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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내 취향대로 겨울여행②] 강원도 원주 다락방 민박과 시골 밥상
[내 취향대로 겨울여행②] 강원도 원주 다락방 민박과 시골 밥상
  • 전설 기자
  • 승인 2015.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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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원주] 청량리에서 한 시간 반. 하루에 단 4번 운행하는 기차를 타고 강원도 원주시 신림역에 내려선다. 시골 간이역이 있는 풍경이야 어디든 엇비슷하지만, 간밤에 내린 눈으로 뒤덮인 신림역사는 농 안에 잘 개켜 놓은 솜이불처럼 한층 더 포근해 보인다. 추위도 잊은 채 눈을 뭉치며 놀다가 꽁꽁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며 기찻길을 건넌다.

비죽이 솟아 오른 용소막성당 지붕을 나침판 삼아 용소막삼거리에서 오른편의 흙길을 따라가니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하는 호객하나 없이 그저 세 글자 ‘다락방’ 뿐. 여기가 맞나 갸웃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외국의 휴양지를 흉내 내지 않고 나무, 흙, 돌로 지은 소박한 본채와 별채가 보인다. 마당에는 흙으로 빚은 조형물과 돌 조각상이 띄엄띄엄 서 있고 그 사이사이에 자그마한 도자기 인형 같은 오밀조밀한 소품이 빼곡하다. 찾았다. 흙을 주무르며 도자기를 빚고, 남이 차려준 아침저녁을 먹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쉬어 갈 수 있는 다락방!

눈이 소복히 쌓인 '다락방'입구. 사진 / 전설 기자
아늑하게 꾸며놓은 차방 내부. 너른 창밖으로 쌓인 시골전경이 보인다. 사진 / 전설 기자
봄에핀 아카시아꽆을 겨울 내내 한 잔의 차로 즐기다. 사진 / 전설 기자

차방을 전세 내고 꽃차 한 모금

헤매지 않고 잘 찾아 왔다는 안심도 잠시. 민박집 입실시간까지 뭘 하며 시간을 때울까, 고민이 앞선다. 그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다락방 지기’ 우명선, 홍금순 부부가 차를 권한다.

“기차 타고 오는 분들은 입실시간보다 일찍 오시거든요. 시간이 남을 땐 용소막성당이나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셔도 좋은데 날이 추우니 차방에 들어가 계세요. 차는 드시고 싶은 만큼 마음껏 드셔도 되고, 듣고 싶은 CD 중에 원하는 걸 골라서 틀어 놓으시면 됩니다.”

다락방 본채 앞에 따로 마련된 차방은 놀러온 객들이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차 한 잔 곁들여 언 몸이나 녹일 겸 들어섰다가 그대로 자리를 깔고 앉는다. 연탄을 새로 갈아 넣은 화목난로의 온기에 마음이 놓이고, 큰 유리창 너머 눈 쌓인 마을 풍경은 조용한 위안을 전한다. 책장에 꽂힌 책들 중 한권을 골랐다가 벽 한 쪽에 진열된 다락방 지기 부부의 작품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자수를 넣은 쿠션, 선인장을 심어 둔 못난이 화분 같은 손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구경거리가 차례차례 눈에 들어온다.

선반에는 개똥쑥차, 국화차, 허브차 등등 수제차가 한가득. 사진 / 전설 기자
'원조 요정' SES부터 음유시인 유재하까지 반가운 얼굴이 빼곡하다. 사진 / 전설 기자

정성스럽게 꾸민 차방에서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공짜 차. 개똥쑥, 감잎, 아카시아 꽃, 국화, 허브 등등 철마다 뜯고 말리고 덖어 놓은 수제차가 선반을 차지하고 있다. “향이 강하니 7송이만 우려 드세요.” 살뜰한 주의사항을 따라 찻잔에 국화꽃을 몇송이를 덜고 뜨거운 물을 따른다. 동글동글한 국화꽃이 꽃 봉우리를 여는 동안에는 수십여 장의 CD 중 유재하 1집을 튼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차 한 모금. 참 별것도 아닌데, 이게 왜 이리 벅찬 것인지.

“저희 부부도 예전에 들렀던 민박집에서 아주 좋은 경험을 했어요. 밥도 해주고 차도 내주는 집이었는데 작은 거실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이 흘러나왔죠. 바삭바삭하게 마른 깨끗한 이불을 덮고 자고 일어났더니 참 잘 쉰 것 같더군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왜 놀러 가서 장보고 음식 하다보면 쉬러 왔는지, 일하러 왔는지 모를 때가 있잖아요. 그런 고민 없이 아침저녁 밥상 받고 차 한 잔 하면서 마음껏 쉬어 갈 수 있는 곳 말이예요.”

기대 없이 찾아든 민박집에서의 하룻밤은 부부에게는 새로운 꿈을 주었다. 단 하룻밤이라도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손으로 빚고 만들기를 수년. 별, 해, 달 이름을 딴 아늑한 한옥별채를 짓고, 책과 음악과 차가 있는 차방을 꾸몄으며, 텃밭 농작물과 직접 담근 효소로 건강밥상을 차렸다. 거기에 도예작가에게 배우는 도자기 체험까지. 한 지붕 아래서 자고, 쉬고, 먹고, 빚을 수 있는 다락방은 그렇게 하나의 작은 여행지로 완성됐다.

손 안 닿은 자리가 없는 차방 구석구석을 훑다가 창밖을 본다. 날이 저물기 전에 용소막성당을 둘러봐야겠다. 짧은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면 푸짐한 저녁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눈뚜자마자 맛본 아침 밥상. 풍경과 함께 느긋하게 맛보다. 사진 / 전설 기자
'다락방'가족의 단란한 한때. 우명선, 홍금순 부부와 효원 지원 자매. 사진 / 전설 기자
차방 벽면에 전시된 '다락방지기'부부의 작품. 구매도 할 수 있다. 사진 / 전설 기자

울퉁불퉁 못난이 컵을 빚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와 느긋이 쉬다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밥상을 받는다. 된장찌개, 김치 지짐, 감자전, 마늘과 고추 장아찌, 들깨 브로콜리 순 무침…. 요령 없이 하나하나 무치고 지지고 볶아야 제 맛이 나는 게 집 밥이라는 것을 알기에, 푸짐한 한 끼에 담긴 정성을 읽는다. 설거지 걱정 없이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먹는 남이 해준 밥, 참 달다.

저녁식사 후에는 다락방에서의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도자기 체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가끔 ‘난 컵 5개 만들어 갈래요’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사실은 참 어려운거거든요. 컵 하나도 대충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흙과 흙 사이를 꼼꼼하게 눌러서 금과 주름을 없애야만 가마에 들어갔을 때 깨지지 않아요. 손톱자국, 손자국 하나까지 그대로 찍혀 나오니까요.”

손자국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벽제가 정감있다. 사진 / 전설 기자

그래도 왕년-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흙 좀 주물러봤노라 자신했는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머리로는 날씬하고 길쭉한 머그컵을 그리면서, 손으로는 키 작고 뚱뚱한 사발을 빚는다. 그나마도 손닿는 자리마다 금이 생겨 문질렀더니 ‘다락방’의 마스코트 효원, 지원 자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언니! 문지르면 안 돼. 흉터 생긴단 말이야. 금이 있는 자리는 양옆으로 손가락을 대고 꾹꾹 눌러줘야 해.” 호랑이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컵 하나를 완성했는데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울퉁불퉁 못난이다. 심기일전해서 재도전해봤지만 모양새는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못난이 머그컵 1, 2호는 건조 과정을 거쳐 가마에 구워 약 한 달 후 집으로 배송된다. 어떻게 완성될까? 혹시 깨지진 않겠지? 괜한 조바심이 인다. 아마도 내손으로 빚은 기념품을 받아보기 전까지 흙을 주무르며 애썼던 시간을 떠올리며 자주 웃게 될 것 같다.

어느새 다락방 마당에 짙은 어둠이 내린다. 도예체험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데 다락지기 부부가 뜻밖의 선물을 준다. “텃밭에서 키운 고구마예요. 난로에 올려놓고 몇 번 뒤적거리면 잘 익어요.” 묵직한 밤참거리를 들고 도돌이표처럼 차방에 돌아와 앉는다. 고구마와 감자가 익는 동안 책장을 뒤적거리다가 선반의 CD를 고른다. 내 집인 냥 이것저것 꺼내보고 있으려니 찻집 주인이 된 것도 같고, 넓은 작업실을 선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다락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익숙함 때문이려나. 아니면 군고구마 익는 냄새 때문이려나. 과자상자나 음료수 캔 따위로 가득 차서 늘 눅눅한 단내가 나던 시골집의 다락이 떠오른다. 이유 없이 시무룩한 날, 불도 안 들어오는 시커먼 다락에 숨어들어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까무룩 잠에 들었던 그 때처럼 어딘가 숨고 싶었나보다. 무수한 겨울여행 후보지 중 ‘다락방’에 마음이 동한 이유를 이제야 깨친다. 손발 시리고 마음이 추운 계절에는 화려한 여행보다 온기를 올려줄 휴가가 필요했다고 말이다. 두툼한 솜이불을 깔아둔 아랫목에 누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뜬다. 이제 그만 일어서야 하는데, 채근하며 움켜쥔 찻잔이 따끈하다.

INFO 다락방
숙박료 성인 2인 기준 주중 13만원, 주말 15만원 (도예체험, 조식·석식 포함)
주소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용소막길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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