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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봄은 색으로 온다-전통 색채 여행] 고추장마을에서 우리 색채를 만나다 전북 순창 전통고추장민속마을
[봄은 색으로 온다-전통 색채 여행] 고추장마을에서 우리 색채를 만나다 전북 순창 전통고추장민속마을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5.03.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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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순창] 누군가 한민족의 특성을 끈끈하고 맵다고 했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순박하지만 위기를 겪으면 그 어떤 민족보다 끈끈하게 뭉쳐 매운맛을 보여주는 우리민족의 기질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추장은 우리민족과 꼭 닮았다. 봄이 익어가는 4월, 우리민족과 꼭 닮은 붉은색 고추장을 찾아 전북 순창으로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고추장을 담그지만 왜 고추장하면 유독 순창이 떠오르는 것일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순창군 구림면에는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승승장구를 기원하며 1만일 동안 치성을 드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천년고찰 ‘만일사(萬日寺)’가 있다. 이성계가 아직 장군이던 시절 이 절에 머무르던 무학대사를 만나러 순창에 왔다가 절 근처 농가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된다. 그 점심상에 고추장의 원형인 ‘초시’라는 찬이 올랐는데, 이 초시의 맛에 흠뻑 빠진 이성계는 왕이 된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진상하라는 지시를 내렸단다. 그때부터 순창 고추장은 왕실 진상품목으로 입소문을 타게 돼 고추장하면 순창부터 떠올리게 된 것이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강렬한 붉은 색의 고추장과 적갈색 옹기 항아리의 조화

봄볕이 대지를 따스하던 적시던 날, 순창읍 백산리 아미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찾았다. 순창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고추장민속마을은 순창군에서 야심차게 조성한 전통마을답게 한눈에도 민속마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을입구에서부터 진한 황토빛 토기와 적갈색 옹기를 이용해 만든 푸근한 조형물이 반갑게 맞아주고,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고추장 명인의 거처와 상점이 마치 고향마을을 찾은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고추장민속마을은 마을 전체가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비법대로 만든 고추장을 파는 고추장 상점이자 명인들의 거처로, 이 거리 좌우의 모든 집들이 고추장 명인 집이다. 다른 곳에서는 한 명도 만나기 힘든 고추장 명인들이 속된말로 민속마을 거리에는 넘치고 넘친다. 천천히 마을을 구경하며 각 명인의 집 마당에 놓인 크고 작은 옹기항아리를 둘러보다 ‘전통고추장기능인 1호’라는 안내문이 붙은 ‘문정희할머니 고추장’ 집으로 들어섰다. 

문 할머니 집으로 들어서니 할머니와 어머니에 이어 7대째 고추장 제조법을 이어받아 가업을 꾸려가는 손자 김세혁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할머니 손자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직원’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김세혁 씨의 안내로 집과 가게를 구석구석 둘러본다. 마당을 가득 채운 크고 작은 항아리와 각종 옹기, 도넛 모양의 고추장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처마를 보며 이 집이 고추장을 만드는 장인의 집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마당과 메주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건지고 여러 가지 종류의 고추장과 각종 장아찌를 구경도 하고 시식도 해본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고추장과 장아찌가 겨우내 움츠러든 내 입맛을 돋워 주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강렬한 붉은색 고추장을 담기위해 사진을 청하니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다. 

“저희 집 고추장은 현재 숙성중이라 강렬한 붉은색보다는 오히려 검붉은 색에 가깝습니다. 강렬한 붉은색은 새로 담은 햇고추장에서 볼 수 있는 색이거든요. 붉은색 고추장을 사진에 담으시려면 저희 집과 가까이 있는 명인고추장 댁으로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이라 서로 자존심을 내세울 법도 하지만, 공존과 상생을 위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훈훈하고 정겹다. 

문 할머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명인고추장 집은 고추장 제조를 3대째 가업으로 잇는 집으로서 천연 암반수와 국산재료만을 사용해 전통비법으로 깐깐하게 만든다고 소문난 집이다. 명인고추장 집의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니 마당을 가득 채운 항아리와 각종 옹기가 눈에 띈다. 인기척이 없어 안채를 향해 헛기침을 몇 번 하니 명인고추장의 대표인 박현순 명인이 이방인을 반갑게 맞아준다.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청하니 박 명인이 웃으며 흔쾌히 사진 찍기를 허락해준다. 전화도 없이 다짜고짜 쳐들어와 곤란할 법도 한데 박 명인은 오히려 여기저기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안내해준다.

드디어 붉은색의 햇고추장을 대면하는 시간. 박 명인이 항아리 뚜껑을 들어내자 붉은색 고추장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4월의 따사로운 봄볕은 햇고추장을 더욱 붉은색으로 물들이고, 매콤하고 먹음직스러운 고추장 특유의 향까지 더해지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적갈색 옹기항아리가 붉은 고추장과 조화를 이루니 이게 바로 우리 전통의 색채다. 

고추장마을 입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황톳빛 옹기 조형물. 은근한 해학이 엿보인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고추장마을 입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황톳빛 옹기 조형물. 은근한 해학이 엿보인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옹기체험관에서 만난 우리 색의 아름다움
고추장민속마을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순창장류박물관과 옹기체험관이 있어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옹기항아리가 가득한 장류박물관 마당을 지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마침 엄마와 나들이를 나온 아이가 임금님 수랏상을 앞에 두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보기 좋아 사진기를 들이대니 아이가 의젓한 궁중여인의 포즈를 취해준다.

국내 최초의 장류 테마 박물관인 순창장류박물관.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국내 최초의 장류 테마 박물관인 순창장류박물관.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순창장류박물관에는 임금님 수랏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순창장류박물관에는 임금님 수랏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옹기를 닮은 건물을 머리에 인 옹기체험관.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옹기를 닮은 건물을 머리에 인 옹기체험관.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순창장류박물관은 우리나라 장류의 역사와 순창고추장의 역사, 발효, 고추와 메주에 관한 이야기, 고추장 담그기 등에 관한 자료가 빼곡히 들어찬 국내 최초 장류테마박물관이다. 전시 면적은 그리 넓지 않지만 각종 전시품과 모형, 디오라마 등을 통해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교육적인 효과가 돋보이니 아이와 함께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나들이할 때 들러보면 좋을 듯싶다.

장류박물관을 나와 박물관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옹기 모양의 건물을 머리에 인 옹기체험관으로 향한다. 슬쩍 보기에 투박한 옹기만 있을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들렀건만 웬걸, 체험관 내에는 투박한 옹기 외에도 형형색색의 화려한 청자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옹기체험관에 어떻게 이런 작품이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옹기체험관을 운영하는 권운주 대표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낯선 이를 맞이해준다. 

옹기체험관을 운영하는 청자 기능보유자 고정 권운주 대표. 그는 옹기 문화의 북원과 순창 도자기 산업 발전을 위해 돌아온 귀향 도예가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옹기체험관을 운영하는 청자 기능보유자 고정 권운주 대표. 그는 옹기 문화의 북원과 순창 도자기 산업 발전을 위해 돌아온 귀향 도예가다.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궁금한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지금은 작고한 무형문화재 청자기능보유자인 고현(古現) 조기정 선생의 제자로, 사라져가는 옹기문화의 복원과 순창 지역의 도자기산업 발전을 위해 주 활동 무대이던 광주 생활을 접고 순창으로 돌아온 귀향 도예가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옹기체험관에서 화려한 청자를 보고 맴돌았던 의문점이 단박에 풀린다. 


“아이들이 우리 체험관을 참 좋아합니다. 솔직히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고추장민속마을에서 재미 붙일 것이 많겠습니까? 심심해하던 아이들이 우리 체험관에서 직접 자기 자신의 컵과 그릇을 만들 수 있으니 좋아할 수밖에요.” 

박현희 씨가 직접 덖은 예쁜 호박 빛깔의 황차.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박현희 씨가 직접 덖은 예쁜 호박 빛깔의 황차. 2015년 4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권 대표의 안내로 옹기체험관 내에 자리 잡은 체험학습실에 들어서니 권 대표 말마따나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색칠한 초벌 컵과 그릇이 가득하다. 이 도자기를 말려 다시 굽고 아이들에게 보내준다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 얼마나 특별한 작품일까. 우리 전통문화인 옹기와 도자기의 숨결을 아이들과 소통하며 이어나가니 그가 귀향한 사명과 제대로 합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체험학습실을 둘러보고 권 대표의 부인인 박현희 씨가 직접 덖은 황차를 마시며 도자기와 옹기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차를 덖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물어보니 권 대표가 말 나온 김에 전통차를 음미하자며 2층의 다도체험관으로 손을 잡아 이끈다. 다도예법처럼 정갈하고 단아한 분위기의 다도체험관에 좌정하고 박 씨가 따라주는 연노랑색의 생강나무꽃차를 한잔 마시니 권 대표의 포부가 전통차처럼 솔솔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우리 옹기체험관이 고추장민속마을을 찾는 가족 모두가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시설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옹기와 전통자기, 생활자기 등 여러 도자기를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배울 수 있게끔 만들고, 온 가족이 함께 다도 예절체험도 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가족 체험의 장이자, 가족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소통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4월, 전북 순창의 고추장민속마을을 찾아 우리 민족의 전통식품인 고추장을 맛보고 즐기면서, 우리 문화의 또 다른 한 축인 전통문화도 체험해보는 여행은 어떨까. 봄이 익어가는 이 봄, 순창의 봄은 강렬한 고추장의 붉은색에서부터 시작된다.

INFO.
문정희할머니 고추장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민속마을길 22-8

명인고추장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민속마을길 22-1

순창장류박물관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3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순창도자기 옹기체험관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45-8
체험료: 세라믹핸드페인팅 1만원, 물레체험 1만3000원, 다도체험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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