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① 옥정호 주말여행] 가을여행의 클라이맥스 옥정호 물안개가 걷히면 가을이 내 품안에
[특집 ① 옥정호 주말여행] 가을여행의 클라이맥스 옥정호 물안개가 걷히면 가을이 내 품안에
  • 이수인 기자
  • 승인 2006.10.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운해가 아름다운 옥정호의 모습.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여행스케치=임실] 물안개가 자주 피는 이맘때 옥정호가 내려다뵈는 오봉산에 오르면 신선이나 노닐 법한 풍경들이 펼쳐진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호반 위의 운해가 펼쳐놓은 별천지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햇살 받은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면 분주하게 가을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안개를 보지 않고 옥정호를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새벽잠을 설쳐가며 오봉산에 올랐다. 새벽 산행이 처음이라 앞만 보고 걷는데 앞서 가던 이가 갑자기 탄성을 내지른다. 그 소리에 놀라 산 밑을 내려보자 자욱한 운해가 옥정호를 뒤덮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장관에 숨이 턱 막힌다. 어디까지가 호수이고 산이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가슴이 벅차 단박에 정상까지 뛰어 오르자 벌써 사진촬영준비를 완료한 두 사람이 해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서히 붉은 해가 구름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옥정호 전경.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섬진강을 노래하는 김용택 시인이 재직했던 마암초등학교.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이거 완전 A급 운해구만. 기자 양반, 진짜 운 좋소.” 

카메라의 셔터가 쉴 새 없이 터진다. 세상을 가득 메운 듯 자욱한 운해 너머 첩첩히 늘어선 산 능선. 그 중 어느 것은 덕유요, 내장이요, 지리일 것이다. 저 멀리 마이봉도 눈에 들어온다. 훤히 동이 뜨자 서서히 걷히는 구름 아래로 옥정호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시대에 착공해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 해방 후 다시 착공했지만 6·25전쟁의 발발로 다시 중단, 그리고 1961년 박정희 대통령 때 다시 착공해 완공한 섬진댐. 전국의 수많은 댐 중 섬진댐 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댐이 또 있을까. 그것도 굵직굵직한 근·현대사와 맞물려 짓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으니 댐과 얽힌 사연 또한 녹록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섬진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것이 옥정호이다. 섬진강 상류에 속하는 옥정호는 정읍과 임실을 사이에 두고 잔잔히 흘러간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에게 섬진강은 자신이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이요, 사랑이요, 그 자신이었다. 그런 그가 교직생활을 하며 시를 짓던 마암초등학교가 있는 곳도 이곳 옥정호이다. 운암교삼거리에서 멀지 않은 마암초등학교엔 현재 32명의 학생들이 다닌다. 시인의 재직시절에 비하면 학생이 많이 늘어난 편이다. 김 시인은 2년 전 다른 초등학교로 전근가고 없지만, 시인이 노래하던 섬진강의 푸른 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유하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폐교된 움암초등학교. 아이들 없는 운동장엔 흑염소가 메어졌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운암면 소재지 버스 정류소 앞 담배가게에서 만난 김교만(88) 할아버지는 운암에서 태어나 한번도 이곳을 떠나본 적 없다. 물이 차기 전엔 외안날 아랫마을에서 살다가 1940년 댐이 처음 착공될 때 지금의 면소재지로 집을 옮겼다. 당시 담배와 버스표를 팔며 살던 집을 그대로 옮겨와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이 작은 가게도 할아버지 못지않은 세월을 보낸 셈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다시 집을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내쉰다. 

“댐에 물을 다 채우면 여그까지 물이 잠긴다네. 측량을 잘못한 게지. 해마다 물을 다 못 채워 생기는 손해가 2억도 넘는다니, 완공하고 40년이면 그 돈이 얼마여?”

우여곡절 끝에 댐을 완공하고도 정상적으로 댐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을을 다시 이주시켜야 할지 모르니 새로 집을 지을 수도 없다. 그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보수만 하고 산다. “여행 많이 댕긴께 잘 알겄네잉~. 여가 그래도 면인디 이렇게 허술허요. 요로코롬 생겨서 근가 서울서 영화 찍으러는 많이 오요.”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운암리에서 평생을 사신 김교만 할아버지. 섬진댐과 옥정호의 역사를 본 산증인이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김교만 할아버지가 하는 버스 터미널이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지나가는 외지인들의 눈에는 그저 한적하고 고풍스런(?) 시골마을이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고통과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사는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군산 미공군기지에서 날아든 전투기 두 대가 굉음을 내며 호수 위로 날아간다. 

옥정호 한가운데 신비로운 모양으로 떠 있는 섬 외안날은 행정구역상 입암리와 용운리로 나뉜다. 고작 두 가구 밖에 살지 않는 호수 위의 작은 섬이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는 것이 조금 의아하다. 하지만 인공호수에 의해 생긴 섬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 안 될 것도 없다. 그래서 이 섬을 관리하는 이장도 두 명이다.

외안날로 들어가는 나루터는 국사봉 아래 구암산장 앞에 있다. 옥정호 전체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낚시뿐 아니라 모터보트도 금지한다. 그러니 섬에 들어가려면 직접 노를 저어야 한다. 담배가게에서 만난 할아버지 한분의 도움으로 섬에 들어가는데, 외안날에 산다는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를 안고 저 멀리 배를 타고 나오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우체부만이 드나드는 섬에는 현재 두 가구가 살고 있다. 홀로 사는 박씨 할아버지와 젊은 이 부부다. 산장에서 만난 이장님은 5년 전 섬에 들어왔다는 부부에 대해 직접 물어보라며 극히 말을 아낀다. 말해주지 않으니 더 궁금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이 마을 출신도 아닌 사람이 섬에서 은거하듯 사는 이유를 굳이 파헤칠 까닭이 무에 있을까.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운암대교를 중심으로 상류에 있는 것이 입암리의 외안날이고 하류에 있는 것이 운정리의 점등이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5년 전부터 외안날 섬에서 살고 있다는 젊은 부부. 온 가족이 외출을 하는 모양이다. 2006년 10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외안날 나루터에 나와 앉은 개 한 마리는 처음 보는 외지인을 경계하지도 반기지도 않는다는 듯 그저 무심하게 쳐다만 본다. 동행한 최수종(75) 할아버지는 여기에 들어와 본 것이 30년만이란다. 나루터 옆에 살며 바라만 보던 예전 살던 땅을 이렇게 다시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앞장선다.

“이짝에 알밤나무가 겁나 있었는데 이젠 없구마잉. 쩌~짝에 은사시나무는 언제 저기 심었당가?” 

가을걷이를 끝낸 깨밭엔 묶여진 깻단이 옹기종기 서있다. 비닐하우스에서는 널어놓은 고추와 옥수수가 고운 제 빛깔로 말라가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탓인지 젊은 부부와 박씨 할아버지의 집 주변을 제외하고는 수풀이 울울창창하여 더 둘러볼 것도 없이 섬을 나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