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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내 취향대로 떠나는 늦겨울 삼색여행①] 포항 구룡포 과메기와 영일대 전망대 야경
[내 취향대로 떠나는 늦겨울 삼색여행①] 포항 구룡포 과메기와 영일대 전망대 야경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1.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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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한겨울이 더 화려하게 느껴지는 구룡포 해안. 사진 / 박지원 기자

과메기 본고장의 민낯

[여행스케치=포항]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과메기~” 급조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포항 구룡포 해안도로에 접어들자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의 새하얀 포말이 시신경을 자극한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길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구멍가게 앞에 아무렇게나 차를 대고 내린다. 제법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 안면을 때리더니 짭조름한 바다내음을 퍼트린다.

챙겨 내린 카메라를 재빨리 꺼내 들고 겨울바다에 취한 사람마냥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감탄사를 연발하는데 뒤통수가 찌릿찌릿 따가운 느낌이다. 뒤돌아보니 누가 봐도 가게 주인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우두커니 서 있다. 장사하는 가게 앞에 이따위로 차를 대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따져 물을 것만 같다. 끊기로 다짐한 담배라도 사야하나 생각하다 냉큼 차를 빼는 게 능사다 싶어 아주머니에게 어색한 눈인사를 한번 건네고 자동차 문 꼬리를 잡는다.

그 찰나 어디서 왔느냐는 아주머니의 물음에 서울서 과메기 먹으러 왔다가 바다가 멋져 잠시 차를 세웠다고 답한다. 그러자 “거서 사 묵지, 뭐 한다꼬 여까지 왔능교.”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이에 “구룡포에서 과메기를 먹어야 서울 가서 자랑이라도 하죠.”라고 아부 아닌 아부로 맞선다. 넉살 좋은 응수 덕택일까.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이 쫌 아는가배. 과메기 카면 구룡포지예.”라며 과메기 덕장 몇 곳을 알려주고는 맘이 동하면 가보라고 일러준다.

점빵 아지메의 말처럼 구룡포하면 과메기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국어책의 철수라고 하면 단짝인 영희가, 길거리 노점의 떡볶이라고 하면 따끈한 어묵 국물이 자연스레 연상되듯이 말이다. 알다시피 구룡포는 겨울이면 전국의 미식가를 불러 모으는 과메기의 원조 고장이다. 원조라는 칭호에 걸맞게 매년 이맘때의 구룡포는 지천에 널린 과메기 덕장이 진풍경을 연출한다.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옥빛 바다를 배경으로 해풍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과메기를 보고 있노라면 이색적인 풍광에 눈이 즐겁고, 무엇보다 침샘이 폭발하고 만다.

원래 과메기는 ‘관목청어’라고 해서 꼬챙이로 청어의 눈을 꿰어 말린 음식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동해안 지역 사람들은 처마 밑에 묶어둔 청어가 적당히 건조되면 먹곤 했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청어 어획량이 줄어들자 청어를 대신해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구룡포에서 청어 과메기를 맛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청어를 취급하는 덕장이 구룡포에 있고, 구태여 덕장이 아니라도 죽도시장에 가면 구입할 수 있다.

최가네구룡포과메기의 최호등 대표. 사진 / 박지원 기자
구룡포 덕장에서 꾸덕꾸덕 말라가는 과메기. 사진 / 박지원 기자

 

해풍에 익은 제철 과메기
“양질의 꽁치, 손질하는 방법, 해풍의 세 가지 요소가 과메기의 맛을 좌우하지요.” 과메기 익는 향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해 찾아간 ‘최가네구룡포과메기’ 덕장. 이곳에서 만난 최호등 대표가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받아 과메기와 동고동락한 지도 벌써 12년째다. 그는 제대로 된 과메기의 풍미는 재료, 손질, 바람의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고 철분 함량이 높은 꽁치는 9~11월에 잡혀요. 다른 시기에 잡는 꽁치로는 과메기의 참맛을 낼 수 없지요.” 최 대표의 덕장에서는 부산과 남태평양에서 잡아 올린 꽁치를 쓰는데, 시중에 유통되는 것과 달리 150g 이상 되는 1등급 꽁치만 취급한다. 손질은 최 대표를 비롯해 부모님의 비법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숙련된 작업자들에게 맡겨지는데, 꽁치의 내장 등을 제거한 후 해수에 2번, 민물에 1번 세척하는 과정을 거쳐 덕장으로 향한다. 덕장으로 자리를 옮긴 과메기는 염분 섞인 바닷바람이 타 지역보다 많이 불어오는 구룡포의 이점을 활용해 악천후가 아닌 이상 3~4일간 자연 건조한다. 최 대표의 덕장은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해안가에 덕장을 마련하면 자동차 매연에 노출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눈이나 비가 내리면 실내 건조장으로 신속하게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과메기는 손질 방법에 따라 통마리 과메기와 배지기 과메기로 구분한다. 통마리는 말 그대로 20마리의 꽁치를 통째로 새끼줄에 엮어 2~3주간 말리는 과메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삼한사온이다. 3일간 춥고 4일간 따뜻한 날씨에 말려야 되는데, 근래 삼한사온 현상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통마리 과메기를 찾는 이들도 급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최 대표의 덕장에서는 지난해를 끝으로 통마리 과메기의 생산을 중단했다. 배지기는 머리, 내장, 뼈를 제거해 3~4일간 말리는 것으로 주위에서 흔히 접하는 과메기가 다름 아닌 배지기다.

향토음식에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음식으로 거듭난 과메기는 고단백 영양식품이다. 성인병 예방에도 탁월하고 피부미용에도 좋아 남녀노소 누구나 젓가락을 든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게 하는 별미다. 과메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배춧잎에 김을 깔고 그 위에 생미역에 둘둘 말아 초장에 푹 찍은 과메기를 얹은 후 실파와 마늘 등을 곁들여 입안으로 가져가면 된다. 정 귀찮으면 과메기만 초장에 찍어 먹어도 무방하다. 쫀득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 밥과 함께 먹으면 뜻밖에 ‘밥도둑’이요, 술과 함께 먹으면 마땅히 ‘술강도’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구룡포 여행객. 사진 / 박지원 기자
뜻밖의 황홀경을 선사한 포스코 야경. 사진 / 박지원 기자

 

밤바다 황홀경에 풍덩
과메기로 입이 호사를 누렸으니 이젠 눈이 호강할 차례. 시동을 켜고 내달리는데 지척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가 둥지를 트고 있다. 영일대해수욕장 전망대의 야경을 마주하러 가야하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해가 떨어질 시간도 조금 남았는데 쉬이 지나칠 까닭이 없다. 참새가 방앗간을 거저 지나랴. 단숨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앞에 섰다.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근대문화역사거리. 사진 / 박지원 기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일본 가옥이 온전히 남아있는 명소다.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보니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놓은 듯하다. 마치 검을 든 일본 낭인이 목조가옥의 문을 박차고 나와 “오마에와 다레다”라고 외칠 것만 같다. 만약 그렇다면 몇 대 쥐어박아야겠다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까지 편다. 발길을 돌려 구룡포 근대역사관도 둘러보고 야경을 보고자 영일대해수욕장 전망대로 향한다.

포항에서 야경을 고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누각인 영일대해수욕장 전망대가 생긴 지도 어언 1년인데 아직도 찾아가보지 않았다는 일종의 직업의식(?)에서 비롯된 자책감, 그리고 한겨울의 황량함으로 자못 의기소침해질 수 있는 기분을 형형색색의 따스한 빛으로 초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야경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저물고 도시에 어둠이 깔리자 화려한 빛으로 치장한 영일대해수욕장 전망대가 추위에 사그라진 심신의 기운을 한껏 고조시킨다. 낮보다는 밤에 더욱 신비로운 모습이라더니 두 눈으로 만끽하고 있는 이상 부정할 이유가 없다. 영일대해수욕장의 새로운 백미로 떠오를 만도 하다. 80m에 달하는 영일교를 걸어 전망대인 해상 누각에 오르니 흡사 바다에 떠있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진다. 어디 그뿐이랴.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건너 포스코의 야경도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여태 포스코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견인한 잿빛 공장이란 선입견만 갖고 있던 터였을까. 영일대해수욕장 전망대와 마찬가지로 포스코의 낮과 밤의 풍경은 극명히 다르다. 회색빛의 거대한 공장을, 공장의 거친 굴뚝을, 굴뚝의 새하얀 연기를 아름답다고 느낀 날이 오고 말았다. 짧은 해가 아쉬운,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몸서리치는 한겨울의 절정이지만 이 모든 것을 보상해준 야경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 / 박지원 기자

INFO. 최가네구룡포과메기
가격 손질과메기 20미 1만7000원, 반손질과메기 20미 1만6500원, 청어과메기 1kg 1만9000원.
주소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일출로 314

사진 / 박지원 기자

 

INFO. 영일대해수욕장 전망대
주소 경북 포항시 북구 해안로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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