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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공새미가족 사물놀이 세계기행] 세계일주의 끝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 마지막 공연, 그리고 歸鄕
[공새미가족 사물놀이 세계기행] 세계일주의 끝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 마지막 공연, 그리고 歸鄕
  • 김영기 기자
  • 승인 2006.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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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릿지. 오페라하우스는 접시 위에 깎아놓은 오렌지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여행스케치=호주] 세계여행을 떠나온 지 10개월. 산더미같은 짐을 이끌고서 7살 막내딸까지 다섯 식구가 모두 함께 한 여행이었다. 304일간의 긴 여정의 끝인 시드니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아쉬운 밤을 보낸다.

조용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현정이의 생일
45일간의 남미 여행을 마치고 세계일주 마지막 대륙인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일주일간의 뉴질랜드 북섬 여행을 마친 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그리고 막내 현정이의 생일도 크리스마스 날로 정했다. 원래 1월 7일인 현정이의 생일이 크리스마스로 정해진 사연은 이렇다.

세계일주를 나와서 현정이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해외에서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현정이도 1월초, 태국에서 맞을 생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여행이 1개월 단축되면서 현정이의 꿈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다른 식구들의 생일 때마다 정성껏 선물과 카드를 준비하곤 했던 현정이가 실망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가족의 합의 하에 현정이 생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모두 현정이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각자 준비한 생일 축하 카드와 선물을 건넸다. 기뻐하는 현정이의 해맑은 모습을 보니 다른 식구들이 더 기쁘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크리스마스 날에 시드니 숙소에서 벌인 공연.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남반부에서 맞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였지만 날씨는 여름이 아니다. 종일 하늘은 찌푸리고 바람도 세차게 불어 우리의 늦가을처럼 서늘하다. 저녁 7시가 되자 숙소 마당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열렸는데, 바로 우리 가족이 사물놀이를 공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40~50명의 숙박객들이 흥겨워 하자 우리도 덩달아 신이 났다. 특히 숙소 주인의 부모님인 독일인 부부는 훌륭한 연주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막내 현정이는 한복에 산타 모자를 쓰고 공연을 했는데, 오늘도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공연이 끝나자 각자 준비한 빵과 음식들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겼다. 이곳에서 맞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조용하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때문에 길거리뿐 아니라 어디를 가도 크리스마스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숙소도 하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에 숙박객들이 돈을 모아  마당에서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공연을 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조용한 크리스마스라지만 젊음을 주체할 수 없는 숙소의 각국 젊은이들은 밤늦게까지 산타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고, 서로 어울려 즐긴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사물놀이 세계기행의 마지막 공연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했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오페라하수의 울려퍼진 사물놀이
저녁식사 후 공연복으로 갈아입고 악기를 챙겨서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오늘밤이 세계일주의 마지막 밤이다. 어제 숙소 크리스마티 파티에서 공연을 했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한 번 더 공연을 싶어 호주의 한인회나 한인단체에 연락을 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다. 역시 자유롭게 우리끼리 공연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그래서 세계일주의 마지막 밤에 마지막 공연을 시드니의 상징인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저녁 햇살을 받은 오페라하우스는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설장고부터 시작했다. 한국인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이동하는 길목이라 대부분 스쳐 지나갈 뿐이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뉴질랜드 로토루아의 마오리족 마을.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마오리족 공연.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설장고가 끝나고 웃다리 사물놀이의 짝쇠 부분에 들어갈 즈음 관리인인 듯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여기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 공연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자리를 조금만 이동하면 괜찮다고 했지만 그쪽엔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것 같아 아예 서큘러키 부두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예상대로 서큘러키에서는 관객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웃다리와 승무북, 영남사물을 연달아 연주했다. 둘러섰던 한국인 관광객들이 ‘원더풀’, ‘잘한다’ 를 외쳤다. 덩달아 흥이 난 외국인 관광객들도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성공적으로 세계일주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의 야경을 천천히 구경하며 세계일주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다.

오늘이 세계일주의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 동안 힘들었던 기억과 즐거웠던 기억이 하나 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처음에 여행했던 인도와 중국은 마치 10년 전에 다녀온 것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시드니 항구 전경.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호주의 그랜드 캐넌인 블루마운틴. 2006년 5월. 사진 / 김영기 기자

여행의 1년은 일상의 10년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예기치 않은 이벤트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시간을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이벤트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1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생긴 이벤트의 수는 틀이 박힌 일상에서 생기는 10년 동안의 이벤트보다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10년 동안의 세월을 압축해서 보낸 셈이다. 나와 아내야 10년이 지난들 정신적으로 크게 변하랴 만은, 이제 한참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세월인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면서 일본 젊은이들에게 우리들이 세계일주를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세계일주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천천히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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