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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전설따라 삼천리] 상주의 겨울은 남녘의 봄·여름·가을보다 달콤하다 경북 상주 곶감
[전설따라 삼천리] 상주의 겨울은 남녘의 봄·여름·가을보다 달콤하다 경북 상주 곶감
  • 전설 기자
  • 승인 2015.1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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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상주] 산천초목이 땡땡 얼어붙는 엄동설한. 추수를 끝낸 논과 밭에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일 즈음, 비로소 수확을 시작하는 겨울농사가 있다. 오그랑쪼그랑한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긴긴 겨울 밤 응달에서 발갛게 속으로 익는 곶감. 1년을 기다린 곶감 맛보러 상주로 간다.

나의 살던 고향은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상경하기 전까지 TV도 구멍가게도 없던 ‘첩첩깡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있는 것 빼곤 다 없던 그 시절 시골에 딱 하나 겨우내 마르지 않고 넘치는 것이 있었으니, 타래 째 걸린 곶감이다. 시골의 곶감 농사는 이맛살 구겨지게 떫은 둥시감에 첫 서리가 내릴 즈음 시작됐다. 감이 얼기 전 장대로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열린 둥시감을 따기 시작하는데, 괜히 기웃거리다가 “문디 가스나 콱! 서리 맞은 감나무 밑에서 놀다 대갈배이 터진데이!” 여러 번 쫓기기도 했더랬다.

까치밥 만 남기고 감을 탈탈 털어오면, 마을 어른들은 오순도순 마당에 모여 감을 깎았다. 새색시 발꿈치처럼 반들반들하게 깍은 둥시감은 꼭지에 실을 꿰어 볕이 들지 않는 곳간에서 한 달 반을 꼬박 말렸다. 가끔은 처마 밑에 두고 한나절씩 바람을 쐬어 주기도 했다. 놀아줄 사람 없어 볼이 퉁퉁 부은 어린 손녀딸의 투정에 할머니는 “고생시러워도 이렇게 해야 곰패이(곰팡이) 자욱 없고 희고 뽀얀 진짜 상주곶감이 되니라” 하셨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하늘아래 첫 감나무’와 나무를 보살피는 김영주 할아버지.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하늘아래 첫 감나무가 있는 곶감마을
감나무가 있는 시골 풍경은 예전 그대로일까, 아니면 몰라보게 변했을까. 기대와 걱정을 안고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 송골마을로 찾아든다. 주민의 대부분이 감농사를 짓는 송골마을에는 ‘감’과 관련된 명물이 3곳이나 있다. 하나는 수령 750년의 ‘하늘 아래 첫 감나무’요, 두 번째는 곶감을 주제로 건립된 ‘상주곶감공원’이고, 셋째는 전래동화 <곶감과 호랑이>를 테마로 조성한 ‘할미산 곶감길’이다. 작은 마을에 감을 따고 먹고 걸을 수 있는 명소가 하나의 코스처럼 이어져 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한다. 서둘러 마을 들머리에 서다가 ‘하늘아래 첫 감나무’를 만난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상주의 농번기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이어진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수백 년 된 줄은 알고 있었는데 정확한 나이는 몰랐제. 3년 전인가.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우르르 나와가 유전자 검사를 했다꼬. 그때 밝혀진기 나무기둥 가운데가 뻥 뚫리가 두 그루처럼 보이도, 뿌리가 같은 한 나무고, 수령이 750년은 더 됐다꼬.” 대를 이어 감나무를 물려받은 김영주 할아버지가 나무의 역사를 전한다. 750년 전이면, 고려시대인데…. 얼떨떨한 눈으로 국내 최고령 감나무를 본다. 63빌딩처럼 크거나, 기와집처럼 우람하진 않지만, 철근처럼 단다난 나뭇가지가 부드럽게 휘어져 늘어진 모습이 마치 김 수염 휘날리는 도사님을 뵙는 듯 경이롭다. ‘하늘아래 첫 감나무’를 지나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마지막 둥시감 따기 작업에 한창인 농민들과 마주친다. “감 농장 왔으이 감이나 몇 개 챙기가소. 줄기 감 밖에 더 있겠능교. 차 끌고 왔음 이놈 꺾어다 주저리 하라고 할 낀데요.” ‘주저리’라 함은 상주말로 감이 열린 나뭇가지를 가지째 꺾어두고 하나 둘 홍시로 익혀먹는 것을 말한다. 마음 같아선 가지째 받고 싶지만 갈 길이 먼 게 한이구나. 손 사레 치며 사양하는 데도 기꺼이 양손에 쥐어주는 둥시감 두 알을 챙겨 들고 곶감공원으로 향한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화사한 감빛의 상주곶감공원. 야외에는 호랑이 3마리가 있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곶감의 현대적 해석, 곶감공원과 곶감길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에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우뚝, 멈춰 선다. 봉긋한 언덕 위로 커다란 감빛 건물이 서 있고 그 주위를 호랑이 두어 마리가 배회하고 있다. 어린 시절 베갯머리 맡에서 듣던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곳감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났다! “상주 곶감공원은 야외전시장과 체험전시관으로 구성 됩니다. 호랑이 조형물과 감나무 정원을 둘러보고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곶감전시와 감 따기, 감 깍기, 감 달기 등 곶감 만드는 과정을 체험 할 수 있어요. 공원 옆으로 ‘곶감길’이 나 있는데 길이 순해서 쉬엄쉬엄 산책하듯 나서기 좋을 겝니다.” 곶감공원의 관리자 김대규 씨가 공원 뒤편의 오솔길을 가리킨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길이 순해서 타박타박 걷기 좋은 ‘할미산 곶감길’.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이른 아침 시작된 감 따기 작업은 해질녘에야 끝이 난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해발 320m의 나지막한 할미산을 일주하는 ‘곶감길’은 상주곶감공원~할미고개~할미산성~할미산 정상~할미샘을 거쳐 다시 공원으로 돌아오는 4.2km 걷기길이다. 산꼭대기까지 다녀오지만, 물어보는 이마다 “저건 산도 아니라. 산만대이까지 가 봐라. 숨 하나 차나”하고 장담하니 믿어볼 수밖에. 낙엽이 쌓인 산길의 폭신함이 좋다. 은근한 오르막길이지만, 숨이 딸릴 즈음이면 속도를 줄이고 한두 번 숨을 깊게 들이 내쉬는 것만으로도 쉽게 진정이 된다. 빽빽한 소나무 숲 구간을 통과해 할미고개와 할미산성을 차례로 지난다. 오는 길이 너무 편했던 것인지, 눈앞에 정상을 표시하는 비석을 보고도 긴가민가하다. 그새 체력이 좀 붙은건가, 왜이렇게 쉽지? 산을 내랴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좁은 능선을 따라 산 아래로 편편하게 이어진 길을 걷는다. 길이 순하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나보다. 주머니에 손까지 꼽고 여유를 부리는데 손끝에 끈적끈적한 것이 닿는다. 마을을 지나올 적에 가는 길에 농장 어르신이 맛보라고 챙겨준 묵은 곶감을 깜빡했다. 끝부터 야금야금 배어먹으며 마을로 돌아간다. 달게 걷는 길 끝에 주홍 꼬마전구 같은 까치밥이 보이기 시작한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감타래 작업. 옛날 방식 그대로 실로 감꼭지를 감아서 건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남장사 아래 곶감타래 걸린 빨간감집
감타래가 줄줄이 걸린 빨간감집이 보고 싶어 곶감 농장이 모여 있는 상주남장곶감마을로 향하는 길. 그리운 풍경을 볼 생각에 들뜨면서도 내심 초조하다. 상주의 농번기는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이어진다. 연중 가장 바쁜 시기에 기웃거리다간 불벼락 맞고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논농사가 봄에 가장 바쁜 것처럼, 곶감 농사는 가을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감이 된서리를 맞아 얼기 전에 따고, 깎고, 바로 널어야 하거든요. 감타래 작업이 끝나야 손님을 맞을 여유가 생기죠. 감 널고 두 달이 지나면 12월 초부터 반건시, 12월 중순부터는 건시, 그러니까 그 해의 햇곶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폐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쑤안농장’의 황성연이 흔쾌히 감타래 작업장으로 안내한다. 실로 꿰어 단 둥시감이 건조대마다 끝도 없이 걸려 있다. 구경하다 얼굴에 감빛이 옮겨 붙을 것 같은 진한 주홍색 풍경이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호랑이 대신 남장사를 지키는 고양이, 그 이름은 ‘호빵’.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12월 초부터 나오는 반건시(좌), 중순 이후 나오는 건시(우).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쑤안농장의 황성연 대표가 올해의 감 농사를 보며 미소 짓는다. 2015년 12월 사진 / 전설 기자

동그란 둥시감이 곶감이 되기까지는 꼬박 60일이 걸린다. 민낯으로 시린 삭풍을 맞고 몸 안의 물기를 날리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딱딱한 과육은 달고 눅진눅진하게 속으로 익는다. 그렇게 탄생한 곶감 하나. 꼬들꼬들하게 마른 곶감을 반으로 가르니 껍질이 벌어지면서 발갛게 여문 속살이 드러난다. 입안의 혀처럼 붉고 가마솥에 졸이고 졸인 조청처럼 진득하다. 곶감 반쪽을 냉큼 입에 넣는다. 아, 눈이 지긋이 감기는 이 그리운 단맛. 입안이 끈적끈적해질 만큼 달고 혓바닥이 둔해질 만큼 차지다. 우물우물 곶감을 씹으며 노악산 방향으로 오른다. 감타래 구경도 실 컷 할 겸 띄엄띄엄 감농장이 들어선 도로를 2km를 따라가면, 그 끝에 우리나라 범패(불교음악)의 시원인 남상사가 있다. 고향의 단맛이 무사함을 감사드리며 부처님께 곶감 하나 공양해야겠다. 양이 적다고 혼낼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INFO.
송골마을(외남면 소은리)
주소 경북 상주시 외남면 소은리 379-1

상주남장곶감마을
주소 경북 상주시 남장4길 6-4

Tip. 상주 곶감축제 여행
상주에서는 매년 12월 곶감축제가 릴레이로 개최된다. 상주시와 상주곶감축제추진위원회 주최하는 ‘상주곶감축제(054-536-0933)’는 규모가 큰 행사로 곶감 시식, 체험, 문화 행사를 운영하며 외남면 지역민이 개최하는 ‘외남고을곶감축제(054-537-8907)’는 ‘하늘아래 첫 감나무’와 상주곶감공원 등 곶감 명소를 함께 둘러볼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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