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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화목 물씬, 사랑 가득 가족 여행  독일인 사위 에릭, 처가 가족과 제주도 여행가다
[고목나무와 개미 부부 이야기] 화목 물씬, 사랑 가득 가족 여행  독일인 사위 에릭, 처가 가족과 제주도 여행가다
  • 김문숙 기자
  • 승인 2007.05.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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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처가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독일 사위.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여행스케치=제주] 우리 부부는 장인 어르신의 고희연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소개하는 여행기는 독일인인 나의 눈에 비친 한국의 가족 여행이다. 페루 여행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는 아주 특별한 여행 이야기다.  

제주도 가족 여행! 페루에서 갑자기 처제들에게 통보를 받은 아내는 날 박박 긁어대기 시작했다. 당초 장인 어른의 고희가 3월이지만 우리가 남미 자전거 여행 중이고 여행을 중도에 포기할 수 없는 터라 한국에 도착하는 일정과 맞추어 조금 미뤄 5월에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한국은 생신 잔치를 당겨서는 해도 늦추어서는 안된다는 관습이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가 아쉽다며 우리를 빼놓고서라도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장인 어른과 러브샷.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너무나 아름다웠던 제주의푸른 바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독일은 정반대다. 늦추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앞당기는 것은 오히려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이렇게 사소한 점에서도 관습의 차이가 나는 것이 참 재미있다. 

아내는 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자전거 타는 것이 재미없다고 투덜대고 괜한 짜증을 부리는 듯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아내는 자신이 맏이라 장인, 장모님의 육순과 칠순은 꼭 챙겨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내가 외국인인데다 풍습에 어둡고 개인 사정이 있어 육순을 챙겨드리지 못했다. 아내는 다툴 때마다 결혼 전의 약속을 어겼다며 난리인 터라 어떻게 해서든지  고희엔 뜻 깊고 의미 있는 행사를 해드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내가 구상한 유럽 방식대로는 할 수 없겠지만, 야외에서 돼지 바비큐를 하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재미있는 잔치를 해드리고 싶었다. 남미의 전통적인 복장을 구입하여 가족들이 입고 장인 어른과 장모님이 예전에 연애하셨던 모습을 아내와 함께 연극으로 할까 생각도 했다.

부랴부랴 여행을 대충 정리하고 한국을 다녀온 후 다시 페루로 돌아가 여행을 계속하기로 아내와 합의한 뒤 독일에 들렀다가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에 도착한 2월 28일, 8명이 모여 가족회의를 한 자리에서 내가 생각했던 모든 행사는 그냥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모처럼 긴장을 풀고 평안한 여행을 즐기는 우리 부부. 2007년 6월. 사진 / 김문숙 기자

장인 어른께서 파티를 원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일하고 똑같다. 당사자가 싫다고 하면 설령 깜짝 파티라도 하지 않는다. 독일은 서른부터 조그마한 파티를 하는데 끝자리가 0일 때(30, 40, 50, 60)는 성대한 파티를 연다. 모든 사람이 다 파티를 여는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은 부부끼리 여행을 가기도 한다.

결국 조카들까지 합쳐서 총 15명, 3박 4일 일정의 제주도 여행으로 결정됐다. 이런 여행은 독일에서는 거의 보기 드문 일이다. 처가 식구들이 우애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번 제주 여행은 독일의 가족과 한국의 가족들이 얼마나 다른지 또 한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현재 예의가 없어지고 많이 변해 간다고 하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치는 한국의 가족관과 사회는 여전히 동방예의지국으로 자랑할 만하다. 대개의 한국 사람들이 노인을 공경하고 섬기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제주도의 여러 관광지는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있고 같은 한국 땅이지만 이국적이 분위기였다. 잊지 못할 것은 펜션에서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바비큐를 하고 러브샷을 하고 가라오케를 즐기며 흥겨웠던 일이다. 한 명씩 장인 어른의 고희를 축하하는 편지를 써서 각자 읽으면서 축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의 의지와 희망대로 고희 잔치를 치루지 못해 내심 섭섭했지만 가족 여행은 영원히 잊지 못할 한국 방문의 기억이 될 것이다. 

장인, 장모님 더 건강하고 오래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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