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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간이역 여행] 그대를 위로하고 치유해줄 작고 오래된 것, 간이역
[간이역 여행] 그대를 위로하고 치유해줄 작고 오래된 것, 간이역
  • 김다운 기자
  • 승인 2015.08.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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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여행스케치=대구, 논산] 닳아빠진 나무의자의 거친 표면과 적막이 감도는 플랫폼. 분에 넘치는 것은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 간이역의 풍경에 마음이 동한다. 경쟁심을 연료로 쉼 없이 돌진하는 뭇 사람들의 걸음을 붙잡는 그곳.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30분이 걸리는 시대에 “멈춰라, 얍!” 마법을 거는 간이역으로 향한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옹기종기 행복마을은 골목마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폐쇄되지 않은 추억, 대구 동촌역

생애 처음 보조바퀴에 의지하지 않고 두발자전거를 타던 길을 기억한다. 100원이면 못 살 게 없었던 동네 문방구, 뽑기 아저씨를 애타게 기다리던 교문 앞…. 모두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하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이따금 그때 그 코흘리개의 눈에 온 우주처럼 느껴졌던 장소를 향해 추억행 열차를 탄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벽화마을에서 반가운 얼굴, 태권브이를 만났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동 사람들에겐 ‘빠-앙’ 기적 소리 울려 퍼지던 기찻길이 바로 그러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에겐 듣기 싫은 소음 공장이었을, 또 누군가에겐 고대하던 만남을 의미했을 자그마한 간이역. 동촌역은 1917년 태어나 2008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90년이 넘도록 동촌동(구 검사동)의 풍경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기차역으로서 소명을 다한 지금은 ‘동촌역사 작은도서관’이란 이름으로 역생(驛生) 제2막을 쓰는 중이다. 2000여 권의 책과 함께 전시된 낡은 근태처리부, 장표기록부, 방송장치(토크백)에서 흘러간 시간을 또렷하게 읽을 수 있다.

폐선부지는 ‘대구선공원’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은퇴한 철길의 뒷모습이 쓸쓸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 공원의 끝에서 ‘옹기종기 행복마을’을 만난다. 코흘리개들의 우상이었던 태권브이, 영원한 ‘애증의 듀오’ 톰과 제리 등 반가운 그림이 가슴을 덥히는 벽화마을이다. 기찻길이 없어지고 공군비행장의 소음까지 심해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던 차. 그림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동구청의 지략이었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낡고 쓸모없던 폐철교가 카페와 명상실로 꾸며진 ‘아양기찻길’이 되었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그림 때매 동네 분위기가 바껴뿌니까 신기하다 아니가. 이거 다 구청에서 그려줬다. 사람들 몰려들어가 안 귀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은데 사람 사는 것 같고 좋으네. 근데 사진 찍겠다고 화분 밟는 건 쫌 안했으면 좋겠다. 이거 봐라. 여 풀 다 죽어뿟다 아이가. 조금 자랄라카면 밟혀뿌고, 싹 좀 틔우나 싶으면 밟혀뿌고….”

골목마다 숨어있는 깜찍한 벽화를 샅샅이 구경한 뒤엔 금호강으로 걸음을 옮긴다. 잔잔한 강 위에 그림처럼 걸린 ‘아양기찻길’을 만날 차례다. 본래 동촌역처럼 대구선이 통과하던 철교였으나 열차가 끊긴 후 애물단지처럼 방치되어왔다. ‘이걸 철거해, 말아?’ 동구청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리모델링을 결정했고, 2013년 완성된 철교는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 중 하나인 독일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받기에 이른다. 큰 성형수술을 받은 셈이지만 강화유리가 깔린 바닥에는 아직도 옛 철길이 비친다. 다리의 중앙부에는 두 곳의 카페가 쉼터를 자처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명상실도 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에 시험 점수에 좌절한 학생이나 정년퇴임 위기에 놓인 중년들이 머리를 비우고자 많이들 찾아온다.

INFO. 동촌역
주소 대구시 동구 동촌역사로3길 35
문의 070-4214-6859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철도문화 체험장으로 탈바꿈한 연산역.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철도문화 체험장으로 변신! 논산 연산역
“논산역을 이용하실 고객님은 (여기가 아니라) 다음 역에서 하차하시기 바랍니다.”
충남 계룡역과 논산역 사이에 자리한 연산역은 논산역과 이름이 비슷한 탓에 매번 ‘주의 방송’이 필요하다. 그마저도 귀가 어두우면 “여기가 논산역이야?”하며 엉겁결에 내리게 되는 곳. 1911년 영업을 시작한 이곳은 무궁화호가 하루 11번 정차하는 역으로,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지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그나마도 제일 유난스러운 것은 여름철 매미소리 뿐. 돌연 무인화의 여파에 휩쓸린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2007년의 어느 날, 역을 되살리기 위해 골몰하던 직원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라져 가는 철도문화를 알리고 간이역도 살릴 ‘철도문화체험’을 기획한 것이다.

“철길이 3줄이었다가 2줄로 바뀌면 기차는 어떻게 가요? 저 무거운 기차를 들어서 옮길 수도 없고.”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일일 기관사가 된 아이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선로변환장치를 작동시키자 무거운 철길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아이들은 신기해서, 어른들은 반가운 맘에 손뼉을 친다. 개표라는 중대 업무도 있다. 오늘 날짜를 찍어 승차권을 만들고 열차에 탑승한 승객의 표엔 구멍을 뽕 뚫는 것이다. 그리고 다 쓴 열차표엔 도장을 찍어 더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표시를 남긴다. 이외에도 낮에는 깃발, 밤에는 전등을 이용해 기관사에게 신호를 보내는 전호체험, 핸드카를 타고 선로 위를 달리는 트로리체험 등 온종일 철도문화에 풍덩 빠져 헤어날 수 없다.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깃발로 수신호를 보내는 전호체험.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역사(驛舍)는 소규모 박물관이다. 100년이 넘은 철도 우표, 간이역의 안녕을 기원하는 작품들, 그리고 ‘표를 억지로 사야 하는 역은…? 강매역!’과 같은 익살스런 문구들도 눈에 띈다. 짧게는 1년에서 최대 3년 후 편지를 발송해주는 우편함도 있다. TV에 왕왕 울리는 통신사 광고는 “빠른 게 무조건 최고”라는데 연산역의 시계는 어쩜 이리도 느릴까. 서두름이나 조급함 같은 단어는 감히 꺼낼 수도 없다.

역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급수탑이 남아 있다. 목적지를 향해 가던 증기기관차가 잠시 쉬어가며 목을 축인 물통이다. 용량은 최고 30톤, 16.2m의 높이에 생김새는 첨성대를 연상케 한다. 연산역이 꾸준히 붐비는 역이었다면 객사 증축이나 시설 개선이란 명목으로 진작 없어졌을 급수탑은 2003년 등록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됐다. 늘 작은 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INFO.
연산역
주소 충남 논산시 연산면 선비로275번길 31-2 

 

전국 이색 간이역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9월 사진 / 김다운 기자

군위 화본역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간이역. 폐교를 1960~70년대 모습으로 꾸민 테마 박물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와 함께 있다. 수십 년 전의 이발소, 연탄가게 등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에 추억여행을 하러 오는 이들이 많다고. 열차체험, 도자기 만들기 등의 체험도 가능하다.
주소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 711-9

2015년 9월 사진 / 코레일관광개발
2015년 9월 사진 / 코레일관광개발

정선 구절리역
2004년 여객 취급이 중단되자 이듬해 ‘정선레일바이크’를 개장해 아우라지역까지 7.2km를 운행 중이다. 기차를 개조한 펜션도 있고, 그 앞으로 폐객차를 이용해 지었다는 스파게티 전문점 ‘여치의 꿈’이 보이는데 여치 암수 한 쌍의 자세가 심상치 않다.
주소 강원 정선군 여량면 노추산로 745

2015년 9월 사진 / 점촌역
2015년 9월 사진 / 점촌역

문경 점촌역
점촌역의 명물은 강아지 명예 역장이다. 1대 역장이었던 아롱이와 다롱이를 시작으로 현재는 6대 역장인 아름이와 다운이가 역을 지킨다. 이 강아지들은 철로를 오가며 승객의 안전을 확인하고 시설도 점검하며 역장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 역에서는 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해준다.
주소 경북 문경시 신흥로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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