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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해안누리길 인천 강화] 쓰디쓴 역사 위로 달게 걷는 길 호국돈대길
[해안누리길 인천 강화] 쓰디쓴 역사 위로 달게 걷는 길 호국돈대길
  • 김다운 기자
  • 승인 2015.10.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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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여행스케치=강화] 옴짝거리던 우리의 ‘걷기 본능’에 제주 올레길이 불을 지폈다. 그 후 산에도 바닷길에도 들녘에도 거미줄처럼 수많은 도보길이 탄생했다. 강화도의 문화와 자연, 걸어야만 볼 수 있는 보물을 이은 ‘강화나들길’도 이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길이다.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아온 강화이지만, 이제 두 발로 걸어 숨은 길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물이 들어오고 또 나간다. 끝없이 이어진 갯벌을 끼고 걷는 길.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인천시 최대 규모의수려한 걷기길,조선의 선비 따라17km의 대장정

‘강화나들길’이란 이름이 생기기도 한참 전, 100년을 앞서 이 길을 걸은 선비가 있었다. 강화도 출신의 화남 고재형(高在亨). 그는 환갑의 나이에 나귀를 타고 제 고향 강화를 돌아보았고, 그렇게 느낀 감상을 256편의 시와 산문으로 남겼다. 이것이 <심도기행>이다. 심도는 강화도의 옛 이름. 노선비의 속내를 이제와 물을 방도는 없지만 그가 절절히 남긴 글귀를 읽으며 자연 답을 찾는다. 우리가 이렇게 살았노라, 강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노라 후세에 알리려던 그 뜻을 말이다.

정자산 동쪽의 큰 길 옆에는
감나무와 참외밭으로 농장을 이루었네.
개중의 으뜸은 오래 산 권씨 가문
달빛 담은 서재에서 책상에 기대있네.
-화남 고재형 <심도기행> 中 ‘장동(長洞)’-

강화나들길은 <심도기행>을 기초로 다듬은 길이다. 2015년 현재 19개의 코스가 개발되어 있는데 이는 인천의 둘레길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중 대표적인 코스는 ‘호국돈대길’이다. 섬 동쪽 해안을 따라 갑곶돈대~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초지진까지 17km를 잇는데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 편하고, 오가는 여행객과 눈인사 나눌 일도 많다. 고생스럽지도 지루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오두돈대 너머로 김포 땅을 조망한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아물지 못한 상처는여전히 아프다,벽돌마다 꾹꾹 박힌전쟁의 치욕
길은 갑곶돈대부터 시작한다. 6시간을 내리 걸어야 완주할 수 있으니-코스가 길어 중간에 한번 끊고 이틀간 걷는 경우도 많다-침 한번 꿀꺽 삼키고 신발 끈을 단단히 고쳐 묶는다. 수첩 형태의 ‘강화나들길 도보여권’에 출발 도장을 찍는 것도, ‘강화나들길 어플리케이션’을 켜 탐방 기록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그 언젠가 포탄에 크게 한 방 맞은 소나무.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자연 지리를 이용해 적에게 보이지 않도록 교묘하게 쌓은 남장포대.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헌데 가볍게 시작한 걸음이 점점 쓴 뿌리를 씹은 것처럼 괴로워진다. 정확히는 마음이 무거워서 그렇다. 길의 이정표가 되는 진, 보, 돈대는 모두 군사유적으로 언젠가 총알에 맞아 부서지고 포탄에 의해 무너졌던 것들. 복원한지 오래지 않아 겉보기엔 번듯하지만 하나하나에 붙은 설명문과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면 전쟁의 참담함이 생생히 전해진다. 프랑스와 치른 병인양요,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패한 신미양요 등 열세한 무기로 싸웠던, 아니 ‘당했던’ 역사가 가슴에 쿵, 머리에 쾅. 일본의 야욕이 드러난 운요호사건도 이 바다에서 발발했다. 강화도조약의 발단이 된 사건이다. 아, 뜬눈으로 당했다는 생각에 피해의식이 솟구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먹먹한 길. 산책이나 하려 했는데 이 원통한 마음을 어찌 해야 하나.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호국돈대길은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다. 안내 표식이 어디서든 눈에 띈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쓴 역사의 땅에도열매는 달게 영근다,그 배움 받들어강화의 오늘이 있다
전쟁의 불길이 휘몰아쳤던 섬도 오늘날엔 여느 서해안과 같이 지극히 평화롭다. 그리고 이 한 많은 땅을 터전 삼아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왔어? 여행? 혼자서? 아이구우, 이거나 먹고 가.” 홀로 걷는 이를 내버려 두지 않는 인정 많은 어머니들은 걷는 내내 한마디씩 말을 건다. 어디 말뿐이겠나. 알알이 실한 포도하며, 강화도 특산품인 속노랑고구마 등 진기하고 맛난 주전부리도 빼놓지 않고 쥐어 준다. 포도농원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가 침까지 튀겨가며 자랑하길, 유난히 쨍한 햇볕 덕택인지 강화 땅에는 무얼 심어도 결실이 남다르단다. 호의를 받을 때마다 양껏 맛보고 싶으나 그러다 자칫 17km의 여정을 끝맺지 못할 수 있어 손사래를 치고 자리를 뜬다. 그럼에도 억지로 가방에 넣어주는 포도 한 송이까진 차마 뿌리치지 못한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올라앉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아빠와의 시간이 마냥 즐거운 소녀.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강화의 아낙들과 엎치락뒤치락 정을 주고받은 뒤, 얄궂게도 ‘뻔뻔한 광해(강화의 사투리)년’이란 말이 떠올랐다. 강화 여자의 검질긴 성품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설(說)도 전해진다. 그 옛날 연 날리기 대회가 열리면 강화도 사람들은 연줄에 민어 부레를 바르고 사기그릇 빻아 묻혔단다. 그러니 다른 연보다 훨씬 튼튼해 ‘번번이 이기는 강화 연’이라 불렸는데, 이 말에 세월과 오해의 흙이 묻어 강화 여자가 뻔뻔하단 뜻으로 와전됐다는 것이다. 뻔뻔이든 번번이든, 양쪽 다 설일 뿐이지만 후자를 더 믿고 싶은 것은 얻어먹은 은혜를 갚으려는 본능일까.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험한 길목엔 나무 계단이나 데크를 깔아 놓았다.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해풍을 맞고 자라 유난히 달고 맛있는 강화 포도. 2015년 11월 사진 / 김다운 기자

마침내 길의 끝, 초지진에 털썩 앉아 가방 안 데굴데굴 구르는 포도를 꺼내 먹는다. 코끝 공기가 향긋하다. 지나온 길은 쓰디쓴 역사를 일러주었는데, 요 보랏빛 알맹이는 달기만 하구나. 도보 여행의 맛이 이렇게 다양하다.

찾아가기

대중교통 출발지까지 : 신촌역 7번 출구 그랜드마트 뒤편에서 강화종합터미널행 3000번 버스 탑승(10분 간격)
도착지에서 : 초지진에서 700번 버스 탑승하여 공항철도 검암역으로 이동
승용차 올림픽대로에서 강화?김포 방면 48번 국도→김포→마송→강화대교

식사
더리미집 
일미산장숯불장어 
광성보식당 

잠자리
강화는 ‘펜션촌’이라 불릴 만큼 숙소가 많은 편이다. 
덕진진-카펜션, 용진진-지산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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