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따라 삼천리] 그럼에도 안녕히, 해피앤드 금강리 경북 영주다목적댐 수몰지구
[전설따라 삼천리] 그럼에도 안녕히, 해피앤드 금강리 경북 영주다목적댐 수몰지구
  • 전설 기자
  • 승인 2015.10.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영주] 2015년 12월. 영주다목적댐에 담수가 시작되면, 영주시 평은면·이산면 일대 일곱 마을은 영영 물속에 잠기고 만다. 이삿날 받아놓고 집에, 논에, 밭에 작별을 고하는 수몰이주민들. 헌집 주고 새집 받는다, 유쾌한 자랑을 늘어놓다가도 질금질금 새는 눈물을 쥐어뜯는 손끝에서 채 숨기지 못한 실향의 설움을 읽는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던 유월의 어느 날. 토막 기사 하나를 읽었다. “유례없는 가뭄으로 소양강댐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42년 전 수몰됐던 강원 춘천 물로리마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비보와 함께 돌아온 고향땅을 바라보며 옛 물로리마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댐 아래 시커멓게 삭은 당나무와 흔적만 남은 집터가 그저 반가웠을까. 아니면 서글펐을까.


내 고향이 아님에도 마음이 쓰인 것은, 그 즈음 비슷한 사연을 가진 ‘시한부 마을’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성천 상류에 영주다목적댐이 완공되면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금광리, 강동리, 용혈리 그리고 이산면 내림리, 두월리, 신천리 7개 마을이 곧 수몰된다고 했다. 그때 이미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에 마지막 풍경을 담자, 꼭 다녀오자.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마을 언덕 위 고목은 싹둑싹둑 베어 낸지 오래.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옆집, 앞집, 건넛집 통째로 이사 온 새마을
“마지막 마을 풍경이요? 지금은 찾아가도 볼 게 별로 없을 텐데…. 평은면 일대 관공서나 학교 같은 큰 건물은 철거가 거의 완료된 상태고 7개 마을 주민의 90% 이상이 이주를 마쳤거든요. 그나마 금광2리에 이장님이랑 몇몇 어르신들이 이주단지의 새집이 지어질 동안 옛집에서 생활하고 계세요. 간판을 떼기는 했지만 옛 평은역 자리도 남아 있을 겁니다.”

너무 늦은 걸까. 가도 볼 것이 없단 말에 풀이 죽었다가 옛 간이역과 마을이 남아있단 말에 금새 기운을 차린다. 영주댐건설단 김원준 씨의 지침대로 자리를 옮긴 새 평은면사무소부터 평은교~기프실마을~평은역(폐역)~금강2리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어림잡아 약 8km, 보통 걸음으로 서너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는 길이니 조금은 늑장을 부려도 좋으리라. 느릿느릿 평은면사무소 앞 동네구경에 나선다. 볕 좋은 자리마다 새것 같은 전원주택이 서 있다. 수몰이주민을 위한 3곳의 이주단지 중 ‘영주호 이주단지’ 풍경이다. 

“10년 전에 ‘송리원댐’ 짓는다 그칼땐 주민 반대가 엄청났지요. 적게는 3대, 길게는 10대를 이어 산 집이고 땅이니까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는 거예요. 플랜카드 걸고 시위하고 해서 댐공사를 취소시켰는데, 10년 만에 ‘영주댐’이라고 이름만 바꿔달고 다시 추진된 겁니다. 문제는 반대 시위에 앞장섰던 당시 50~60대가 70먹은 노인이 되놔서 싸울 기력이 없어진거죠. 아들 딸 출가시키 놓고 홀로 시골에 남았으니 대를 이어 집을 지킬 이유도 사라졌고.”


싸울 사람도, 지킬 이유도 사라진 마을에 시한부 선고가 내려지기 전, 신수학 씨를 선두로 한 마을대표단은 현실적인 문제에 눈을 돌린다. 수몰을 피할 수 없다면, 이주단지만은 사수해야 했다. “시골 사람에게는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 정서적인 문제에요. 매일 눈 마주치며 함께 살 맞대고 살던 이웃이 뿔뿔이 흩어지면 고향 잃은 고통은 더욱 가중되지 않겠어요.” 한때는 사기꾼소리도 들었다. 어르신 한분은 “나라서 이주단지를 만들어주믄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장담도 했다. 하지만 긴 시간 투쟁해 얻은 이주단지는 현실이 됐고 옛 옆집, 앞집, 건넛집 이웃이 통째로 옮겨와 새마을을 이루고 있다. 동네를 살피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이게 우리 집이거든. 참 예쁘고 좋제.” 할머니의 새집자랑에 방긋 웃음으로 답한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불씨 꺼진 아궁이엔 땔감만 수북하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새마을 지나 평은교 건너 옛 마을로
평은교 아래 예성강은 이미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다. 물줄기가 말라버린 강바닥에는 어른 키를 웃도는 잡초만 무성하다. 평은정거장을 지나 인적 없는 시골길을 지난다. 길목마다 제때 수확을 못해 썩어 버린 옥수수 밭과 이장을 마친 흙무덤이 보인다. 포클레인 삽날에 놀란 것인지 사마귀며 실뱀이 아스팔트 위에서 피신 중이다. 진땅에 발 묶인 듯 걸음걸음 무겁게 걷다보니 ‘평은 파출소’의 낡은 간판이 보인다. 길은 이제 ‘기프실마을’로 접어든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43년 전 금광2리로 시집 온 성형기 할머니. 이삿짐 싸다 말고 손님 줄 사과를 깎는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본디 이름은 ‘깊으실’이다. 마을 앞으로 내성천 강물이 깊이 휘감아 흘렀다고 해서 깊을 심(深), 집 실(室)자를 쓰는데, 얄궂게도 영주다목적댐의 담수가 시작되면 마을 일대가 수심이 가장 깊은 지점이 된다고 한다. 땅도 사람처럼 이름에 따라 팔자가 바뀌는 것일까. 아쉬운 마음에 평은정류장 앞을 서성이다 평은우체국의 임만규 국장과 마주쳤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실 겸 우체국 안으로 들어서는데 안이 휑하다. “짐은 다 싸놓고요. 이제 떠날 일만 남았습니다. 파출소나 면사무소는 이미 철근까지 뽑아 빼맀고 우체국이 마지막이거든요. 34년을 앉아 있던 곳인데 갈 날 머지않으니 사진 한 장 남겼으면 싶었는데 잘됐네요.”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이름을 잃은 평은역과 철로를 뜯어낸 금광터널의 현재. 휭, 소슬바람이 차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임 국장의 안내로 평은우체국을 지나 옛 평은역까지 가는 길은 온통 뽑고 뜯은 자국뿐이다. 그래도 간이역 앞에 서면 조금 다르겠지 싶었는데 웬걸. 역간판을 걷어낸 작은 건물만이 공사판 한가운데 서 있다. 철길 역시 걷어내 버려 한때 열차가 서던 역사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기차 다닐 때는 뿌, 뿌, 하루에도 서너번 시끌시끌했지. 지금은 폐가 다 됐어. 아니 뭘 이런 걸 본다고 서울서 와?” 김영순 할머니의 꾸지람에도 끈질기게 역 주변을 돌아본다. 구석구석 흙먼지 뒤집어 쓴 ‘절전책임자 : 당무역장’ 라벨 같은 흔적을 쫓으면 쫓을수록 가슴이 헛헛하다. 역 이름을 잃은 간이역의 모습이란 이토록 가여운 것이었구나. 멍하니 앉아있는데 후두둑 후두둑 흙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점심시간이라 잠시 멈췄던 포클레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나보다. 이제야 사라질 동네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잡초와 들꽃이 무성한 옛집 풍경. 왱왱 잠자리만 오고 간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21세기 최초 수몰이주민이 사는 최후의 마을
금강리는 평은면 중심에 있는 마을이다. 댐이 건설되더라도 수몰되지 않는 지역이 조금씩은 남는 다른 동리와 달리, 금광리는 전 지역이 물속에 잠긴다. 그나마 담수 직전 금강사터에서 광명대 등의 고려시대 유물이 출토 돼 수몰되기까지 반년의 시간을 번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마을 입구를 지날 때까지도 사람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다. 채 따 먹지 못한 대추며 홍시가 길목마다 어질러져 있을 뿐이다. 이미 다들 떠나버린 건 아닌지, 덜컥 겁을 나는데 금강2리 노인회관 앞에 고양이 서너 마리가 앵앵, 운다. 시내에 나갔다 오느라 밥 때를 놓친 김영순·김순자 할머니가 늦은 점심을 차리는 동안 밥 냄새를 맡고 몰려온 모양이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버리고 가기 아까워 주섬주섬 주워 모은 대추. 알알이 붉다.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밥냄새 따라 슬쩍 밥상 앞에 앉았더니 대접 한 가득 사발밥을 퍼주신다. 된장찌개에 찬 몇 가지 곁들여 한그릇을 비우고 나른하게 배를 두드리는데 홍시에 대추에 입가심할 거리가 끝도 없다. “오다보이 감이 천지라. 나무가 오래돼서 열매는 잔뜩 맺히는데 먹을 사람이 없어노니 다 버리게 생깄다. 니 뽑아 갈래? 등치가 크니까 뽑아갈라면 가겠다.” 아무리 등치가 커도 그렇지 나무를 뿌리 채 뽑아가라고 하시나. 입술을 삐죽거리는데 우리 밭 사과나무 뽑아가라, 배추랑 참깨도 털어가라, 하는 말이 물에 잠기기 전에 하나라도 살려가라는 말 같아 선뜻 거절을 못하겠다. 그저 가는 길에 들리겠노라 약조하고 산책에 나선다. 마을에는 인동장씨 고택, 장석우 가옥 등 문화재 이전을 위한 해체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가는 전날까지 암만 부지런을 떨어도 챙겨가는 것보다 물속에 두고 나가는 것이 더 많으리라.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허수아비 군단은 마을이 물에 잠기는 그 순간까지 밭을 지키리라. 2015년 11월 사진 / 전설 기자

“친정 엄마가 시집갈 때 직접 농사지은 솜 누벼가 만들어준 솜이불인데 버리고 갈라니 아까운 깁니다. 그래서 싹 빨아다 널어놓느라고 애썼지예. 이런 건 처음 보지예. 우리 밭에서 난 토종여주인데 속에 뿔근씨앗이 달달하니 참 맛이 좋아예. 이건 보병쑥인데 말리다가 실로 싹 엮어가 발 만들어 쓸라고 꺾어왔어예. 한숨 돌리 놓고 또 밭가야지예. 할 일이 많아가.”

금강리에 시집 와 43년. 손가락이 뭉툭하게 닳도록 일해 온 성형기 씨가 지치지도 않는지 새 일거리를 늘어놓는다. 마지막 가을걷이에 뭐 하나 빠트린 것 없나 살피는 모습에서 농사꾼이 고향과 이별하는 법을 배운다. 이미 엎질러진 영주다목적댐의 물살이 곧 마을을 덮친다. 먼 훗날, 아니 가까운 어느 날에 푸르게 찰랑이는 물가를 바라보며 이즈음엔 뭐가 있었고 저 즈음에 그게 있었다, 외려면 오래도록 동네를 어슬렁거려야겠다.

INFO. 영주다목적댐 수몰지구 가는길
수몰지구 내 철거한 교량을 대체할 교량이 있어 국도를 타고 금강2리로 가는 데는 무리가 없으나 일부 구역은 공사가 진행중이라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영주시내버스터미널에서 금강2리까지 하루 2회(12:40, 17:30) 운행하는 시내버스 30번 버스를 타거나, 하루 5회(6:20, 08:35, 10:40, 14:20, 18:20) 운행하는 30번 버스를 타고 평은면사무소에서 걸어 들어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