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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제주 맛의 방주] 밥상문화유산 보존 프로젝트 제주 ‘맛의 방주’에 오르다
[제주 맛의 방주] 밥상문화유산 보존 프로젝트 제주 ‘맛의 방주’에 오르다
  • 전설 기자
  • 승인 2015.04.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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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먼 나라 딴 나라의 음식들이 국경을 넘는다. 듣도 보도 못한 신(新)메뉴가 앞 다퉈 쏟아진다. 바야흐로 맛의 대홍수 시대. 그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기 전 바다 저편 우리의 밥상문화유산을 찾아라, 먹어라, 지켜라! 이 봄, 방주에 태워서라도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할 탐라의 토속음식을 탐하는 도다.

비장탄에 익힌 등심 한 점. 대대손손 물려줘야 할 문화유산이로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비장탄에 익힌 등심 한 점. 대대손손 물려줘야 할 문화유산이로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제주에는 ‘검은 보물’이 있다

흑우 구이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맛 좋고 진귀한 검은 보물도 많다. 제주의 3대 검은 보물이라 불리는 흑우, 흑돼지, 흑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중 먹물을 쏟아 부은 듯 새까만 흑우는 몸집은 작지만 힘이 좋아 오랜 세월 농군의 효자 노릇을 해온 제주의 토종 가축이다. 조선왕조실록, 탐라순력도, 탐라기년 등의 옛 문헌 속에 제향·진상품으로 기록돼 있으며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다.
 

흑우 등심, 안심, 특수 부위, 그날그날 신선한 부위로 채워 넣는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흑우 등심, 안심, 특수 부위, 그날그날 신선한 부위로 채워 넣는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흑소 전문점 ‘흑소랑’은 천연기념물의 식용 허가를 받아 서귀포시 성산읍 농장에서 흑우를 키운다. 축산학을 전공하고 흑우 논문을 집필한 송동환 대표가 다년간의 연구를 거듭해 개발한 사료를 먹여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 “일반 소기름이 실온에서 누렇게 굳는데 비해 참기름은 냉장고에 보관해도 굳지 않죠. 불포화지방산 오메가3 성분 때문인데요, 일반 소고기에 비해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흑우도 고기를 구울 때 나온 기름이 맑고 낮은 온도에서도 굳지 않아요. 그러니 육질도 부드러울 수밖에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맛도 있다는 뜻. 그럼 칭찬 자자한 흑우 맛 좀 봐 볼까? 식전에 육사시미와 육회로 입맛을 돋우는 사이 새하얀 비장탄에 시뻘겋게 불이 오른다. 환상의 마블링 자랑하는 흑우 특수부위와 등심을 불판에 올리는 순간 차르르, 음악 같은 고기 굽는 소리.

귀한 손님을 맞는 날 흑우를 찾는다는 김선호 씨는 “보통 스테이크가 어린아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라면, 이 집은 어른 손가락 두 마디죠. 고기는 두툼한데 육질이 하도 부드러워서 이쑤시개가 필요 없어요.”하고 장담한다. 도톰한 등심을 불을 입히듯이 구워서 냉큼 입에 넣는다. 본연의 맛을 보기 위해 소금조차 찍지 않았는데 이게 웬걸. 도톰한 육질을 씹는 순간 뜨거운 육즙이 왈칵 터진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천연의 감칠맛이 이리도 즐거울 줄이야. 조금도 질긴 데 없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 말 그대로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 소 좀 먹어봤다 자부하는 이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흑우, 맛의 방주 일등석을 차지하다.
 
INFO. 흑소랑
메뉴 특안심 7만원, 특수부위 5만원, 모둠구이 2만9000원, 등심특수 3만9000원
주소 제주도 제주시 연북로 631 1층  
 

상다리 휘어지는 수라원의 돔베고기와 몸국 한 상.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상다리 휘어지는 수라원의 돔베고기와 몸국 한 상.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선물하는 오겹살'운 불판에 올린 멜젓에 푹 찍어 먹어야 제맛.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선물하는 오겹살'운 불판에 올린 멜젓에 푹 찍어 먹어야 제맛.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제주의 토속음식으로 삼합을 쌓다
돔베고기·몸국·흑오겹

예부터 제주의 잔칫날은 살집이 투실투실하게 오른 돼지를 잡는 것으로 시작됐다. 먹을 수 없는 털이나 뼈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요리해 상에 올렸는데, 돼지피는 메밀과 보릿가루를 섞어 제주식 전통순대 ‘수애’를 만들고 고기는 큰 솥에 삶은 뒤 작은 나무도마를 뜻하는 ‘돔베’에 올려 손님상에 냈으며 고기를 삶은 육수에 해초 몸(모자반)을 넣어 국을 끓였다.

제주인의 삶과 땔래야 뗄 수 없는 돼지. 그중 으뜸은 까만 털이 송송 박힌 흑돼지가 아닐는지. 처녀의 입술처럼 선홍빛이 도는 살코기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비곗살이 환상의 마블링을 이룬다. 그 맛 한번 보려는 육지 사람을 위해 ‘선물하는 오겹살’이 등장했을 정도. 특급 1등급 흑돼지 오겹살을 전국각지로 보내는 ‘수라원’은 흑오겹, 돔베고기, 몸국 등 제주의 토속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맛집계의 종합선물세트다.

“서울손님 오시면 새우젓을 찾는데 저희는 멜젓(멸치젓)을 내요. 감칠맛도 깊은 맛도 멜젓이 최고거든요. 흑오겹을 멜젓에 찍어먹고 따끈한 돼지수육도 한번 맛보세요. 제주에서는 ‘돔베고기’라고 하는데 미리 삶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삶아내 항상 촉촉하죠.” 오른쪽에는 노릇노릇한 흑오겹, 왼쪽에는 야들야들한 돔베고기. 간밤에 돼지꿈을 꾼 것도 아닌데 먹을 복이 터졌다. 적당히 구워 금빛이 도는 흑오겹 한 점을 멜젓에 푹 찍어 먹는다. 폭탄처럼 터지는 육즙과 짭조름한 바다의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인절미처럼 쫄깃쫄깃한 껍데기는 맛의 절정. 이번에는 돔베고기 차례.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투명하게 삶은 비계와 육즙을 가득 품은 살코기가 부드럽게 넘어간다. 고기 맛에 취해있는데 김이 펄펄 나는 몸국 한 뚝배기가 앞에 놓인다.

“제주 속담에 ‘구글 하영 머그민 가시어멍 눈 멜라 진댕 헌다’하는 말이 있어요. 예전에는 국 한번 끓이려면 아궁이에 장적을 넣고 불을 지폈잖아요. 그러니 사위가 눈치 없이 국을 많이 먹으면 각시의 어멍, 즉 장모님이 불 떼느라 눈이 매워 애먹는다는 의미지요.”

해초류의 하나임 몸에는 꼬마전구 같은 녹색 방울이 달려 있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해초류의 하나임 몸에는 꼬마전구 같은 녹색 방울이 달려 있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수라원의 강현희 사장이 초록의 몸을 소개한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수라원의 강현희 사장이 초록의 몸을 소개한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제주 토박이 강은희 씨의 속담풀이를 들으며 숟가락을 든다. 돼지뼈를 푹 고아낸 육수에 몸을 넣고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한 국물에 푹 삶은 몸이 얼기설기 엉켜있다. 든든한 한 끼로도 손색이 없어 혼례와 상례 등 제주사람들의 크고 작은 집안 대소사에는 빠지지 않고 올랐던 잔치 음식을 먹는다. 한 수저에 제주인의 삶과 두 수저에 맛있는 역사가 담긴다.

INFO. 수라원
메뉴 흑오겹살 1만5000원(180g), 돼지수육 中 3만원 大, 4만원, 몸국 7000원
주소 제주도 아라1동 구산로 70-1
 

따끈한 보말국에 밥 한술 말아 꿀꺽. 입안에 바다가 넘친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따끈한 보말국에 밥 한술 말아 꿀꺽. 입안에 바다가 넘친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갯바위가 키운 맛있는 보석
오분자기 뚝배기·보말국
제주의 바다처럼 부지런한 보물창고가 또 있을까. 척박하기 이를 때 없는 돌 틈에서 오분자기, 보말, 구살(성게), 조개, 깅이(방게)등 맛있는 보석들을 키우니까 말이다. 특히 오분자기는 흑돼지, 다금바리, 한라봉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주 미식여행의 대명사다. 일명 떡조개라고도 부르는데 특유의 꼬들꼬들한 식감과 담백한 맛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예전에는 갯바위 앞에 가면 오분자기 천지였어요. 그때만 해도 전복은 쳐주지도 않았죠. 지금은 씨가 말라서 가끔씩 구경만 하는 정도예요. 그 흔하던 보말조차 보기 힘드니까요.”

김연숙 씨가 보말이 돌맹이처럼 굴러다니고 물질 한번 하면 두 손에 오분자기를 쥘 수 있던 시절의 풍경을 전한다. 그 시절, 공깃돌 대신 보말을 잡고 놀다가 저녁이 돼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는 한주먹도 안 되는 사냥거리를 가지고도 보글보글 뚝배기를 끓여주던 기억이다. 지나간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다행히 추억의 맛을 지켜가는 맛집은 남아 있다.

박복진 사장이 끓이는 해물 뚝배기. 운이 좋으면 구경하기도 힘든 오분자기 뚝배기를 맛볼 수 있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박복진 사장이 끓이는 해물 뚝배기. 운이 좋으면 구경하기도 힘든 오분자기 뚝배기를 맛볼 수 있다.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오분자기 대신 쫄깃한 전복은 사시사철 준비돼 있으니 걱정 뚝.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오분자기 대신 쫄깃한 전복은 사시사철 준비돼 있으니 걱정 뚝. 2015년 5월 사진 / 전설 기자

25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건식당’은 오분자기 본연의 맛을 뚝배기에 담는 건강 맛집이다. 따로 소문내지 않아도 어디서 귀띔을 받았는지 여행길에 나선 육지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곤 한다. 무슨 비결이 있나 눈을 씻고 찾아보는데 맛의 비밀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냥 된장 풀고 고춧가루 치고 거기다 오분자기 넣는데, 요즘엔 통 잡히지를 않아서 대신 전복을 넣어 끓이지. 팔팔 끓으면 바지락 한 줌 넣고 성게알 툭 떨어트려 넣으면 끝이야.”
조미료 없이 맛이 날까 싶지만 속임수 없는 바다 맛을 한 수저 넘기는 순간, 이맛 한 번 더 보려고 바다 건널 때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전복뚝배기도 훌륭하지만 더욱 놀라운 맛의 반전은 보말국이다. 보말은 제주도 사투리로 ‘고둥’을 부르는 말인데, 끝이 뭉뚝한 고깔처럼 생긴 바다고둥을 껍질째 삶은 뒤 바늘로 하나하나 속살을 꿰내 국으로 끓여먹는다. 보건식당의 보말국은 언뜻 보면 평범한 미역국같다. 하지만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저으면 동글동글한 보말이 한가득이다.  옥빛이 나는 맑은 국물을 호로록 들이켜면 입안에 구수하고도 맑은 바다맛이 뭉근하게 퍼진다. 성게알로 마무리를 한 것인지 깊은 단맛이 난다. 음식도 주인을 닮는 것인지. 소박한 겉모습과 달리 깊은 내공의 맛이 내는 것이 식당이나 음식이나 쏙 빼다 박았다.

INFO 보건식당
메뉴 오분자기 뚝배기 1만6000원, 전복 뚝배기 1만1000원, 배말국 8000원
주소 제주도 제주시 동광로6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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