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4월호
[비경 트레킹] 충북 진천 먹뱅이 산길과 초평호 초롱길
[비경 트레킹] 충북 진천 먹뱅이 산길과 초평호 초롱길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5.01.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진천] 여러 가지 길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길이 있다고 했다. 천년의 숨결이 어린 고려시대 돌다리부터 잘 닦인 임도, 가파르고 험한 등산로, 그리고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자리한 목조 수변탐방로까지 한꺼번에 경함할 수 있단다. 오늘은 여러 가지 다채로운 길을 걸을 수 있는 그 길을 걸어봐야겠다.

충북 진천에는 고려시대 때 만들어져 천년의 숨결이 어려 있는 돌다리인 농다리와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초평호가 있다. 이 두 가지 볼거리를 속속들이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오늘 소개할 먹뱅이(211m) 산길과 초평호 초롱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미호천의 농다리와 초평호,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늦겨울 우리 강산의 정취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으니 이 계절에 이만한 곳을 찾기가 힘들다. 늦겨울 이 길을 걸으며 맑은 공기도 쐬고, 겨우내 굳었던 몸도 움직여보자.  

용고개의 전설이 얽혀 있는 용고개 성황당. 사진 / 박효진 기자
널찍하게 잘 닦인 먹뱅이산 임도. 사진 / 박효진 기자
초평호 포롱길에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에 얽힌 옛이야기를 동화로 꾸며놓은 쉼터가 있다. 사진 / 박효진 기자
초평호를 대표하는 볼 거리인 '하늘다리'. 사진 / 박효진 기자

먹뱅이산 임도길과 초평호 초롱길의 들머리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농다리 전시관에서 시작하면 좋다. 이 전시관은 고려시대 때 만들어진 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인 농다리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건물로서, 주차장과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다. 게다가 전시관 안에는 농다리의 구조와 오랜 세월을 견뎌낸 구조적 비밀, 세계 각국의 유명 다리를 볼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도 있어 트레킹 출발 전에 가벼운 마음가짐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겨울바람을 대비해 단단히 채비를 하고 전시관 주차장에 차를 댄 후, 미호천 방향으로 길을 나선다. 200미터쯤 걷다보면 굴다리가 보이는데, 이 굴다리 위로는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가 지난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소음을 뒤로 한 채 미호천변으로 들어서니, 이번 걷기 길의 본격적인 시작점이자, 이 길의 주인공 격인 농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년을 이어온 진천의 농다리는 멀리서 보면 다리가 아니라 그냥 돌을 쌓아놓은 돌무더기처럼 보인다. 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돌다리들이 교각을 세우고 반듯하게 깎아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면, 이 다리는 민초들이 돌 모양 그대로의 모습으로 듬성듬성 쌓았기 때문에 일견 투박하고 볼품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다리는 천년의 세월을 이겨낸 다리다. 그 동안 수백 번의 홍수가 농다리를 덮쳤지만 그때마다 꿋꿋이 살아남아 마치 수많은 외침을 겪고도 이겨낸 우리 민족을 닮은 것 같아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농다리를 건너 초평호 쪽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천년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자를 지나 그리 높지 않은 고개에 올라서니 안내팻말과 함께 울긋불긋한 금줄로 장식된 성황당이 걷는 이를 맞이한다. 팻말에는 이곳이 용고개(살고개) 성황당이라는 설명과 이곳에 얽힌 전설이 안내문에 실려 있다. 재미있게 읽고 고개를 떼 시선을 돌려보니 좀 떨어진 곳에 이번 걷기 길의 또 다른 주인공인 초평호와 길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이번 트레킹은 초평호를 품에 안고 있는 먹뱅이산 산길을 통해 중간 목적지인 초평호 하늘다리까지 가고, 되돌아 나올 때는 초롱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목조 수변탐방로를 통해 나오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터는 임도(林道)를 따라 먹뱅이산 정상 쪽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먹뱅이산 정상으로 향하는 임도는 널찍하고 잘 닦여 있지만 지난 밤 내린 눈이 쌓여 있어 걷는 이의 발목을 잡아당긴다. 하지만 눈을 밟는 감촉과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경쾌해 길을 걷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꽤 오랜 시간 눈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흥이 돋아 초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동시가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뽀드득 뽀드득 내 발자국, 동생발자국, 할아버지 댁으로 세배를 갑니다. 하얀 눈을 밟으며 세배를 갑니다.”

참 오랜만이다. 이런 즐거운 감흥에 젖어본지가. 이런 내 감흥을 아는지, 이 길도 감흥에 흥취를 더해준다. 아무도 지나간 이 없는 순백의 눈길에는 야생동물 발자국과 바람에 떨어진 솔방울 모양의 굴피나무 열매가 더해져 늦겨울 트레킹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먹뱅이산 등산로에는 경사가 급한 하산길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사진 / 박효진 기자
투박한 모습의 진천 농다리는 천년을 버텨온 저력을 지니고 있다. 사진 / 박효진 기자
눈 속에 파묻힌 솔방울 모양의 굴피나무 열매. 사진 / 박효진 기자

임도를 따라 30여분쯤 걸었더니 임도의 끝이 보인다. 아직도 갈 길은 먼데 임도가 사라지니 당황스럽다. 잠시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산등성이를 따라 좁은 등산로가 펼쳐진다. 이번 걷기 길의 가장 난코스인 먹뱅이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다보니 늦겨울 추위에도 땀이 난다. 가뜩이나 좁고 가파른데, 눈까지 쌓여 있으니 오르기가 더 힘들어서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급경사마다 안전로프가 적절히 설치되어 있고 등산로를 따라 걸어야 하는 구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이다. 20여분쯤 힘겹게 올라 먹뱅이산 정상 부근에 올라섰다. 

물도 마시고 땀도 식힐 겸 잠시 쉬었다가 초평호 하늘다리 쪽으로 15분쯤 내려오니, 다리 조금 못 미쳐 초평호 전체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작은 쉼터가 나온다. 맑고 푸른 겨울하늘을 배경으로 순백으로 치장한 초평호와 겨울 산하가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 한마디로 표현하자니 장관이요, 여러 마디로 표현하자니 아름답고 신비롭다. 

하늘다리는 먹뱅이산과 초평호 안에 있는 진천군 청소년수련원을 연결해주는 현수교 양식의 다리다. 남해대교, 광안대교, 울산대교 등 커다란 다리에서나 보던 현수교 양식을 이곳에서 보니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여기까지 와서 다리를 안 건너 볼 수는 없는 일. 다리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조금만 힘을 줘도 출렁거리는 것이 또 다른 묘미다. 하늘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건지고, 초평호 가장자리를 따라 잘 조성된 수변탐방로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나무로 평탄하게 잘 만들어진 수변탐방로는 아름다운 초평호를 감상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는 휴식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초롱길 수변탐방로만 걸을 요량이라면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늦겨울 걷기 여행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수변탐방로를 따라 초평호를 감상하며 천천히 걷기를 15분. 저기 용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트레킹을 마무리해야할 시간이다. 진천의 먹뱅이산 산길과 초평호 초롱길은 천년을 그 자리에서 버틴 농다리의 정감어린 모습과 아름다운 초평호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INFO. 먹뱅이산 산길과 초평호 초롱길
1코스: 전시관-천년정-용고개 성황당-수변 탐방길-하늘다리-수변 탐방길-농다리 전시관
2코스: 전시관-천년정-용고개 성황당-임도-등산로-하늘다리-수변 탐방길-농다리 전시관

거리: 1코스 2.7km, 2코스 4.8km 
소요 시간: 1코스 50분, 2코스 1시간 40분.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13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