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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김준의 섬 여행 56] 미역 떨어지면 돈이 떨어지는 기라 경남 통영시 매물도
[김준의 섬 여행 56] 미역 떨어지면 돈이 떨어지는 기라 경남 통영시 매물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5.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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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스케치=통영] 소매물도 선착장에 배가 닿으니 궁둥이를 붙일 자리도 없이 가득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빠져나갔다. 이제 배 안에 남은 사람은 모두 다섯. “여기가 소매물도입니다.” 승무원은 매물도로 가는 사람들을 다시 확인한 후 출발했다.


옛날에는 매물도를 마미도(馬尾島)라 불렀다. 섬의 모습이 마치 장군이 말안장을 풀어놓고 휴식을 취하는 형국이라 붙여진 지명이다. 하지만 요리조리 뜯어보아도 장군이나 말은 보이지 않는다. 검푸른 바다와 삼여도만 아른거릴 뿐이다. 예전과 비교하면 찾는 사람이 늘긴 했지만 소매물도에 비하면 그 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섬엔 당금마을과 대항마을 두 마을이 있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매물도에 오르면 통영 바다의 크고 작은 섬을 볼 수 있어 좋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해를 품다
대항마을 선착장에 내렸다. 말 등에 해당하는 잘록한 능선에 있는 마을이다. 뒤편으론 섬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210m)이 솟아 있다. 등산로는 대항, 당금 두 마을 중 어디에서 시작해도 좋다. 대항마을에서 시작한다면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꼬돌개를 지나 등대섬전망대, 장군봉, 홍도전망대, 당금마을이 이어진다. 능선길 곳곳에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해를 품은 길 ‘해품길’이라 한다. 매물도 외에 소매물도(등대길), 미륵도(달아길), 한산도(역사길), 연대도(지겟길), 비진도(산호길) 총 6개의 섬 길을 연결해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이라 이름 붙였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섬 정상을 장군봉이라 부른다. 그 정상에 말과 장군상을 
설치했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매물도에 사람이 처음 자리 잡은 꼬돌개는 드물게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물길이 좋은 곳이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꼬돌개에 이르자 드문드문 빈집과 집터가 보였다. 1810년경 매물도에 들어온 사람들이 처음 정착한 이곳은 바람도 피할 수 있고 물길도 좋은 곳이다. 하지만 을유년(1825)과 병술년(1826)의 연이은 흉년과 괴질을 피할 수 없었다. 생존자 한 사람 없이 꼬돌아졌다(‘꼬꾸라졌다’는 의미의 사투리). 그래서 꼬돌개라 불린다. 그 후 섬에 들어온 사람들은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아픈 속내를 알 리 없는 객들은 푸른 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등대섬에 취한 채 그저 즐겁다.

장군봉 정상까지는 오르막길이다. 가쁜 숨을 쉬며 올라서니 정상에는 장군과 말이 쉬고 있다. 조각가 조영철의 <군마상>이라는 작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가고 싶은 섬 가꾸기’의 ‘예술섬’으로 선정돼 섬 곳곳에 이러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푸른 섬과 바다가 하늘빛을 받아 반짝인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로 들어갈 것 같고 하늘로 오를 것 같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돌담이 아름다운 골목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서면 어김없이 빈집이다. 이 돌담도 언제 헐릴지 모를 일이다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오롯이 늙은 해녀와 짭조름한 해산물이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매물도 주민들은 샛바람이 무섭다
어유도전망대에 이르자 마을이 절벽 아래에 아스라하고, 북쪽 말의 머리 부분 너머로 어유도가 고개를 내민다. 바닷물이 말라붙을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노닐 던 곳이란다. 미역도 풍성해 큰 섬에 살던 사람들이 건너가 머물렀다. 한때 여섯 가구까지 거주했지만 1976년 이주계획에 의해 무인도가 되었다. 지금은 당금어촌계가 관리하고 있다. 주민들은 어리섬이라 부른다.

어유도에는 ‘허치니강정’이라는 곳이 있다. 어느 봄날 섬 주민이 뽈래기(볼락)를 낚기 위해 어유도로 갔다. 정신없이 볼락을 낚는데 ‘풍덩풍덩, 와르르’ 돌이 떨어지고 무너졌단다. 놀란 어부는 급히 배를 타고 자리를 떴는데 그 직후 강한 샛바람이 불었다. 가만히 있었더라면 물귀신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도깨비장난 같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장소를 허치니강정이라 부른다. 허치니는 도깨비를 뜻하며 강정은 오랜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절벽을 이르는 말이다. 나무강정, 대리비강정, 촛대바위강정, 음지강정 등도 있다. 파도와 바람이 매서운 곳임을 의미한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해녀가 사용하는 테왁과 오리발.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제주 해녀, 매물도에 머물다

점심도 거른 채 해품길을 걸었더니 뱃속이 야단법석이다. 당금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길목에 있는 구판장을 찾았다. 우선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았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고 아침에 산 충무김밥을 펼쳤다. 바로 그때 할머니 한 분이 시꺼멓게 생긴 것을 불쑥 내밀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삶은 군소였다. 군소는 미역이나 파래 등 해조류만 먹으며 청정 해역에서 자란다. 할머니가 물질을 하다 잡은 것이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방풍과 돌나물은 두릅과 함께 봄을 상징하는 나물이다. 모두 매물도에서 나며 구판장이나 골목에서 판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사실 매물도에는 해녀가 없었다. 1925년경 하나둘 들어오다가 1930년대 제주 해녀들이 왔다. 당금마을에서는 직접 해녀배를 운영하기도 했다. 해녀가 등장하기 전엔 미역을 채취하려면 낫대(긴 장대에 낫을 묶은 것)나 트리(긴 장대를 X자 모양으로 묶은 것)를 사용했다. 그러니 깊은 바닷속에 있는 미역, 전복, 성게, 해삼, 우뭇가사리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훗날 해녀가 온 이후에야 이것들을 채취할 수 있었다. 해녀들은 수확물을 마을과 반반씩 나누었다. 품질이 좋으니 충무나 마산에서도 날게 돋친 듯 팔렸다. 그 덕에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섬이 흥청거릴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혼기가 찬 해녀는 매물도에서 사내를 만나 자리를 잡기도 했다. 당시 70여 가구에 해녀만 20여 명에 이르렀다. 지금은 3명만 물질을 하고 있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매물도 섬 길을 걷는 행복 중 하나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6월 사진 / 김준 작가

갱문에서 바당으로 보는 눈이 넓어지다
매물도에서는 갯바위와 수심 낮은 어장을 갱문이라고 한다. 전라도의 완도, 여수, 신안에서 ‘갱번’이라 부르는 곳이다. 생활력이 강한 해녀는 물이 들 때면 산비탈을 일궈 밭을 만들고 물이 나면 갱문에서 해초를 뜯었다.

매물도 주민들이 갱문을 넘어 바당(바다)까지 보는 눈이 생긴 것은 해녀들이 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다. 깊은 바다에 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바당의 미역과 홍합과 성게는 지금도 매물도 최고의 먹거리이자 소득원이다.

특히 매물도의 미역 채취는 남도보다 일찍 시작한다. 3월에 시작해서 6월이면 끝이다. 3월에 채취한 초벌 미역을 초각, 4월과 5월에 채취한 것은 중각, 그리고 끝물에 채취한 것을 망각이라 한다. 구판장 안주인 김 씨는 미역을 사려거든 지금 사라고 알려줬다. 망각은 뻣뻣하고 국물도 초각이나 중각처럼 좋지 않다는 것이다.

배가 도착할 시간이 되자 막 잡아온 해삼, 소라, 멍게, 벗굴이 선창에 차려졌다. 오가는 여행객들은 기웃기웃할 뿐 선뜻 사가는 사람은 없다. 손에는 오는 길에 뜯었는지 나물이 한 봉지씩 들려 있다. 주민들이 뜯은 나물을 사가면 서로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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