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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제주의 숨겨진 속살을 느끼는 여행, 산굼부리에서 이른 봄을 만나다
제주의 숨겨진 속살을 느끼는 여행, 산굼부리에서 이른 봄을 만나다
  • 조용식 기자
  • 승인 2020.01.16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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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도 억새를 만날 수 있는 산굼부리
구수한 제주 사투리 해설로 감칠맛 더해
옛 제주의 모습 간직한 유서 깊은 성읍민속마을
사진 / 조용식 기자
억새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굼부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닿게 된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억새를 만날 수 있는 산굼부리. 냉바리(아줌마)의 덕담 좋은 제주 사투리 해설이 감칠맛 나는 성읍민속마을에서 제주의 속살을 경험해 보자.

“바닥 면적이 2만9421㎡(8900평), 깊이가 132m나 되는 산굼부리에는 1900년 초까지 6가구가 농사를 짓거나 땔감으로 만든 숯을 내다 팔며 살았었죠.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서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지만, 헬기를 이용해 제초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한명금 세계자연환경해설사

세계 유일의 평지분화구, 산굼부리
하늘이 푸르른 제주의 겨울을 만끽하며 갈색의 억새를 만날 수 있는 곳, 산굼부리. 억새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굼부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함께 해설안내소를 만나게 된다. 산굼부리 전망대에서 만난 한명금 세계자연환경해설사는 “굼부리(분화구의 제주어)를 보면 대나무들이 보이는데, 제주에는 대나무로 이용한 생활 도구들이 많다”라며 ‟그중 하나가 대나무 3개가 걸려 있는 제주의 대문”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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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는 구상나무. 사진 / 조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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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돌담길이 반겨주는 산굼부리 산책길. 사진 / 조용식 기자

산굼부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는 구상나무가 집단 서식하는 구상나무 길이 있다. 우리나라 토종나무인 구상나무는 해발 500~2000m의 습기가 많은 숲속에서 잘 자란다. 제주 방언에서 구상나무는 잎이 성게 침이 사방으로 난 것과 닮았다 하여 ‘쿠상낭’이라고 하는데 쿠상은 ‘성게’, 낭은 ‘나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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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분화구 옆에 조성된 사슴상. 사진 / 조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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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굼부리에서 직사각형의 담으로 둘러싸인 무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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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평지 분화구 모습. 사진 / 조용식 기자

사슴상 정면에는 꽃굼부리라고 불리는 잔디정원과 함께 직사각형으로 담이 쌓여 있는 5~6개의 무덤을 발견할 수 있다. 묘에 담을 쌓는 이유는 방목으로 키우는 소나 말이 묘를 파헤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묘 주변의 담은 지인들이 쌓은 것으로, 예전에는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해서 부조금 대신에 담을 쌓아주는 풍습이 생긴 것이다. 담의 모양은 반듯한 것에서부터 비딱하게 쌓인 담까지 다양한데, 이를 보고 사망자의 덕목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 / 조용식 기자
꽃굼부리를 통해 과거 장례 풍습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또한, 담 한쪽으로 구멍을 내어놓았는데, 이는 귀신들이 드나드는 시문이 라고 부른다. 산에 담이 쌓여 있으면 산담, 밭에 있으면 밭담, 집에 있으면 집담이라고 부른다.

INFO 산굼부리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263호. 개인·단체 구분 없이 시간에 맞춰 해설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해설 시간은 오전 2회(9시 30분, 10시 30분), 오후 3회(2시, 3시, 4시) 이루어진다.
운영시간 11~2월 오전 9시~오후 5시 40분, 3~10월 오전 9시~6시 40분(연중무휴)
이용요금 성인 6000원, 청소년·경로·장애인 4000원, 어린이 3000원
주소 제주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문의 064-783-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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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돌하르방 오른손이 위에 있으면 문신, 왼손이 위에 있으면 무신을 뜻한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제주의 실생활을 그대로 만날 수 있는 성읍민속마을
“냉바리는 아줌마, 비바리는 아가씨, 동바리는 총각 그리고 장가간 아저씨는 왕바리라고 했어요. 예전의 제주도는 남자가 단명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임금님처럼 논다고 해서 왕바리라고 부릅니다.”- 김희정 성읍민속마을 부녀회원

제주어로 ‘바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군대 간 사람을 군바리, 일본 사람을 쪽신 신었다고 해서 쪽바리, 안내하는 사람은 시다바리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말들이 제주어였다는 사실은 새롭게 느껴진다.

김희정 성읍민속마을 부녀회원이 땅을 발로 치니 “쿵쿵” 하는 울림이 들린다. 제주는 비가와도 물이 아래로 스며드는 특성이 있어서 집집이 항아리에 물을 받아둔다. 나무 옆에 세워둔 항아리에는 새끼를 꼰 억새가 빗물의 먼지나 벌레 등을 여과하는 필터 역할을 한다. 물은 고이면 썩기 때문에 살아있는 개구리 한 마리를 넣어 두는데, 개구리가 산소 공급을 해주고, 미생물들을 먹으며 정화를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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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지 솥을 들고 피난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부뚜막이 없는 부엌. 사진 / 조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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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의 실생활을 만나볼 수 있는 성읍민속마을. 사진 / 조용식 기자
사진 / 조용식 기자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물항아리와 아이바구니. 사진 / 조용식 기자

제주의 부엌은 도심이나 시골처럼 방과 연결되거나 공유되지 않고 따로 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칭기즈칸 삼별초 난으로 96년간 지배를 당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솥을 들고 피난을 떠나야 해서 부뚜막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는 먹고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며느리라도 시부모에게 밥을 주지 않았으며, 각자가 따로 해 먹어야 했다. 그래서 제주의 옛 부엌에서는 크기가 다른 솥을 여러 개 볼 수 있다. 제주의 초가지붕은 가을에 억새를 베었다가 매년 2월 말쯤에 초가지붕을 갈아준다. 그 이유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면 지붕이 까지고 썩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진 / 조용식 기자
성읍민속마을 입구. 사진 / 조용식 기자

INFO 성읍민속마을
조선 태종 10년(1410)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이 세종 5년(1423) 현재의 자리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성읍민속마을 부녀회 회원들이 무료로 안내하며, 입구에서는 고사리, 나물 등 제주도 특산품을 판매한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정의현로 19 성읍마을
문의 064-710-6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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