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무주] 대전통영간 고속국도 개통으로 강원도보다 가까워졌다. 첩첩산중 무주의 험준한 고갯길이 한달음에 뚫리면서 두 시간 만에 무주에 도착했다. 싱그러운 풀잎과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힘차게 쏟아지는 물소리에 더위가 시원하게 달아난다.
마음도 맑아지는 무주구천동 33경
무주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과 다양한 체험거리가 많아 무주구천동 33경을 비롯한 자연에 넋을 뺏기다보면 체험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덕유산 곤돌라는 오후 네 시까지만 운행하므로 최소한 두 시간 전에는 탑승을 마쳐야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까지 여유 있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고 하여 서둘러 올랐다.
곤돌라 안에서 물끄러미 창밖을 내려다보는데 무주리조트와 사람, 집, 산들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1,520m의 설천봉에 다다르자 무주의 울창한 자연 속에 사라지고 만다. 천천히 20여분을 오르는 8인승 곤돌라에 달랑 둘만 타서 열심히 추억(?)을 만드는 연인도 보인다. 야경도 보면서 데이트도 즐기는 63빌딩 전망대처럼 힘들이지 않고 쉽게 정상까지 갈 수 있어 노약자나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도 무리가 없다.
가볍게 산행을 하고 싶다면 구천동 관광단지 끝의 삼공매표소부터 1시간 거리인 백련사까지 탄탄한 평지를 걷고 다시 백련사부터 향적봉까지 1시간 반에서 2시간의 등산을 하고 곤돌라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산 정상과 마주하면 푸근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덕유산은 더욱 그렇다.
덕유산에서 무주구천동 초입의 ‘라제통문’까지 37번국도 16km 구간은 원당천을 끼고 잘 뻗은 드라이브 코스이다. 이 구간을 따라 있는 무주구천동 33경을 다 구경하면 좋겠지만, 워낙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외진 곳이라서 볼 수 있는 곳은 1경 라제통문, 6경 일사대, 11경 파회, 12경 수심대, 31경 이속대, 32경 백련사, 33경 향적봉 정도이다.
15경 월하탄부터는 구천동 관광단지 삼공매표소에 차를 두고 걸어가는데 백련사까지 6km의 산책코스가 이어진다. 휴양림에 온 듯 계곡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가는 길이 장관이다. 계곡의 초입은 험하고 물도 깊지만, 조금 올라가면 순하고 아담해져 그늘 밑이나 바위에 앉아 더위를 피하기 좋다.
산책하면서 15경 월하탄, 16경 인월담, 19경 비파담, 28경 구천폭포, 31경 이속대, 32경 백련사, 33경 향적봉을 구경할 수 있다. 무주에도 33경을 다 보았다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으니 드문드문 보여주는 자연의 비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즐기자.
연인에게는 6경 일사대(수성대)를 추천한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비밀의 요새처럼 숨겨진 구름다리와 깊고 넓은 소가 있는 웅장한 계곡이 나오니 자연을 방패삼아 한적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 강제체결된 을사조약에 항거하다 이곳에 와서 자결했다는 조선말기 문인이자 순국지사인 송병선의 생가도 있다.
11경 파회에서 12경 수심대는 가족들의 물놀이에 딱이다. 물이 굽이치는 지점이며 드러난 암벽의 형세가 여성스럽다. 대여섯 명이 둘러앉을 수 있을 정도의 널찍한 암석이 많아 물소리 들으며 돗자리 펴놓고 늘어지게 낮잠 한번 자봤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던 곳이다. 무주구천동의 계곡물은 참 맑다. 남대천이 무주읍내로 흘러가고 진안에서 내려오는 금강과 만나는데 진안과 무주의 경계에 용담댐이 있고 금강의 최상류에 바로 무주가 있다. 맑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깊어가는 무주의 여름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무덤이 내 집인걸.” 소풍가면 가사 중에 ‘가지마라~’ 부분에 맞춰 옆 짝꿍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게임도 했던 ‘개똥벌레’는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노래다. 이맘 때 쯤이면 컴컴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를 놓았던 개똥벌레들이 청정지역을 찾아 무주구천동에 살고 있다는데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을 흥얼거리며 무주를 찾은 시점은 반딧불 축제 준비가 한창인 때였다.
반딧불이 중에서도 조금 일찍 나오고 몸집이 작다는 애반딧불이를 보려고 갔지만, 비가 내리고 시기도 조금 일러 끝내 볼 수 없었다. 개똥벌레 노래 중 “아아~ 외로운 밤, 오늘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를 부를 뻔 했건만, 청정지역인 무주는 손님을 외롭게 두지 않았다.
비가 오자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모두모두 나와 목청껏 노래를 들려주었다. 남해에는 폭우가 쏟아졌다던 어느 여름 저녁, 사랑의 노래를 자장가삼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