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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비경 트레킹] 화림동계곡따라 정자(亭子)가 가득한 길 경남 함양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길
[비경 트레킹] 화림동계곡따라 정자(亭子)가 가득한 길 경남 함양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길
  • 박효진 기자
  • 승인 2015.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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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여행스케치=함양] 경남 함양에는 마치 정자(亭子)의 백화점 같은 길이 있다. 시원한 풍광을 자랑하는 금천을 따라 아기자기한 정자와 시원한 너럭바위가 많아 예부터 ‘팔담팔정(八潭八亭)’으로 불리던 화림동계곡의 선비문화탐방길이 그곳이다. 오늘은 남강천의 상류인 아름다운 금천 변을 따라 화림동계곡을 걸어보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길에서 만난 고사리가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호성마을 출신 계은 배상매 선생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경모정.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예부터 함양은 ‘좌 안동, 우 함양’으로 불리던 선비의 고장이다. 선비의 고장답게 함양 곳곳에는 정자와 누각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그중 영남 유생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화림동계곡에는 특히 아름다운 정자가 많이 남아있다. 이 아름다운 정자를 바라보며 남강천의 상류인 금천(錦川)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할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로가 그것이다.  

이 길의 들머리는 봉전마을의 거연정 휴게소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거연정 휴게소에는 주차장과 화장실, 작은 상점까지 있어 화림동계곡길 걷기의 시작점으로 제격인 곳이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 잡은 거연정.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금천과 어울린 람천정의 우아한 자태.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때 이른 더위에 가벼운 복장으로 거연정 휴게소를 나선다. 휴게소를 나서자마자 길 건너 금천 암반 위에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의 정자가 눈에 띈다. 이 길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정자인 거연정(居然亭)이다. 거연정은 1640년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서 선생이 처음 지었으나, 1853년에 화재로 불탄 것을 1901년에 그의 후손들이 중수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남강천의 경치가 빼어난 곳에 정자가 들어서 있으니 자연과 어울림이 기가 막히다. 그 풍경이 아름다워 사진 몇 장을 찍고 길을 나선다.

본격적으로 화림동계곡 길을 걸으려고 나섰건만, 불과 150여m도 못 가서 이번에는 군자정(君子亭)이 길을 가로 막는다. 이 길에서 두 번째로 만나는 정자인 군자정은 조선시대 문신인 일두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02년에 건립한 정자로서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군자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담하고 소박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금천과 잘 어울려 단아한 풍취를 풍기는 건물이다. 

군자정을 돌아보고 봉전교를 건너 금천 변에 목조데크로 잘 닦인 길을 따라 가는데, 불과 200m도 못가서 세 번째 정자를 만나고 만다. 이번에는 팔각으로 지어진 영귀정(詠歸亭)이다. 안내판이 없어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지만 거연정이나 군자정에 비해 후대에 지어진 정자로 보인다. 이 길이 정자가 많은 길이라는 것은 알고 왔지만 반경 300m 이내에서 3개의 정자가 만나니 가히 ‘정자의 백화점’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싶다. 

이제 제대로 걷는가 싶어 발걸음도 가볍게 나서는데 화림동계곡의 절경이 걷는 이의 시선을 자꾸 붙든다. 화림동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錦川)이 남강천으로 흘러내리면서 멋진 너럭바위와 천변 숲과 함께 어울리며 멋진 경치를 만드는 계곡이다. 이름에 꽃 ‘화(花)’자와 수풀 ‘임(林)’자를 쓴 것처럼 이 길에는 이름 모를 꽃과 싱싱한 녹음을 자랑하는 나무가 가득하다. 

초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목조데크를 따라 어느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숲이 거기에서 끝나고 포장도로가 걷는 이를 맞이한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맞게 걸었다는 표식인 냥 이 길의 안내판이 나타난다. 약 200m 정도 포장도로를 따라 대전통영고속도로 굴다리까지 가서 왼쪽으로 꺾으니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길이 다시 반갑게 맞아준다.  


나무데크를 따라 버드나무, 전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진 숲을 지나 10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이 길의 네 번째 정자인 동호정(東湖亭)이 보인다. 화림동계곡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정자인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몽진을 도와 공을 세웠던 동호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895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 앞의 푸른 물결을 자랑하는 옥녀담과 너럭바위인 차일암과 함께 어우러지니 선경(仙境)이란 이런 풍경을 말하는 것인가 싶다.

동호정을 지나 다시 녹음이 무성한 천변 길을 따라 걷는데 여기저기서 나비와 새가 날아다닌다. 이 길이 건강한 것 같아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길을 따라 10여분쯤 걸으니 천변 숲길이 끝나고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가 맞이한다. 농로를 따라 호성마을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다시 너른 천변이 이어지고 거기서 다섯 번째 정자인 경모정(景慕亭)을 만난다. 경모정은 조선 영조 때 호성마을 출신의 문신이던 계은 배상매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78년에 건립한 정자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지는 않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정자가 경치가 빼어난 너럭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으니 가히 쉬어가기 좋은 정자다. 

경모정에서 잠시 쉬었다 갈 길이 멀었다는 핑계로 일어난다. 이제 길은 다시 짙푸른 녹음이 묻어나는 화림동계곡 천변을 따라 이어진다. 10여분쯤 걸으니 녹음이 무성한 숲길 사이로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은 여섯 번째 정자인 람천정(濫川亭)이 보인다. 고풍스러운 외관에 비해 람천정은 그리 오래된 정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 흔한 안내문도 없고, 문화재번호도 없지만 풍경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쉼터로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호성마을 사과밭에 사과꽃이 활짝 피었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정유재란 때 산화한 선열들을 기리는 호국 사당 황암사의 모습이 멀리 보인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람천정을 지나 다시 금천을 가로질러 황암사(黃巖祠) 방향으로 향한다. 이정표를 따라 시멘트로 포장된 둑길을 따라 20분쯤 걸으면 둑길이 끝나는 지점에 황암사가 있다. 황암사는 이름만으로는 사찰이 떠오르지만, 정유재란 때 왜적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3,500명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는 호국 사당이다. 잠시 들러 그들의 희생을 추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호성마을 앞의 이정표.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이제 마지막 구간이다. 황암사 앞에서 육십령로(국도26호선)와 연결된 서하교를 건너 지금은 차량이 다니지 않는 옛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 모퉁이를 크게 돌아 좀 더 걸으니 다시 국도가 나타난다. 이 길은 현재도 차량이 다니는 길이므로 걷는 이들이 조심해야 할 성싶다. 이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니 왼편으로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따라 둑길을 걸으니 멀리 이 길의 종착지인 농월정(弄月亭) 이정표가 보인다.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화림동계곡에서 가장 화려하고 규모가 큰 동호정. 2015년 6월 사진 / 박효진 기자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지은 정자로서 2003년 화재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농월정이 있던 자리 앞의 계곡은 여전히 맑고 푸르다. 이 계곡에 조용히 발을 담그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화림동계곡의 아름다움이 그대 마음속을 파고들 테니 말이다.

INFO.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길
코스: 거연정-군자정-영귀정-동호정-호성마을-경모정-람천정-잠수교-황암사-농월정
거리: 5.5km
소요 시간: 1시간 30분
주소: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831-1(거연정 휴게소)

TIP. 종착지인 농월정에서 출발지인 거연정 휴게소로 돌아가려면 농월정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군내버스를 타고 봉전마을 앞에서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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