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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달의 섬] 우주센터가 들어서는 고흥 외나로도 들뜬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는 섬
[이달의 섬] 우주센터가 들어서는 고흥 외나로도 들뜬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는 섬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7.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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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우주센터 발사대에서 본 외나로도와 대항도.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고흥] 고흥 외나로도가 들썩이고 있다. 노송이 그림처럼 드리워진 깨끗한 백사장과 70년 수령의 편백나무 등 천혜의 자원과 비경을 간직한 섬이 우주센터로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지고 한적했던 섬이 10년 사이에 해돋이 여행지로, 또다시 우주 전초기지로 뒤바뀌고 있다. 그 속살이 못내 궁금했다. 

스치는 바람이 따뜻하다. 코끝이 얼얼한 도시의 날씨에 무장되어 있던 마음도 속살을 내보인다. 남도의 끝자락, 이른 봄꽃이 사뿐히 내려앉은 외나로도에는 만개한 동백과 함께 개나리가 하나둘 얼굴을 내밀고 있다.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모습을 드러낸 우주체험관.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나로도 신금 해수욕장.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고흥에서 내나로도를 거쳐 승용차로 40분이면 닿는 외나로도는 지난 94년에 연육교가 세워져 육지와 이어진 섬이다. 섬을 일주하면 1시간 30분 가량 걸리는데, 그 끝자락 하반마을 부지에 국내 최초로 과학위성을 발사하게 될 우주센터의 건설이 한창이다.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도로를 넓히는 공사와 더불어 건설 자재들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들이 차도를 오르고 내리며 분주한 모습이다. 우주센터 기지로 최종 확정된 후 약 3년간의 공사기간이 흐른 만큼 곳곳에 보이는 집들과 섬 주민들의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다. 

“그전에는 길가 집에 담장도 대문도 없었어. 다리교량이 높아지고 외지인들이 차로 출입하기 시작하면서 담장이 쳐지고 대문이 달렸지. 그전에는 참말로 조용했는디, 공사한께 조용할 날이 없네. 그래도 뭐 좋지 않겄소.” 근처를 지나던 주민이 넌지시 던지고 가는 말에도 달라진 섬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함께 했던 황선애 문화유산해설사도 “어느 날부터 고흥군의 간판에 ‘우주’자가 들어가요. 우주휴게소, 우주아파트, 우주횟집, 우주철물점까지. 순전 다 우주에요.” 

소식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우주센터의 외관이라도 보려고 찾아오는 이가 많다는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출입허가가 있어야만 우주센터에 들어갈 수 있다. 

150만 평의 부지에 조립시험시설, 비행 및 안전통제시설, 추적레이다동, 숙소동, 우주체험관이 세워지고 발사대를 제외하고 현재 공정률이 85%에 이른다. 올해 하반기까지는 모든 설비구축을 마무리하고 시험 운용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풍어를 맞고 방금 잡아 올린 문어를 들어보이는 어부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시간 동안 외나로도 주위를 해상 관광하는 금어호.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지금껏 위성 제작에서부터 발사까지 독자 기술로 해결하는 나라는 미국· 러시아· 일본 등 8개국에 불과하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메릿 섬에는 케네디 우주센터가 있고, 그 뒤를 이어 야심차게 우주개발에 착수한 일본의 가고시마 현 섬에 가고시마 우주센터가 있다면 이제 우리나라의 고흥 외나로도 섬에는 나로우주센터가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직접와서 보니 설레기도 하고 자랑스럽다.

우주센터에서 나와 좌회전을 하면 해발 410m의 봉래산이 보인다. 산 아래는 수령이 70년 된 편백나무가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산책을 해도 좋다. 봉래산 정상까지 등정해도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 코스이다.

우주센터가 건립되면서 하반마을의 50여 가구 주민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전해 갔지만, 봉래산 아랫자락에는 매끈한 기와를 얹은 집 한 채가 편백나무 숲에 둘러싸여 외따로 남아 있다. 

올해로 여든 아홉을 맞은 정영숙 할아버지가 홀로 사는 집이지만, 예순 일곱의 아들 정오열씨가 아버지를 찾아뵈러 들렀다가 함께 있었다. 봉래산이 병풍역할을 하고 집 앞에 펼쳐진 편백나무숲은 마치 정원 같아 동화 속 어딘가에 놀러온 기분이다. 염소와 토종닭도 기르며 주말이면 아들과 함께 봉래산에 등반하는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닭백숙이나 염소를 잡아 음식을 해주며 생활한다.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밤이 더 아름다운 축정항.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편백나무 숲의 정영숙 할아버지 부자.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정영숙 할아버지는 30m가 훌쩍 넘는 편백나무가 심어지기 전부터 이곳에 태어나고 살았다. 할아버지 나이 19살 무렵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을 동원해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심었는데, 할아버지도 하루에 70~80전을 받으며 그 일을 했단다. 숲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곳에 살기 시작해 직접 심은 편백나무 숲을 정원처럼 바라보고 사는 할아버지의 기분을 여쭈어보았더니 그저 “좋지 뭐~”하신다. 

가벼운 산책 후에 배가 출출해져 축정항(현재는 나로도항)으로 이동했다. 예전에는 삼치 파시가 열릴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했던 곳이라 외나로도 연안을 일본인들이 탐을 낼 정도였단다. 봄에는 돔, 낙지, 서대 등이 나오고 여름에는 참장어,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는 삼치가 철이다. 남해안 난류의 영향을 받아 황금어장으로 불렸던 나로도항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도시에서는 구이로만 먹는 삼치와 준치를 회로도 맛볼 수 있다. 

먹는 방법은 과메기와 비슷하다. 삼치를 김에 싸서 묵은지와 다시마를 얹고 간장양념이나 초장에 살짝 찍어 먹는데, 한 번 맛본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될 정도로 담백하고 고소하다. 삼치는 성질이 급해서 잡히면 바로 죽어 고흥사람들도 삼치회를 먹으러 외나로도까지 들어온단다.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삼치회와 삼치구이.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우주센터 가는 길에 보이는 외나로도의 모습. 2007년 1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나로도항 부근에 횟집 10여 곳이 몰려있는데 현지인이 추천한 순천회집은 곁들이 음식이 정갈하고 회를 먹고 난 뒤 끓여주는 지리 매운탕 맛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싱싱한 톳나물, 자연산 생굴, 문어, 꼬막 등이 입맛을 돋운다.  

어느덧 외나로도에 어둠이 잦아든다. 섬에서는 일출과 일몰도 볼 수 있다. 우주센터가 있는 하반마을은 대표적인 해돋이 명소로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서쪽의 염포마을에서는 강렬한 낙조와 함께 밤을 맞이한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개발제한이 있었던 외나로도는 우주센터가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우주기지가 완공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순수함이 파괴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들지만, ‘그래도 뭐 좋지 않겄소’에 담겨 있는 희망만큼은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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