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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3월호
100년 전의 시간 여행, 테미오래를 가다
100년 전의 시간 여행, 테미오래를 가다
  • 김혜민 여행작가
  • 승인 2020.02.10 14: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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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한국전쟁·관사촌을 거쳐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각양각색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한 소제동 관사촌
테미오래, 시민의 집 2층의 모습.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대전] 빠르게 일어나는 도시화 속에서도 지나간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여전히 살아남은 건축물이 있다. 대전역 근방에 자리한 관사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세월을 견딘 전국 유일 관사촌이니 살아남았다는 말도 과장은 아니다. 

물론 100년 전과 완전히 똑같은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군데군데 보수가 이루어졌고, 주인도 바뀌었다. 어떤 곳은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활용되며 제 기능을 잃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건축물로써도 보존 가치가 높으니 제 역할은 충실히 다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옛 충남도지사관사촌, 테미오래
대전역에 내려 테미오래까지 바로 전철을 타고 가도 좋고, 도보로 30분 내외이니 걸어가도 좋다. 또한, 걸어가는 내내 지하상가가 곁에 있으니 그리 심심하지 않다. 지하상가에서 나와 쌩쌩 달리는 대로변을 지나면 키가 작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가로수길이 나타낸다. 

하늘색 대문이 눈에 들어오는 테미오레.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정원에서 바라본 시민의 집.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시민의 집 1층 베란다의 모습.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테미오래 가로수 길 풍경.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이제부터 과거 속으로 빠져든다. 붉은 벽돌, 빛을 받아 찰랑거리는 하늘색 대문이 곳곳에 우리를 반긴다. 제법 관리가 잘 된 깔끔한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고위 관리직들이 이용한 관사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일본 고급 관료들을 위해 지어진 공간이었고, 한국 전쟁 당시에는 대전으로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 거처로 활용되었다. 그 뒤로는 충남지사나 고위 공무원들이 사용했다. 

그러다 2012년 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옮겨진 뒤 관사촌도 자연스레 빈집이 되었다. 테미오래가 시민에게 전면 개방된 것은 2019년부터다. 일부 관료만을 위한 공간에서 이제는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곳의 새 이름도 시민 공모를 통해 지어졌다고 하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테미오래는 둥그렇게 테를 둘러쌓은 작은 산성 ‘테미’와 동네의 골목 안 몇 집이 한 이웃이 되어 사는 구역이란 뜻의 순우리말 ‘오래’를 합성한 말이다. 

'테미와 관사촌의 오랜 역사'라는 뜻도 품고 있고, '테미로 오래'라는 중의적인 의미도 품고 있다. 참 정감 있는 단어다.

테미오래는 열 개의 건물이 밀집되어 있지만, 12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에는 시민의 집(공관)과 시민문화예술인의 집(8호관사)만이 문을 활짝 열어둔다. 

관사는 그 관사에 머무는 사람의 직급에 따라 집의 크기와 정원의 크기도 다른데, 2층으로 이루어진 ‘시민의 집’은 도지사가 머물렀던 공간이다. 언덕길 가장 끝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당시에 건축된 관사 중에서도 2등급 규모에 속하며, 최고급 주택이라 불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따뜻한 공기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1층엔 한국식 온돌과 양식 벽난로가, 2층엔 일본식 다다미와 도코노마가 어우러져 있다. 게다가 베란다에서는 너른 정원이 보이고, 남향으로 지어진 덕분에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제법 너른 정원도, 그 정원이 보이는 베란다도 집안의 온도를 한층 더 올려준다.

INFO 테미오래

테미오래 그림 이미지. 사진 출처 / 테미오래 홈페이지

주소 대전광역시 중구 보문로205번길 17, 101(대흥동)
관람 시간 동절기 오전 10시 ~ 오후 4시, 하절기 오전 10시 ~ 오후 5시 (입장 마감 30분 전)
휴관 월요일(공휴일이 월요일일 경우 다음날), 1월 1일, 설과 추석 당일

촬영지로 인기인 옛 충남도청, 카페 거리가 된 소제동 관사촌
테미오래에서 970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옛 충남도청은 등록문화재에 지정된 근대건축물로 현재 1층과 2층은 대전현대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1932년 공주에서 대전으로 충남도청이 이전된 후, 2012년 내포 신도시로 이전되기 전까지 충남도청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공간이다. 

옛 충남도청의 외괸.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빛줄기에 창살이 복도에 투영되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아치형 복도의 모습을 한 옛 충남도청.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옛 충남도청의 1층 중앙홀.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넓은 중앙 홀과 높고 긴 아치형 곡선의 복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드라마의 한 장면 속으로 빠져든 기분이다.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그림자가 벽 곳곳에 그림을 그린다. 

옛 충남도청은 현재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고 있으며, 영화 <변호인>과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그만큼 시대를 잘 반영하는 건축물이라는 뜻이다. 

대전의 근대 역사에서 철도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1904년 대전역이 처음 생긴 이후 일본 철도공사 종사자들과 기술자들이 집단으로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관사촌이 형성되었다. 더불어 기차가 지나다니는 교통의 요충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레 도시가 발전했다.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소제동 골목의 카페 풍경.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소제동 골목 풍경.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소제동 카페 풍경.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서제동 골목에서 마주친 고양이.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일제 강점기 당시 이곳에 북관사촌과 남관사촌이 함께 있었지만, 전쟁과 도시화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폭격을 피한 동 관사촌이었던 소제동만이 여전히 남아있다. 적들이 남기고 간 가옥, 즉 적산가옥은 주변의 도시화와 더불어 재개발만 기다리는 빛바랜 건물이 되었다. 손길이 닿지 않은 폐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으슥한 골목에 변화가 일어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서울 익선동을 변화시킨 회사로 유명한 도시 공간 기획 스타트업인 익선다다가 소제동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대전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소제동 골목을 거닐었다. 담벼락 위에는 고양이가 우두커니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본다. 이 동네의 변화가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다.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유리창이 깨지고 쓰레기가 버려져 방치된 폐가 옆에 이색적인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옷을 갈아입은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니 불쑥불쑥 놀라움을 선사하는 골목이다. 골목길은 여전히 고요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젊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고요하면서도 소란하게, 차 한 잔의 여유를 부리며 숨을 돌린다.

대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동하늘공원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왔다. 좁은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대전에서는 다소 보기 힘든 언덕과 골목이다. 대동하늘공원 바로 아래 자리한 대동벽화마을은 한국 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벽화마을에서 바라본 노을.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대동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벽화마을.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대동하늘공원의 빨간풍차.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대동하늘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전 시내의 풍경. 사진 / 김혜민 여행작가

오래된 세월이 느껴지는 집들이 좁은 골목 안에 어깨를 맞대 채 옹기종기 붙어 있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리 복잡한 골목도 아닌데 길을 잃었다. 그래도 안심인 건 고개만 들어 올리면 전망대에 자리한 빨간 풍차가 보인다는 점이다.

군데군데 벽화가 자리하고 있으니 올라가는 내내 심심하지 않다. 이렇게 마을에 활기가 생긴 건 무지개 프로젝트를 진행되면서부터다. 마을 곳곳에 벽화가 그려지고, 귀여운 조형물이 생겨났다. 거기에 젊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카페도 군데군데 생겨났다.

대동벽화마을을 지나 해발 127m에 자리한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빨간 풍차다. 빨간 풍차는 하늘의 색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풍차 너머에는 지금까지 걸어온 대전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공원이라는 이름답게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붉게 물들어 가는 노을이 도시 너머로 펼쳐진다. 대동하늘공원이 가장 예쁜 시간이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오래된 건축물에서 시간 여행을 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  대전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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