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안동] 조선 중기 문인 농암 선생의 숨결이 깃든 500년 전통의 농암종택이 사라졌다. 1976년의 일이었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종가는 농암의 17대 종손 이성원 명인에 의해 복원된다. 물속으로 사라진 고향을 보란 듯이 재건한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농암에 올라보니 노안이 더욱 밝아지는구나. 인간사 변한들 산천이야 변할까. 바위 앞 저 산, 저 언덕 어제 본 듯하여라.’ 농암 이현보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읊은 <농암가>다. 농암 선생은 늙어버린 자신과 달리 고향은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변함없다고 읊조린다. 인간사는 무상하지만 자연은 유구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알다시피 농암 선생은 조선 중기를 풍미한 문인으로 이름 높다. 고려시대부터 전해내려 오던 <어부가>를 다듬어 세상에 내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 <어부가>는 훗날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 12곡>과 고산 윤선도 선생의 <어부사시사>에 영향을 끼쳤다.
농암 선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애일당’이란 별당이다. 농암 선생은 이 애일당에서 백발이 성성한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때때옷을 입고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지극한’이란 형용사와 ‘효심’이란 명사의 조합으로 찬탄해도 모자랄 효성이리라.
농암 선생의 숨결은 농암종택이 자리한 분천마을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마을은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고 말았다. 600년이란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키던 종가가 대의(大義)란 명분 때문에 물속으로 가라앉은 게다. 뿐만 아니라 종가 내부를 지키고 있던 애일당을 비롯해 긍구당, 분강서원 등 각종 문화재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질 것만 같았던 농암종택은 수몰 이후 농암 선생의 17대 종손인 이성원 명인에 의해 재탄생한다. 이에 얽힌 소상한 이야기가 궁금해 농암종택이 새롭게 둥지를 튼 경북 안동 분강촌으로 내달린다. 이곳에서 이성원 명인을 주인공으로 한 ‘명사와 함께하는 지역 이야기’가 열리는 덕분이다.
특정 지역에 있는 명인·명사와 여행자가 만나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이 행사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koreastoryteller.com)에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일정은 모두 끝났지만 내년 봄에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돌아온다니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짧은 해가 아쉬운 계절 탓에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지고 쌀쌀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지만, 이곳에 모인 여행자는 이성원 명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상기된 표정 일색이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이 명인은 농암종택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을이 수몰됐지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커다란 돌덩이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듯한 무거운 기분으로 살았답니다.” 졸지에 수몰민이 된 이 명인의 절망감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물속에 두고 온 고향이 꿈속에서도 잊히지 않았을 게다.
“1994년이었지요. 수몰된 고향에서 20리가량 떨어진 곳을 걷다가 가송리 땅을 발견했답니다. 그동안 갈망한 귀거래의 터전을 찾아낸 순간이었지요.” 이 명인의 가슴은 항상 물속 고향을 만분지일이라도 보고 싶은 열망이 꿈틀거렸다. 그러다 우연히 가송리를 마주한 건 불혹이 넘은 나이였다. 고향과 가까운 곳에 때 묻지 않은 터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오랜 기간 방황하던 이 명인의 영혼에 고향과도 같은 안식이 안기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 명인은 가송리 일대 땅 주인들을 수소문하며 대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수몰된 농암종택을 재건하고자 힘을 쏟았다. 여기저기 퍼진 문화재도 한데 모으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76년 수몰된 농암종택은 2007년에 분강서원까지 재이건되면서 완벽한 제 모습을 찾고 가송리에 다시 태어났다.
농암종택이 새롭게 터를 잡은 가송리는 산촌과 강촌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서정적인 공간이다. 신비의 명산 청량산을 비롯해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마을 앞을 차지한 육중한 기암단애, 강변과 어우러진 은빛 모래사장 등 눈길과 발길을 한꺼번에 붙드는 비경이 수두룩하다. 묵객이었다면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경관이요, 붓을 꺼내 들고 풍경화를 그리고픈 풍취다. 이곳에 오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런 ‘눈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농암종택과 유적들은 모든 분들의 공동 공간이지요.” 이 명인은 농암종택의 문을 활짝 열고 일반인에게 한옥스테이로 개방했다. 달팽이마냥 느리게 걷는 맛을 음미할 수 있고, 툇마루에 고인 달빛 한줌을 벗 삼아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20대와 30대를 덧없이 보내고 한때 삶을 관둘 생각까지 했던 이 명인이 잃어버린 농암종택을 다시 일군 덕택이다. 문득 그가 가송리를 발견하고 써내려간 신귀거래사의 ‘자연 속을 약삭빠른 도회인의 입장에서 찾아와 터와 밭을 가꾸고 옛 책을 뒤적이며 조심스럽게 안기고자 한다’는 글귀가 떠오른다.
INFO. 농암종택
숙박료 대문채 7만원, 분강서원?한속정사?별채 10만원, 애일당 12만원, 긍구당?명농당?사랑채?강각 15만원
주소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3
함께하면 좋을 여행지
월영교
430여 년 전 경북 안동에 실존한 이응태 부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스민 곳. 이응태의 처는 저세상으로 먼저 떠난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과 삼을 섞어 미투리를 만들었는데, 월영교는 이 미투리를 모티브로 지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로 다리 한가운데는 월영정이 위치하고 있다.
주소 경북 안동시 석주로 202
도산서원
향교가 국립학교라면 서원은 사립학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으로 크게 도산서당과 주변의 서원으로 이뤄져 있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하고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주소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