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아산] 확언컨대 근래 가장 핫한 명소 가운데 하나는 지중해마을이다. 산토리니의 하얀 벽과 파란 지붕, 파르테논의 간결하고 장엄한 열주, 프로방스의 은은한 파스텔 톤 건물. 구태여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지중해의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아산 속 작은 유럽을 들여다보자.
눈이 즐거운 파스텔 톤 향연
이윽고 탕정면사무소에서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널찍한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중해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은 여전히 잿빛 몸살을 앓고 있어 자꾸만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지만 지중해마을 초입부터 연출되는 이국적인 풍경은 가던 길을 멈춰 서게 할 만큼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안구 정화라고 했던가. 이곳이 정말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의 광경을 마주하니 그야말로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눈이 즐겁다. 조금 전까지 황사 너부렁이에 좌지우지된 불편한 마음과 미간에 자리 잡은 두세 가닥의 주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별안간에 누그러진다.
지중해마을의 정식 명칭은 ‘블루 크리스탈 빌리지’다. 지중해마을이란 이름은 별칭인데, 사람들 사이에서는 본래의 이름보다 ‘한국의 지중해마을’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그 까닭을 깨닫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마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으니까. 순백색 벽과 파란 원형 지붕이 산뜻함을 선사하는 그리스 산토리니 마을, 장쾌한 열주와 테라스가 웅장한 성을 연상시키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자연스럽고 목가적인 전원에서 한가로이 정오의 햇살을 음미하고 싶게 만드는 프랑스 프로방스 주택. 이처럼 이곳의 건물은 지중해의 유명 마을 세 곳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반긴다.
발길 닿은 곳마다 사진 명소
“탕정포도라고 들어봤나요? 지금 지중해마을이 있는 자리는 예전에 포도 농사를 짓던 땅이지요.” 푸근한 인상의 이상만 이장이 과거를 회상하며 말문을 연다. 지중해마을은 원래 탱글탱글한 포도 수확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평범한 농촌이었다. 몇 해 전 유명한 포도 주산지였던 이곳에 ‘삼성디스플레이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들렸고, 조상 대대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나고 자란 보금자리를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하고 만다. 청천벽력이었을 게다.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삶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고향땅을 잃게 된 허탈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공장을 짓지 말라는 반대 시위도 많이 했지요.” 평생 포도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앞으로 살길이 막막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향을 떠날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60여 명의 원주민은 기업과 대립각을 세우기에 이르렀고, 뾰족한 해법이 없어 보일 정도의 진통을 겪기도 했다. 험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던 형국이었지만 서로의 양보와 타협으로 엉킨 실타래는 한 가닥씩 풀려 제자리를 찾아갔다. 개발로 인해 기존의 원주민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기업 측에서 먼저 한 발자국 물러났고, 원주인들 역시 기업에서 제시한 재정착 모델을 받아들인 덕분이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대대손손 살아온 땅에 다시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게 됐으니 더 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포도 향 가득한 과수단지는 건설기계에 밀려 자취를 감췄고, 특유의 달콤함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탕정포도를 더 이상 재배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지중해마을은 상전벽해란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동네이기도 하다.
“타협점을 찾고 난 후에는 유럽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 등 여러 나라를 답사하고 다녔어요. 이왕에 짓는 거 무의미하게 지을 게 아니라 관광 명소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지요.” 이렇게 탄생한 지중해마을은 최근 여행자들 사이에서 “카메라만 들이대면 화보가 된다”는 입소문이 퍼져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실제로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중해마을 여기저기서 함박웃음을 짓는 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경기도 안양에서 왔다는 김경화 씨는 “이국적인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에요. 사진 많이 찍고 가야겠어요”라고 말한다.
지중해마을은 집과 집 사이를 이어주는 조붓한 골목길을 타박타박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냥 걷는 것만으로는 뭔가 밋밋하다고 느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조형물과 벽화가 반기고 나서니 어찌 허투루 지나칠 수 있겠는가. 자연스레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이내 따스한 봄 햇살을 벗 삼아 지중해마을 곳곳을 다시 엿보기 시작한다. 햇볕을 받으며 평화롭게 쉬고 있는 강아지가 정겹다. 골목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화분도 눈에 띈다. 망울만 맺히고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꽃들이다.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키우며 이마의 땀방울을 훔쳤던 원주민이 마련해놓은 것이다. 꽃망울을 터뜨리면 저 화분을 가꾼 이도, 꽃을 보는 여행자도 산토리니의 벽과 같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지 않을까.
다시 발길을 옮기는데 지중해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발품깨나 팔았더니 출출함이 밀려온다. 지중해마을에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맛난 음식을 찾아 먹어야겠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멍도 때리련다. 여장을 풀고 하룻밤 묵을 곳은 ‘지중해’란 게스트하우스로 진작 찜해뒀다. 파워블로거인 주인장에게 지중해마을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봐야겠다. 그러다 짙은 어둠이 깔리면 사부작사부작 마실을 나갈 요량이다. 골목 모퉁이에서 은근한 가로등 불빛에 취해보고, 화려한 자태를 유감없이 뽐내는 루미나레 장식 아래 서서 지중해에 있는 듯한 착각에도 빠져볼 심산이다.
INFO. 지중해마을
주소 충남 아산시 탕정면 탕정면로8번길 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