐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에는 위험한 절벽이 있고, 위험한 곳에는 안내판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어느 날 한 교수님이 그랬다. 청춘은 앞서 살다간 선지자, 선각자들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늘 앞서간 선배들에게 고마워하며 살라고. 선배들을 추월하고 싶은 도전정신은 좋지만, 선배의 흠결을 헤집고 앞서갈 생각을 하지 말란 것이었다.

낭떠러지 위에는 나무나 밧줄을 연결해 놓은 펜스가 있는데, 간혹 기둥이 흔들리거나 부서진 것도 있다. 나무 발판이 깨진 곳도 있다. 부서진 것을 아직 보수하지 않아서 위험하고 아쉽지만, 불만을 말하진 않기로 했다. 인생이 항상 탄탄대로일 수 없는 것처럼 섬에 나 있는 길도 모든 구간이 완벽하게 안전할 수는 없다. 좀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나 까마득히 높은 절벽 위를 걸을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수 금오도 지도. 일러스트 / 김지애 디자이너
여수 금오도 지도. 일러스트 / 김지애 디자이너
사진 / 박상대 기자
돌산읍 신기항에서 출항해 금오도 여천항으로 향하는 한림페리9호. 사진 / 박상대 기자

INFO 금오도 가는 배편
돌산읍 신기항에서 출항해 금오도 여천항으로 향하는 한림페리9호는 1일 7회 운항한다. 설ㆍ추석 등 명절과 여름 휴가철에는 선박을 증편해 매시간 운항한다. 백야도에서도 1일 4회 좌수영1호를 운항하며, 비렁길 1코스 인근인 함구미선착장에 닿는다. 
입도시간(돌산 신기~금오 여천) 오전 7시 45분, 9시 10분, 10시 30분, 오후 12시, 2시, 3시 50분, 5시
이용요금(편도) 성인 5600원, 학생 5000원, 경로 4500원, 소아 2800원
주소 전남 여수시 돌산읍 신기길 90(한림해운 신기선착장)

섬에 살다간 이들의 흔적을 되짚다
제3코스는 직포리에서 시작한다. 다른 구간과 마찬가지로 시작하는 곳은 포장길이다. 

30대를 사는 동안에도 나는 앞날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의 다리만 건강하면 어떤 길도 오르고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학동마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마을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다. 수령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수백 년 동안 저 자리에서 온갖 태풍과 폭풍우를 맞으면서도 꿋꿋이 견디고 있을 것이었다. 30대는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일가를 이루기 위해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을 걸으며 만난 여행객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에는 오래 전에 사람들이 살다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소나무들을 뒤로 하고 산길을 걷는데 제법 가파르다. 낭떠러지도 경사가 급하고 깊다. 바닷물이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가 거칠고 내뿜는 소리가 우렁차다. 교만하지 말자. 방심하지 말자. 

군데군데 사람들이 살다간 흔적이 남아 있다. 무슨 사연을 가지고 이곳 섬에 들어와 살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고 얼마나 큰 꿈을 꾸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들은 이미 낡은 흔적만 남겨두고 섬을 떠났다.

사람들은 떠나고 없는데 금오도 특산품인 방풍나물이 진초록 이파리를 자랑하고 있다. 겨울에는 질기고 독해서 먹지 않고 봄이 되면 새순을 뜯어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 3코스에서 바라본 절벽.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 3코스와 4코스 경계에 있는 마을에서 맛본 우럭매운탕. 주인이 낚시로 잡아 온 것이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비렁길을 걷다보면 카페와 작은 음식점들이 군데군데 자리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중년의 모습을 닮은 4코스
제4코스는 학동마을에서 시작한다. 멀리서 온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민박하고, 아침을 먹고 새길을 걷기 시작한다.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는 마을이다. 

여수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고 말하는 곳이다. 군데군데 절벽에다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시다. 바다에는 은빛 파도가 마치 나비 떼의 군무처럼 빛난다. 황홀하다. 한겨울에 이처럼 따사롭고 평화로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보약 한 재를 먹고 있다는 흡족한 마음까지.

인생 40대는 대부분 그렇다. 많이 가졌으나 넘치지 않게, 모자란 듯하지만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앞만 보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40대 중년의 참모습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서두르거나 과욕을 부리면 안 된다. 사고는 언제나 지나친 자신감과 교만함 혹은 조급함과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역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 무렵에 삼재가 끼었다고 주의를 준다. 재물과 건강과 명예를 잃게 된다는….

사진 / 박상대 기자
위험한 절벽과 경사가 심한 곳에는 데크 길을 조성해 놓았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길에 여유를 더하는 너덜지대
제5코스는 심포에서 장지까지 이어진다. 여전히 주변 경관은 아름답다. 파란 하늘은 의심할 여지 없는 축복이다. 절벽 위를 걸어도 불안하지 않다. 중간에 너덜지대가 있다. 오랜 세월 세찬 비바람을 겪으면서 깨지고 부서져서 흘러내린 돌무더기들이 쌓여 있다.

따지고 보면 너덜지대는 산길에서 장애물이나 마찬가지다. 한눈팔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돌무더기에 앉아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신다. 바닷바람에 땀이 녹아버린다. 마지막 지점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비교적 여유를 부리며 걷는다. 15km 남짓 걸어오는 동안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도 걷기에 최적화되고 있다. 근육과 폐가 탄력을 받아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생 50대를 살아본 사람들은 말한다. 50대가 되어서야 마침내 철이 들고, 인생을 알게 된다고. 익숙해지고 숙성된 삶이 오롯이 제 것임을 5코스를 걷는 동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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