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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다이어트 여행] 하루 2만보 700kcal의 추억 경북 봉화 낙동정맥 트레일
[다이어트 여행] 하루 2만보 700kcal의 추억 경북 봉화 낙동정맥 트레일
  • 전설 기자
  • 승인 2015.09.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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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여행스케치=봉화] 어라? 딱 맞던 청바지가 꽉 찡긴다. 어머? 간신히 입긴 입었는데 버클이 안 잠기네? 에이 설마, 불안한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가다 세상에 맙소사 어떡해, 살쪘다!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애써 태연한 척 창밖을 본다. 괜찮아. 아직 걷기 좋은, 땀내기 좋은 가을이잖아.

꽉 막힌 헬스클럽은 싫고, 윙윙 돌아가는 ‘런닝머신’은 더 싫다. 억지로 기계 위를 달리며 땀을 쥐어짜느니, 탁 트인 하늘과 향긋한 숲 냄새 맡으며 이 짧은 가을을 만끽하는 게 백만 배 낫겠다 싶다. 그래서 시작된 ‘다이어트 여행’ 프로젝트. 당장이라도 퉁퉁한 허벅지와 늘어진 팔뚝살을 태우고 싶은데 딱 맞는 목적지 찾기가 쉽지 않다. 첫째, 운동량은 많지만 저질체력도 완주할 수 있는 난이도 중(中)의 코스. 둘째, 극한의 고통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 셋째, 열량이 낮으면서도 맛있는 별미. 써놓고 보니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이대로 헬스클럽 등록을 해야 하나 싶던 찰나, 우리땅 전문 여행기획사 <여행이야기>의 권미리 과장이 귀띔을 한다. “낙동정맥 트레일 봉화 제2구간을 걸어보세요. 총 9.9km로 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코스가 참 다이내믹해요. 분천역에서 V트레인을 타고 승부역으로 간 뒤 뽕나무골~배바위고개~제우씨길~비동마을을 거쳐 다시 분천역으로 걸어오는 코스거든요. 초입은 산행, 중반은 숲길 산책, 후반부는 잘 닦인 도로를 따라 물길을 끼고 걷지요.”

오, 빈틈없는 일정에 길이도 적당하고 난이도 역시 만만하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별미가 없다는 것인데…. “10월의 봉화하면 뭐 생각나는 것 없으세요? 향긋한 송이버섯이 있잖아요.” 그래 맞다, 가을 산의 진객 송이의 계절이 아닌가! 됐다, 됐어. 짐 싸자!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송이 향에 취해 V트레인에 오르면
자그마한 몸집에 솔숲의 향을 머금은 송이버섯은 한 송이에 28Kcal를 넘지 않는 고단백 저열량 다이어트 식품이다. 식이섬유소가 풍부해 소화 장애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체내 면역력을 높여 바이러스 침입과 알레르기 반응을 막아준다. 송이버섯 산지 봉화에는 송이의 향과 맛을 기가 막히게 살리는 송이전문음식점이 여럿 있다. 봉화시내 ‘인하원’도 그중 하나. “돌솥밥 위에 깔린 송이를 맨입에 한입, 기름장에 찍어가꼬 한입 묵어보세요. 씹으면 씹으수록 향이 기가 맥힙니다.” 쫀득하게 익은 송이버섯을 오물오물 씹고 있으면 앉은자리가 밥상 앞인지, 솔숲인지, 그윽한 향에 몸이 나른해진다. 노르스름하게 송이물이 든 돌솥밥에 간을 삼삼하게 한 박나물, 검은깨 연근무침, 매실장아찌 등 자연의 맛을 살린 반찬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목적을 잊고 된장찌개에 고추장 넣고 비벼 솥 하나를 싹싹 비운다. 뽈록한 배를 내려 보며 멋쩍게 하하하…. 든든히 배를 채웠으니 이제 뛰어야지.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때 이른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분천역 앞으로 백두대간협곡열차 일명 ‘V-트레인’을 기다리는 여행자가 모여 든다. V-트레인은 분천역에서 철암역까지 27.7km의 협곡을 질주하는 관광열차로, 탁 트인 통유리 창 너머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백두대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뭇가지가 톡, 톡, 창문을 두드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골짜기를 바라보며 걸어 내려올 길이 어디쯤인지 예습한다. 이만한 물길에 숲길과 함께라면 지칠 일은 없겠구나.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분천역.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깔딱깔딱 배바위고개 넘어 다시 분천역
정맥대장군과 봉화여장군 장승이 서 있는 낙동정맥 트레일 2구간 입구를 지나자마자 무릎에 힘 바짝 들어가는 비탈길이 이어진다. 다행히 풍성한 나뭇가지가 걸음걸음 그늘을 드리워 뜨겁지 않다. 송골송골 땀 맺힌 자리마다 숲 바람이 몰아친다. 진초록 풍광에 눈이 개운하고 지지베베 새소리와 스스스, 바람결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에 귀가 즐겁다. 기분 좋은 긴장감에 콧노래 흥얼흥얼. 사방이 벽으로 막힌 헬스클럽이었다면 이토록 즐겁게 땀을 흘릴 수는 없었으리라. 한 걸음 한 걸음이 운동이자 여행이다. 왠지 신이나 아랫배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걷는 속도에 맞춰 양팔을 ‘ㄴ’자로 흔들면 팔뚝이 날씬,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도록 ‘11’자로 걸으면 종아리와 허벅지가 매끈. 씩씩하게 1km를 지났을 무렵. 콧노래가 뚝 끊기면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점차 커진다. 이쯤에서 평지구간이 나와 줘야 터질 것 같은 심장이 진정을 할 텐데, 산길은 자비가 없다.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끌고 저 앞 나무까지만 찍고 쉬자, 저 앞 바위까지만 가서 쉬자,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간다.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열차가 양원역에 정차하는 10분 동안은 잠시 다이어트를 잊고, 돼지껍데기와 막걸리를 맛보길.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배바위고개 넘기까지 2.7km는 쭉 오르막길이지. 거기까지만 가면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라 쉬엄쉬엄 내려가기 좋아요. 여가 예전엔 시장가던 어른들 넘던 길이라고. 70먹은 노인네도 잘만 쫓아오던데 젊은 사람이 벌써 지치면 쓰나. 아직 반도 못 왔어, 서둘러야지.”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279계단 이후는 아찔한 내리막길 구간이다.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분천역의 마스코트 고양이 ‘분천이’와 인사를 하는 소녀. 2015년 10월 사진 / 전설, 김다운 기자

숲 해설가 정순원 씨의 응원에 힘입어 마지막 관문, 279계단을 오른다. 고개 너머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면 한바탕 악다구니라도 한판 쓰려고 했는데, 아래부터는 막힘없는 내리막길이다. 한숨 돌리며 계곡물에 손수건을 적셔 뒤집어쓴다. 그 차가운 감촉에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제우씨길을 지나 비동마을까지는 발 한 번 삐끗하면 데굴데굴 굴러 내려갈 것 같은 아찔한 내리막길이다. 등산스틱을 쥐고, 없으면 굴러다니는 나뭇가지라도 주워서 잡고 산 정상에서 마을까지 미끄럼틀을 타는 기분으로 하산한다. 다행히 비동마을부터 분천역까지 4.7km 구간은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낙동강을 끼고 쉬엄쉬엄 걷는 평지구간이다. 기나긴 마라톤의 출발지에서 반가운 캐럴이 들린다. 꼬박 5시간을 걸어 다시 분천역 앞. 만보기에 찍힌 오늘의 걸음수 2만858보, 소비열량 약 700kcal.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여행길 추억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숫자로다.

INFO. 낙동정맥 트레일 봉화구간 안내센터
주소 경북 봉화군 소천면 분천길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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