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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시골장터기행] 충남 홍성 광천오일장
[시골장터기행] 충남 홍성 광천오일장
  • 전설 기자
  • 승인 2014.12.29 0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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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전설 기자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홍성] 아침바람 찬바람에 짠내가 실려 온다. 희미한 참기름 냄새도 솔솔. 짠내는 광천역 앞의 크고 작은 젓갈가게에서, 참기름 냄새는 그 맞은편의 ‘김 골목’에서 뭉글뭉글 새어 나온다. 김 굽는 냄새에 홀려 길을 건너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임금님도 즐겨 젓수었다는 광천김 유명세야 익히 알고 있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닷새마다 오일장이 열리는 광천전통시장 아니던가. 한달음에 역전 오른편에 줄을 선 젓갈가게를 따라 광천농협 방향 안길로 들어선다.

매월 4, 9일마다 오일장이 서는 관전전통시장. 직진하면 젓갈. 오른쪽은 오일장터. 사진 / 전설 기자
"딱굴 좀 들여가유" 말은 느려도 굴 까는 손은 눈에 안보일 정도로 빠른 장터의 굴 할매. 사진 / 전설 기자

 

“광천굴은 입에 쩍쩍 달라붙는 떡굴이유. 무쳐도 맛있고 지져도 맛있는 떡굴 좀 들여가유.” “민물새우가 죽지도 안고 팔딱팔딱 뛰어유. 무 납작하게 썰어다 지져먹으면 참 시원해유.”


남댕이 푸른 바다가 가깝다 보니 굴, 대하, 새조개, 아귀, 곰치까지 해산물의 빛깔이 하나같이 푸르싱싱하다. 시장 입구를 차지한 상인들은 큰 대야마다 오늘 들여 온 물건 중 가장 좋은 것을 내놓고 충청도 특유의 느리고 진득한 사투리로 손님을 부른다. 어린아이 달래는 말투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하지만 가만 들어보면 허투루 하는 말이 없다. “낙지가 다 잔놈이네. 다섯 마리 만원에 줘요.” 하는 막무가내 흥정에도 “잔 놈이든 문어든 그렇게 싸게 사 버릇하면 내가 큰일 나는 게 아니라 아저씨가 큰일나유. 다음에 낙지 살 때 아 그때 그 아줌마한티 그렇게 싸게 샀는디, 하면 제값내기 아까워서 살 수 있겄슈” 한마디 지는 법이 없다. 말문 막힌 중년 남성이 껄껄 웃으며 지갑을 여는 순간에도 “내가 바닷가 출신이라 말은 느려도 손을 빨라유” 능청을 떨며 낙지 대가리를 뚝 뚝 따는 손끝이 단단하고 굳세다.

시장 입구에서 광천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어지는 길은 하나의 커다란 장터다. 싱싱한 해산물부터 텃밭에서 키운 농작물과 쥐약이나 솜바지 같은 시골살림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차례차례 구경하며 지나오는 동안 어느새 장바구니도 묵직해진다. 장터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광천터미널 앞에서 옛날 사탕이 산더미처럼 쌓인 트럭을 발견한다. 유가 사탕, 땅콩카라멜, 호박젤리, 왕사탕…. 어린 시절 두고두고 아껴 먹었던 간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유가 사탕 하나를 까먹으며 미처 둘러보지 못한 시장 샛길로 향한다.

두고두고 먹기좋은 정한순 할머니표 밑반찬. 오독오독한 무장아찌가 특급 일품이다. 사진 / 전설 기자
광천시장 안쪽에는 크고 작은 젓갈가게가 조르르 모여 있다. 토굴에 곰삭은 새우 오젓, 육젓, 추젖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사진 / 전설 기자
낙지 몸값을 두고 유쾌한 승강이 한판. 오늘의 승자는 누구? 사진 / 전설 기자
광천전통시장 맛집 '한일식당'에서 푸짐한 젓갈백반을 맛본다. 흰밥에 황석어젓을 올려 김에 싸 먹는 그 맛, 한마디로 말하자면 "끝내줘유". 사진 / 전설 기자

장터 중앙이 생물로 가득한 해산물 거리라면 샛길에는 장날 맞춰 집에서 팔 것을 챙겨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난전거리다. 수많은 살 것 중에서도 된장에 삭힌 깻잎, 무장아찌 같은 집에서 만든 밑반찬에 마음이 동한다. 앞을 기웃거리니 정한순 할머니가 “혼자 살어? 그럼 이거 가져다 먹어. 밥 먹을 때 놓고 먹고, 라면 먹을 때 놓고 먹고 그려. 깻잎이며 고추며 우리집 밭에서 따다가 삭히고 절이고 한 겨. 암, 장날 반찬 팔러 나오면서 어서 사 왔을까봐?” 하신다. 못이기는 척 무장아찌를 손가락으로 집어먹는데 짭조름하면서 오독오독한 게 입맛이 확 돈다. 두고두고 먹을 량으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밀었더니 무장아찌를 비닐봉지에 꾹꾹 눌러 담으며 된장에 삭힌 깻잎과 고추를 또 몇 주먹 덜어주신다.

“이건 돈 안 받어. 맛보라고 넣는 겨. 먹어보고 맛있으면 또 와. 나는 장날마다 여기 있으니까 반찬 떨어지면 또 와.” 마지막으로 잔멸치 볶음 한주먹까지 챙겨주시면서 내어준 거스름돈은 5000원. 마트나 백화점의 ‘몇 그램에 몇 천원’ 단위에 익숙한 도시인에게는 지나치게 남는 거래다. 쭈뼛거리며 돌아서며 구수하고 짭짤한 장아찌 맛이 입안에 남아 입맛을 다신다. 사람의 인심에도 맛이 있다면 딱 이런 맛일 게다. 속임수 하나 없이 만든 밑반찬 같은, 정겹고 그리운 맛 말이다.

사진 / 전설 기자

미니인터뷰 - 옛날사탕 아저씨 김평국

옛날 사탕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먹는 사람이나 오랜만이지 파는 사람은 백날 천날 보는 건데 뭘. 그렇게 반가우면 많이 사가서 두고두고 먹어요. 사탕이고 엿이고 젤리고 한 바구니 꾹꾹 눌러 담아 5000원!

할아버지, 할머니들 사탕 많이 사시죠?
연세 있으신 시골 노인네들이 많이 사지. 옛날부터 많이 자신 맛이거든. 뭐 옛날 같지 않아서 시골에도 먹을게 많긴 한데 단감 이런 건 어르신들 먹기가 힘들다고. 딱딱하니까. 입이 쓰고 마르고 할 때 사탕만한 게 없어. 하나씩 까먹으면 얼마나 좋아.

제 또래 친구들도 많이 사나요?
사탕도 세대차이가 있어. 젊은 사람들은 유가 사탕이나 땅콩캬라멜같은 말랑말랑 씹는 걸 좋아하고, 할머니들은 이가 하나도 없어서 씹지를 못하잖아. 그러니까 입에 넣고 살살 빨아 먹는 왕사탕 같은걸 하는 걸 좋아하지. 종류가 많으니까 자기 입맛대로 사는 거지.

장날에는 항상 이 자리에 계세요?
그러지. 장날에는 여기 광천터미널 앞에 있어요. 시골 사람들은 장보고 가는 길에 터미널로 오니까 많이들 보라고. 서울서 오시는 분들도 광천오일장 오거든 터미널 들러서 옛날사탕 사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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