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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명인별곡] 민족 무예 택견을 수호하는 무인 올곧은 택견꾼 정경화 명인
[명인별곡] 민족 무예 택견을 수호하는 무인 올곧은 택견꾼 정경화 명인
  • 박지원 기자
  • 승인 2015.04.01 0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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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여행스케치=충주] 끊임없이 활갯짓하는 두 팔, 굽혔다 펴길 되풀이하며 굼실거리는 무릎, 능청거리듯 활처럼 휘는 허리. 탈춤의 춤사위려니 생각한 찰나 날랜 몸이 사뿐히 날아오른다. 이내 단전에서 끓어오른 ‘익크’ 소리와 함께 잽싸게 뻗은 다리가 허공을 가른다. 과연 택견 명인 정경화다.

전통 무술로는 독일무이하게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에 이름을 올린 택견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을 접한 게 2011년이다. 중국의 태극권, 태국의 무예타이 등 세계의 내놓으라 하는 전통 무술을 모두 제치고 이룬 쾌거였다. 택견을 좀 안다고 자부했기에 더없이 기뻤다. 태권도에 발을 들여놓았던 1990년대 택견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다. 내 자신을 깎아내리는 얘기지만 그때만 해도 택견을 개의 댕견이나 삽살견 같은 품종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000년 역사를 품은 우리 민족 유일의 전통 무술이란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여하튼 당시 나는 “대련 한번 해볼까?”란 감독의 농에 가장 우렁차게 화답했다는 이유로 택견과 태권도 겨루기의 실험 재료가 됐다. “후훗.” 춤을 추는 듯한 택견의 굼실거림이 우스꽝스러웠다. 은근히 “까짓것 ‘회축’으로 후리면 널브러지겠구나”란 업신여김도 생겼다. 하지만 엷은 미소를 띤 입을 꽉 다물게 된 건 일각이었다. 전력을 쏟아도 녹록치 않았다. 부드럽게 움직이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손과 발 때문에 줄곧 고전을 면치 못했으니까. 상대가 연장자라서 제대로 된 공격은 하지 않고 고도의 방어 기술만 선보였다는 가당찮은 변명만 늘어놨다. “택견은 대단한 무예구나”란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됐다는 사실은 나만의 비밀로 간직한 채 말이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상념에 젖은 채로 한달음에 충북 충주 택견전수관 앞에 섰다. (사)택견보존회가 둥지를 튼 곳이다. 곧 국내 유일의 택견 예능보유자인 정경화 명인을 만날 시간이 도래했다는 설렘에 발걸음은 한 박자 빨라진다. “익크! 엑크!” 단전에 기를 모아 내뿜는 택견 고유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는 널따란 잔디밭을 지나 위용이 넘치는 기와 건물로 들어선다. 이윽고 백색 고의적삼을 차려입은 정경화 명인을 마주한다. 그의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은 몇 해 전 우연한 계기로 만난 이종격투기 선수 ‘밥 샙’과는 차원이 다른 무인의 기운이 느껴진다. 정경화 명인을 감히 ‘귀요미 야수’ 밥 샙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말이다.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정경화 명인이 택견에 몸담기 시작한 것은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교 때 결핵에 걸려 학교를 휴학하고 무상 치료를 받았어요. 증상이 호전돼 복학을 했지만 재발하고 말았죠.” 병세는 날로 심해졌고, 2차 치료는 무료가 아니었다. 초가삼간에 사는 형편에 약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은 정 명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육군사관생도가 꿈이었던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인근 풍류산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병원에서 3기라고 하더군요. 사망 선고나 진배없었죠.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산에 들어갔어요. 혼자 죽기로 결심했지요.” 16세의 나이에 풍류산이 품고 있는 개천사란 사찰에 기거하기 시작한 정 명인은 홀로 죽고자 했지만 생명의 끈을 아예 놓은 건 아니었다. 새벽이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법당으로 가 참선을 했다. 생식이 좋다는 말에 더덕과 도라지를 캐먹었고, 심지어 뱀과 지네도 잡아먹었다. 그러기를 6개월 즈음 놀랍게도 결핵은 완치됐다.

산중 생활을 마친 정 명인은 심신을 다스릴 수 있는 운동을 하겠다고 맘먹었다. 그러던 중 택견을 주제로 한 신한승 선생의 라디오 인터뷰를 듣고는 대번에 신 선생을 찾아갔다. 정 명인은 어린 시절부터 신 선생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시 충주경찰서의 호신술 사범이던 신 선생과 한동네에 살아서다. 그땐 그저 호랑이상에 다부진 몸을 가진 동네 아저씨 정도로만 여겼는데, 알고 보니 어릴 적부터 택견을 연마했고 레슬링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무인이었다. 더군다나 “안동에 김 씨란 자가 택견을 한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안동을 헤매는 등 택견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전국을 유랑하며 택견의 명맥을 유지시킨 인물이었던 것.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2015년 5월 사진 / 박지원 기자

정 명인은 이 같은 신 선생 밑에서 본격적으로 택견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처음 두 달은 ‘활갯짓’과 ‘품밟기’만 했어요. 춤을 추는 것 같아서 무예인가 싶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척 중요한 동작이란 걸 알았어요.” 활갯짓은 두 팔을 휘젓는 동작이며, 품밟기는 무릎을 굽혔다가 피는 ‘굼실’과 몸을 활처럼 젖히는 ‘능청’으로 이뤄진 보법이다. 어느 무술에서도 볼 수 없는 이 두 동작이 완벽히 어우러져야 상대 공격의 기세를 둔화시키거나,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택견에 있어서는 더 없이 중요한 동작이다.

정 명인은 피와 땀이 서린 연마 끝에 1995년 신 선생에 이어 제2대 택견 예능보유자가 됐다. 그간 택견인의 단결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탓에 가슴앓이는 그만 하고 싶다는 정 명인. 그래서 요즘에는 서울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는 등 택견의 생령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중이 택견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 마련에 대한 갈증은 시원하게 씻어내지 못 한 모양이다. “체계화된 상설 공연이 마련돼야 해요.

여행객을 위해 ‘이따금씩’ 펼치는 공연으로는 모자라지요. 여행객에게 택견을 선보이겠다고 하면 충주시에서 재정적 지원은커녕 제재하고 나서니까 아쉬울 때가 많답니다.” 정 명인의 목마름이 해소돼 아직도 일반인에게 생소한 택견이 널리 알려진다면 제2, 제3의 정 명인이 탄생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뇌중을 파고든다. 환갑이 넘은 지금도 뼛속만이 아니라 혈액까지 일편단심 택견뿐인 정경화 명인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은 건 나 하나뿐일까.

INFO. 충주시택견전수관
주소 충북 충주시 중원대로 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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