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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도심 속 자리잡은 오랜 시집 한 채 미당 서정주의 집
[도심 속 숨은 문화유산] 도심 속 자리잡은 오랜 시집 한 채 미당 서정주의 집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5.09.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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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서울] 봉산산방(蓬蒜山房). 쑥(蓬)과 마늘(蒜)의 산 속 집. 시인이 직접 지은 이름이란다. 이곳에서 시인은 30년 동안 살면서 단군신화처럼 우리 겨레의 원형을 추구한 시를 지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시인의 손때가 뭍은 지팡이 몇 개, 도자기 몇 점, 작은 탁자 위 난초를 볼 수 있다. 아침마다 거닐며 세계의 산 이름을 외웠다는 뜨락도 여전하다.

‘서정주’라는 이름 석자가 새겨진 문패 달린 대문을 지나니, 아담한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미 져버린 꽃나무 뒤로 살아 생전 시인과 아내의 사진이 낯선 손님을 맞는다. 그 옆에는 ‘내 늙은 아내’라는 시 한 수. 


“내 늙은 아내는 /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 부시어다 주는데, // 내가 /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덴네? 하면, //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

이 집에서 시인은 1970년에서 2000년까지 살았다. 2000년 10월, 63년을 해로한 아내가 세상을 뜨자, 두 달 보름 뒤 눈이 많이 내린 성탄 전야에 미당도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86세 되는 해였다. 시인이 떠나고 11년이 되던 해, 그의 마지막 보금자리는 ‘미당 서정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시인을 닮은 집

집은 주인을 닮기 마련이다. 그가 직접 짓고, 오래 살았다면 더욱 더.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에 자리잡은 미당 서정주의 집은 시인의 생전 모습처럼 정갈하고 꼼꼼하다. 요즘 같은 아파트 시대에는 보기 힘들어진 자그마한 2층 양옥집 거실에는 시인의 꼼꼼한 메모가 덧붙은 주택 평면도와 건축장부가 보인다. 거실과 이웃한 부엌에는 37년 전 빳빳한 방범비 영수증도 전시 중이다. 식탁 한가운데에는 시인이 마지막으로 마셨다는 맥주 한 캔이 있다. 아마도 시인은 여기서 마지막 맥주를 마시고, 다시 한번 문단속을 하고, 잠시 아내 생각에 잠긴 후에 2층 침실로 올라가 잠들지 않았을까?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나무벽 위로 1968년 발표된 ‘동천(冬天)’의 전문이 보인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미당은 조선의 백자를 평생 사랑했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침실의 작은 탁자 위에는 미당의 생전 그대로 난초가 놓여 있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창작의 산실’이란 작은 표지판을 달고 있는 시인의 방에는 평소 그가 사랑했다는 조선 백자 몇 점과, 작은 탁자 위 난초 화분 하나가 보였다. 미당 서정주의 집을 소개하는 안내 팸플릿 표지에는 미당의 ‘난초’라는 짧은 시가 인쇄되어 있다. 
“하늘이 하도나 고요하시니 / 난초는 궁금해 꽃피는 거라.”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미당 내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세계 여행을 다녔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늙은 떠돌이의 여권
2층에 전시된 시인의 유품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는 그와 아내의 여권이다. 미당은 1970년대 중반부터 세계 여행을 다녔고, 이 집에서 <늙은 떠돌이의 시>라는 시집으로 묶어냈다. 여기에는 에베레스트에서부터 유럽과 남북아메리카, 아시아의 산까지 수십 편의 산 관련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미당은 매일 아침 뜰에서 1,625개의 산 이름을 외웠단다.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서였다는데, 세계 여행 중 만난 산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상기하는 시간도 되었을 터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1938년 정읍 처가에서 결혼식을 마친 후의 미당 내외.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이 집에서 미당은 마지막 30년을 보냈다.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시인이 붓으로 직접 쓴 '국화 옆에서'. 2015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나 에베레스트를 비롯해서 / 히말라야 전산맥의 산들을 / 가는 떡가루처럼 두루 빻아 / 사억삼천이백만 년이 지날 때마다 / 그 가루 한 개씩을 헐고 가서 / 그걸 모다 뿌려 마신 시간의 길이도 / 그 역시 가한수(可限數)라 / 처음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키만한 / 자기의 정신생명에 견줄 수는 없다고 / 또렷또렷 제자들을 타이르고 있던 / 네팔의 석가모니 / 그런 사내를 나는 아직도 더 본 일이 없다.” -‘어느 맑은 날에 에베레스트 산이 하신 이야기’ 중에서15분이면 휘리릭 둘러볼 수 있는 자그마한 이층집을 나오니 다시 정원이다. 미당 선생, 천국이나 극락에서도 아침마다 지상의 산 이름을 외우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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