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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시골장터기행] 별별 바다 것 다 나와 ‘별교장’아이라. 전남 벌교오일장
[시골장터기행] 별별 바다 것 다 나와 ‘별교장’아이라. 전남 벌교오일장
  • 전설 기자
  • 승인 2015.0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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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보성] 매월 끝이 4, 9로 끝나는 날이면 고흥, 승주, 낙안, 송광, 보성의 장꾼이 벌교로 모여들었다. 전남 동부 6군 중 최대의 오일장이라는 ‘벌교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팔사람 살 사람 많아 별별 바다 것 다 올라온다는 ‘별교장’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본격적인 장 구경에 나서기도 전에 벌교시장 입구에서 발이 묶인다. 횡단보도 앞에 빨간 대야 서너 개가 널려 있는데, 그 속에서 어른 팔뚝만한 무엇인가 몸부림을 친다. 반짝이는 비늘이 아니라 잔털이 숭숭한 몸통이 사람의 피부처럼 매끄럽다. 게다가 늘씬한 지느러미에 살벌한 눈매하며 뾰족한 이빨까지. 이건 상어다. 장터 한복판에 상어가 나타났다!


“죽상어 사가씨오. 이봐,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지. 상어는 제사 반찬이라 소금에 재서 먹는디 이렇게 싱싱한 놈은 뜨건 물 부어서 떼 싹 밀어 회로 먹어. 술상에는 이놈이 최고여.”

양미희 씨가 아침나절 바다에서 건져온 죽상어(까치상어)를 들이밀면서 손수 ‘떼 벗기기’ 시범을 보여 준다. 그 정성에도 도통 살아있는 상어가 들어 있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닐 엄두가 나질 않는다. 손사래 치며 뒷걸음치다보니 어른 키만큼 쌓여 있는 참다래 꾸러미 앞이다. 시장 입구의 과일 상회에는 단단하고 실한 참다래 풍년이 들었다. ‘벌교 꼬막’의 빛에 가려지긴 했지만, 과육이 부드럽고 달콤하기로 유명한 ‘벌교 참다래’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특산품. “한 꾸러미에 만원, 2만원 해요. 맛보고 사가씨요.” 날쌘 손놀림으로 거무죽죽한 껍질을 벗겨내자마자 싱그러운 초록의 속살이 드러난다. 썰어주는 대로 크게 한 조각 넙죽 받아먹고 나니 새큼한 기운이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이른 봄을 한입에 꿀꺽 삼킨 듯하다.

어른 주먹만 한 피꼬막. 붉은 조갯살을 내밀며 '메롱~'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어른 주먹만 한 피꼬막. 붉은 조갯살을 내밀며 '메롱~'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장터에는 '바다 것'만이 아니라 벌교 땅에서 정성껏 키운 농작물도 풍성하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장터에는 '바다 것'만이 아니라 벌교 땅에서 정성껏 키운 농작물도 풍성하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길목마다 쌓여 있는 참다래꾸러미. 겨울을 이기는 봄의 맛이 새콤달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길목마다 쌓여 있는 참다래꾸러미. 겨울을 이기는 봄의 맛이 새콤달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시장 양옆으로 늘어선 난전을 지나 벌교시장 안쪽으로 들어선다. 어디를 가든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꼬막이다. 주름치마처럼 골이 깊은 참꼬막, 조약돌처럼 동글 몽글한 새꼬막, 어른 주먹만 한 피꼬막(피조개)이 좌판의 주인공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이긴 뭐 많은 것도 아이라. 옛날에는 꼬막이 하도 많이 잡히가 식당에서 꽁짜 반찬으로 줘 삐맀다고. 맛으로 치면 참꼬막이 제일인데 새꼬막은 ‘똥꼬막’, 피꼬막은 털 달린 ‘털꼬막’이라 캐서 쳐주지도 않았어. 지금은 찾는 사람은 많고 잡는 양은 줄어드니께 없사 못 팔아. 꼬막 먹는다고 벌교 왔어? 그럼 세 놈 섞어 줄테니 초장집가서 맛나게 삶아 달라꼬 혀.”

박금주 할아버지가 꼬막꾸러미를 푼다. 박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혓바닥처럼 껍데기 밖으로 길게 나와 있던 붉은 조갯살이 쏙 모습을 감춘다. 새벽 바다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싱싱함에 절로 군침이 돈다. 상다리 휘어진다는 꼬막 정식을 맛볼 참이었지만, 차림비만 내면 시장에서 사온 꼬막을 먹기 좋게 삶아준다는 초장집 얘기에 구미가 당긴다. 양껏 꼬막을 까먹을 생각에 부풀어 초장집을 찾아가는 길. 끝없는 어물전을 채운 고록(꼴뚜기), 서대, 양태, 조기. 병치, 낙지, 쭈꾸미 등등 싱싱한 해산물이 눈에 밟힌다.

생긴 것은 흉측해도 맛 좋은 대갱이. 조물조물 무쳐 놓으면 밥도둑, 술도둑이 따로 없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생긴 것은 흉측해도 맛 좋은 대갱이. 조물조물 무쳐 놓으면 밥도둑, 술도둑이 따로 없다.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이름 물어보는 재미에 홀려 좌판 앞을 서성거리다 생전 처음 보는 어물을 발견한다. 궁금한 마음에 집어 들었다가 에구머니나, 흉측한 얼굴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언뜻 보기에는 장어나 커다란 문어발을 한데 묶어놓 듯 보이더니 가까이서 보니 뱀을 말려놓은 것 같다. 영화 속 ‘에어리언’ 같은 커다란 입에 가시 같은 이빨이 살벌하다. 도대체 누구냐 넌?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3월 사진 / 전설 기자

벌교장에서 만난 사람
대갱이 할머니 정으님


으악, 괴물 같아요. 이게 뭐예요?
대갱이 몰라 대갱이? 대가리는 짱뚱어, 몸은 뱀처럼 생긴 생선이여. 깊은 갯에 살아가 아무나 못 잡는 귀한기제. 구경하기도 힘들어서 벌교 사람한티 물어도 열에 다섯은 몰라. 생긴 것은 흉혀도 참 존 거여. 먹는 사람은 대갱이만 찾으니께 내가 이렇게 가져다 놓지.

대갱이 요리법 좀 알려주세요
한 놈 한 놈 망치로 다근다근 두드려. 그럼 뼈랑 살이 딱 발라지는디 뼈는 윽쎄서 못먹으니까 발라불고, 대가리는 흉측하니까 짤라불고 혀. 근 다음 깨스불에 구워서 살을 쪽쪽 찢어. 여기에 고추장 조금 쪼차, 엿물도 조금 쪼차, 주물주물 무쳐 놓으면 그 맛이 참 좋아.

대갱이 찾는 사람이 많나요?
아는 사람은 대번에 와서 대갱이 좀 주쑈, 하제. 내가 이 자리서 장사한지가 30년 되아써. 여기가 시장 안이라 참 싸고 물건도 좋은디 사람들이 잘 안와. 시장 앞에 입구만 왔다 휙 가부러. 오늘은 그래도 장날이라꼬 젊은 아가씨가 찾아 와서 대갱이도 알아보네.

대갱이 광고 좀 해주세요
집에 가서 함 묵어봐. 그리고 말 하나 보태지 말고 있는 그대로 써. 일단 한번 묵어놓으면 이담에 또 올 수 밖에 없을 거여. 요즘에는 맛좋은 거 찾는 사람들 많다제? 그럼 벌교와서 대갱이 먹고 꼬막도 먹고 가씨오. 아따, 희한하게 맛나부러, 할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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