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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한결가족 베트남 여행기] 베트남 고대도시 호이안의 미선 유적 국제 무역항의 옛 흔적을 느릿느릿 거닌다
[한결가족 베트남 여행기] 베트남 고대도시 호이안의 미선 유적 국제 무역항의 옛 흔적을 느릿느릿 거닌다
  • 한결가족 기자
  • 승인 2006.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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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과거의 영화를 자랑하듯 투본강에 유람선이 떠 있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여행스케치=베트남] 유적지는 호이안에서 1시간 거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5분여를 걸은 뒤, 다시 트럭으로 갈아타고 5분여 달리면 깊은 정글 속에 유적이 있다. 모처럼 정글탐험과 함께 베트남의 역사를 공부하게 된다.

참족은 2세기부터 15세기까지 베트남의 중남부 지역을 지배했던 민족이다. 참족의 중심지 미선은 남베트남을 지배했던 인도네시아 계통 참족의 대표적인 고대도시다. 8세기까지 참족의 수도였으며 힌두교의 성지로 조성됐다. 미선유적지는 4세기 말에 참파왕이 시바신(힌두교의 파괴와 창조의 신)을 모시는 사당을 지으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다 화재로 소실된 이후 7세기에 다시 벽돌을 이용해 재건했다.

15세기 이후 참족이 역사의 무대에서 조연으로 전락하면서 정글에 묻혔다가 20세기 초 프랑스가 베트남 일대를 점령하면서 학자들의 발길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그러나 다시 베트남 전쟁 중에 미군기의 폭격으로 대부분의 유적이 파괴되는 등 역사적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기구한 운명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투본강에서 나무조각배를 타고 장사를 하는 베트남 여인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폐허의 미선 유적지에 선 한결이와 아빠.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그래도 유적은 우리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벽돌로 만든 성전이라 세월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지는 않았지만, 윤곽은 분명했다. 벽면을 장식한 여신상, 도처에 서 있는 석상들, 그리고 산스크리트스어와 참파어가 새겨진 비문 등을 훑어보면서 세월의 흥망성쇠를 회고해 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허물어진 유적은 꼭 폐사지를 찾을 때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화려했던 영화는 세월 속에 사라지고 그 흔적만 외롭게 남아 있는 듯한…. 대신 생각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발걸음이 보다 차분해진다. 아내와 난 이런 분위기가 차라리 더 정감이 간다고 동의한다. 벌써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가 되어서 일까. 국내를 여행할 때도 미끈하고 유려한 유적에 감탄하기는 하지만, 이제 잡초에 파묻힌 폐사지의 과거를 오롯이 붙들고 있는 깨어진 석탑이 더욱 애틋하게 보인다.

여하튼 숲길을 산책하는 두 시간은 여행자로서, 참 행복했다. 숲이 품어내는 싱그러움에다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유적이 주는 사색의 시간은 여행자만이 즐길 수 있는 재미라 할 수 있다. 

이런 추억의 발걸음을 뒤로 하고 다시 유적지 입구로 나왔다. 그 옛날 참파왕국에서 구엔왕조에 걸쳐 중국~인도~이슬람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적인 무역항 역할을 했던 베트남 중부의 대표도시 호이안. 그곳에서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는 옛 거리를 거니는 것이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미선 유적은 상당히 허물어졌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정교하고 섬세하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택시가 없을 정도로 작은 도시라 도시 전체를 걸어다닐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쩐푸거리 일대 1km엔 옛 저택과 사원·사당 그리고 박물관 등이 밀집돼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16~17세기엔 일본 무역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만들어 놓은 일본풍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있으며, 화교들이 일궈놓은 고가를 기웃거리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내원교에서 산책을 시작한다. 그리 넓지 않은 거리는 아기자기하다. 중국풍과 일본풍, 베트남풍이 한데 어우러진 거리엔 외국인 여행자들로 넘친다. 서두를 것 없이 이집저집을 들락거린다. 다양한 실로 만든 수제품과 목판화, 그림, 조각품이 가득 진열된 가게들도 즐비해, 눈이 황홀하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천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웅장하고 화려했던 미선의 유적들은 정글 속 잡초에 묻혀버렸다. 2006년 9월. 사진 / 한결가족 기자

약 200년 전에 무역상이 지은 집으로 현재도 8대째 후손이 살고 있다는 풍흥고가도 들어가 보고 세 나라의 건축양식을 섞어 지은 쩐가사당도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본다. 건물 안에는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유품도 전시돼 있다. 오래된 민가를 박물관으로 꾸민 바다의 실크로드 박물관도 찾아본다. 도자기박물관인 이곳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와 이슬람 여러 나라에서 바닷길을 건너온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호이안 즐기기의 백미는 역시 느릿느릿 걷기다. 고가가 즐비한 좁은 거리를 슬슬 걷다보면 우리가 구경꾼인지, 현지인이 구경꾼이지 모르게 된다. 하긴 여행자가 현지 거주자들보다 훨씬 많아 보이니 그런 느낌도 들 만하다. 두어 시간 돌아다닌 것 같은데,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왕 여유를 부린 김에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호이안의 또 다른 명물 투본강가에 자리잡은 이층 카페를 찾아 베란다에서 맥주와 음료수를 마신다. 강 건너 옛길에는 여전히 수많은 여행자들이 떠돈다. 불과 몇 분전 우리도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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