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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시골장터기행] 닷새마다 잠에서 깨 장을 펼치네 서천 판교오일장
[시골장터기행] 닷새마다 잠에서 깨 장을 펼치네 서천 판교오일장
  • 전설 기자
  • 승인 2015.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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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서천] 여기는 시간이 정지 된 충남 서천 판교마을. 사람은 간데없고 몇 겹을 덧댄 슬레이트 지붕아래 빛바랜 방앗간, 주조장, 철공소의 간판이 1960년대 그 어디께 멈춰 있다. 마을 전체가 빈집 같이 고요한데 닷새에 한 번 시끌벅적 활기를 되찾는 날이 있다니, 무슨 영문일꼬?

한때는 전국의 날고 기는 소물이꾼의 집합소였다. ‘충남 3대 우시장’ 중 하나인 판교우시장이 서던 시절에는 음무음무 소 울음소리, 시끌시끌 호객소리 뒤섞여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몰려든 인파 끼니 맞추느라 조막만한 마을 곳곳에 음식점이며 구멍가게가 줄줄이 생겼고 그나마도 빈자리 없이 미어터졌다. 하지만 모두가 이미 지나버린 왕년의 이야기일 뿐.


“마을이 소 반 사람 반이였지. 대단혔어 아주. 근데 소전 없어지고 마을이 확 죽었어. 한 십몇년 됐나. 젊은 사람들 시골에 발붙일 일 없고 늙은 사는 사람만 남으니 아주 조용허요.”
서울 용산역에서 서천 판교역을 잇는 기차는 하루 8대. 기차 시간 맞춰 손님을 태우러 나왔다는 택시기사 허기철 씨가 한방향을 가리킨다. “마을까진 택시 탈 거 없어. 5분만 걸어.” 짚어준 방향을 따라 판교역 왼편으로 난 굴다리를 지난다. 맞게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물어볼 사람 하나 없는 시골길 위에서 슬슬 불안감이 밀려온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장날 특유의 복작거림이 없다. 장이 서긴 서는 건가, 싶을 즈음 마을 입구에서 김연자 할머니와 마주친다. “신작로 따라 가다보면 논길 지나서 판교 농협이 나와. 장은 그 앞부터 시장까지 서는디 늦게 가면 사람 없어. 살 것 있음 점심 전에 후딱 다녀와야지. 늦으면 못 사.”

가슴 쓸어내리며 농협을 찾아가는 길에 골동품 가게에서 꺼내온 것 같은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유리창이 성하지 않은 적산가옥과 함께 사람 떠난 지 오래인 건강원, 철공소, 정미소 같은 폐가가 길가에 여럿이다. 사람 온기 없는 풍경이지만 내리치는 봄볕 때문인지, 고운 봄꽃 덕분인지 을씨년스럽지는 않다. 아버지 사진첩에서나 만나봤던 풍경을 실물로 접하니 그저 뜻 모를 반가움만 앞설 뿐이다. 누구는 이런 마음을 두고 향수(鄕愁)라 했던가.

골동품같은 마을을지나 소박한 난전으로.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골동품같은 마을을지나 소박한 난전으로.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장터 앞 '모우터'집. 카메라만 갖다 대도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이 한가득.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장터 앞 '모우터'집. 카메라만 갖다 대도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이 한가득.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신작로 따라 쭉 걸어 나가니 김 할머니 말씀대로 판교 농협 옆으로 소박한 난전이 보인다. 할머니 두어 분이 쑥이며 냉이 같은 봄나물을 늘어놓고 있다. “쑥이 새벽에 캔 거라 다 좋아. 다듬어 놨으니께 국 끓여 먹어.” 쑥국을 끓이면 족히 3일은 먹을 양의 쑥을 3000원에 산다. 돌아서는 동안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아 쑥을 캤을 할머니 모습이 어른거린다. 난전이라고 부르기에도 쑥스러운 좌판 몇 개를 지나면 간판 하나 없는 판교시장 입구다.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의 양옆으로 조그마한 점포들이 쏙쏙 들어차 있다.

봄날 심기좋은 '모듬쌈채', 상추, 쑥갓(오각형 종이봉투)씨앗.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봄날 심기좋은 '모듬쌈채', 상추, 쑥갓(오각형 종이봉투)씨앗.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판교시장 안쪽 씨앗집. 쑥갓 씨앗은 포대를 풀어 1000원 어치씩 덜어서 판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판교시장 안쪽 씨앗집. 쑥갓 씨앗은 포대를 풀어 1000원 어치씩 덜어서 판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겉으로는 작아보여도 장터는 장터. 국화빵 굽는 냄새가 고소한 시장 안에는 농기구, 생활용품, 옷가지 등등 입고 먹고 자는데 필요한 생필품이 빼곡하다. 그중에서도 좌대 한가득 쌓인 씨앗 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순무, 열무, 여주, 완두, 수박, 참외…. 그 가짓수가 끝이 없다. 꽁꽁 언 땅이 무르게 녹는 봄. 뭐라도 심어 볼까 서성이다 모듬 쌈 채소와 쑥갓 씨앗을 산다. “거름이고 뭐고 일체 주지 말고 그냥 흙에 뿌려 둬. 이런 계절에는 씨 뿌리는 게 일이지 뿌려만 놓으면 알아서 싹 트고 쑥쑥 크니까. 시골은 천지가 흙이라 상관없는데 도시에는 씨 뿌릴 때나 있나 몰라. 암튼 상추 하나 그냥 줄 테니까 잘 키워 먹어.” 둘을 사면 하나가 덤으로 얹어주는 것이 장터 인심이다. 덤 챙기는 재미에 푹 빠져 크지도 않은 시장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시장의 끝은 작은 어판장이다. 서해와 맞닿은 다사항이 지척이라 때깔 좋은 제철 해산물이 가득하다. 굴 파는 아주머니가 “떡굴이유. 들여가유” 오가는 사람을 불러 세운다. 그 뒤편 볕 좋은 자리에 박대, 갈치, 가오리가 꾸덕꾸덕 말라간다. 흔한 풍경을 특별하게 완성하는 것은 고대유물 같은 적산가옥이다. 검은 비닐봉지에 갈치를 담아주는 상인의 뒤로 언제 지어진 것인지 시대를 가늠하기 힘든 가옥들이 서 있다. 그 오묘한 조화를 어떻게 말로 풀까.

“서울에서 학생들 오면 집이고 구멍가게고 사진을 그렇게들 찍어가. 처음 보는 사람들 눈에나 신기하지, 백날 보고 사는 사람한테는 그냥 옛날집이지 뭐. 집이 100년이 됐고 200년이 됐고 상관있나. 그냥 그 앞에 물건 널어놓고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고 그런 거지.”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스케치북에 담아갈 텐데. 선 자리에서 카메라만 만지작댄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발걸음 멈추고 장터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다. 천천히 걸었음에도 1시간을 채우지 못하는 작은 장터가 못내 아쉬울 뿐. 돌아서기 섭섭해 시장 입구를 서성이는데 사발에 막걸리를 따르는 할머니 한분이 보인다. 장보고 돌아가는 길, 가볍게 들러 목을 축이는 조그마한 대폿집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판교마을 옥산집의 김박순 할머니가 말걸리 한 사발을 따라 주신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판교마을 옥산집의 김박순 할머니가 말걸리 한 사발을 따라 주신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수타 짬뽕이 맛있는 '옛날 중국집' 동생춘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수타 짬뽕이 맛있는 '옛날 중국집' 동생춘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내가 고향이 옥천이라 옥천집이라고 간판 걸었어. 올해 여든 일곱인데 아직 일을 혀. 자식을 다섯 낳았는데 다 서울 가뿔고 심심하니께. 늙어서 사람 쫓아다니는 것도 못할 일이라 사람들이 날 찾아오게 만들었지. 막걸리는 한잔에 1000원, 소주는 1병에 3000원 씩 받어. 김치에 고기 넣고 짠지국 끓였는디 막걸리 묵고 갈 거면 퍼 줄테니까 뜨건 국물 먹고 가.”
김박순 할머니가 뽀얀 모시생막걸리를 한 사발 따라 주신다. 술잔을 받고 보니 눈앞에 파김치, 깻잎 장아찌, 콩나물 무침, 콩자반, 오이나물, 날배추까지 안주만 여섯 가지다. 막걸리를 양껏 들이켜고 벌겋게 끓여낸 짠지국 한 수저 떠먹으니 꺼억, 기분 좋은 술트림이 터진다.


“내가 이 집 수양아들인데 이집이 동네사람 다 아는 진짜배기야. 오다가다 한 번씩 들러서 잔술 먹고 가지. 가끔 서울이고 어디서 젊은 사람들 오면 뭐가 좋은지 연신 사진 찍어가.”
딱 4명 앉을 자리만 있는 허름한 대폿집. 모르는 사람과 술잔을 부딪힌다. 이방인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말하면, 본토박이 농군은 그 답례로 언제부터 어떻게 살았는지를 얘기해준다. 옛 이야기 안주삼아 마신 낮술에 뺨에 열이 오른다. 취하기 좋은 장터의 정오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요리 레시피 - 박대 양념구이
① 판교오일장에서 빛깔 좋은 생물 박대를 산다. 큼지막한 녀석으로 골라 5000원에 7마리. 볕 좋은 자리에서 말려 꾸덕꾸덕한 반 건조 박대도 OK!
② 장터의 박대는 이미 내장을 깨끗이 발라 둔 상태다. 따로 손질할 필요 없이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물기를 제거하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밑간을 한다.
③ 오븐이나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노릇노릇해 질 때까지 튀기듯 굽는다. 충분히 구워야 뼈를 바르지 않고 통째로 먹기에 좋으니 참고할 것.
④ 고추장·고춧가루·다진 마늘 1큰 술씩, 진간장·물 2큰 술씩, 요리 술·물엿 3큰 술씩에 양파 반개를 다져 넣고 자글자글 끓여 빨간 양념을 만든다.
⑤ 그냥 먹어도 맛있는 박대 구이에 만들어 둔 양념장을 앞뒤로 고르게 펴 바른다. 박대 살에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이 벨 정도로 약한불에서 졸인다.
⑥ 접시에 보기 좋게 담고 쪽파를 송송 썰어 올려주면 박대 양념구이 완성. 서천에서 공수한 생막걸리 한사발을 곁들여 맛있게도 냠냠.


INFO. 판교오일장
특산품 산나물, 박대, 가오리 등 제철 해산물
날짜 매월 5, 10일
주소 충남 서천군 판교면 종판로 895(판교 농협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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