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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다도해 기행] 여수 바다의 기와지붕 거문도 몰랑
[다도해 기행] 여수 바다의 기와지붕 거문도 몰랑
  • 전설 기자
  • 승인 2014.05.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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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여수] 여수의 품에는 365개의 섬이 있다. 크고 작은 섬마다 바다에 가로막혀 육지에 전하지 못한 이야기가 주렁주렁, 시멘트나 포클레인 없이 오랜 세월 자근자근 다져놓은 옛길이 수두룩하다. 하루에 섬 하나씩 돌아봐도 1년 열두 달이 걸리는 다도해 위에 으리으리한 기와지붕을 얹었다는 거문도 몰랑을 걸었다.

거문도여객선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항구 오른쪽의 삼호교를 건넌다. “기와지붕 몰랑을 보고 싶거들랑 삼호교에서 내다보아라” 하는 당부를 익히 들은 탓이다. ‘몰랑’은 전라도 사투리로 산마루를 뜻하는 말이다. 바다에서 본 몰랑이 꼭 기와지붕을 얹어놓은 것 같다는데,  어디쯤 있을까. 다리 중간 즈음 멈춰서 바다 건너편 능선을 바라본다. 꼭 지붕처럼 생긴 섬이 하나 눈에 들어오긴 하는데 어쩐지 기와지붕이 아니라 초가지붕 같다. 저게 소문 짜한 그 몰랑인가 싶어 고개만 갸웃갸웃.


“아니지. 그건 기와지붕 몰랑이 아니고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산이에요. 기와지붕 몰랑은 수월산 옆에 산등성이 가운데 즈음에 볼록 솟은 데 있죠. 저기가 몰랑이죠. 이게 육지서 보면 야트막해 보이는데, 바다에서 보면 진짜 으리으리한 기와집처럼 잘 보입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거문도 토박이 김기빈 씨가 위치를 짚어준다. 알쏭달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외지인이 영 불안해 보였는지 김 씨가 길동무가 되어주겠다고 나선다. 고마운 마음에 “제가 여행 운 하나는 타고났죠” 까불거리며 따라 나선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절벽 위의 정자 관백정.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듯.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거문도 몰랑길, 알랑가 몰랑?
거문도 능선 코스는 삼호교 건너편의 덕촌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해 불탄봉~기와지붕 몰랑~신선바위~보로봉~365계단~목넘어~거문도등대로 이어지는 6km, 4시간 코스다. 오늘은 그 절반의 코스를 선택한다. 삼호교를 건너 유리미(유림)해수욕장을 지나 동백터널을 거쳐 곧바로 몰랑에 오른다.


“거문도 몰랑 가는 길에 동백터널이 있는데 요즘엔 벌레가 아주 드글드글해. 거미마냥 하늘에서 실 타고 내려온다고. 아가씨가 거문도 와서 벌레 구경은 톡톡히 하고 가겠고마.”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바다가 어찌나 맑은지 물에 잠긴 색색의 고둥이 그대로 비친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사무소 오춘수 분소장의 장난기 담뿍 담긴 당부에 마음 단단히 먹고 드디어 출발. 붉은 기 가시고 초록으로 덮인 동백터널을 거쳐 산등성이로 향하는 길은 온통 돌로 덮인 오르막이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멈춰 섰다가 머리 위, 어깨 위로 뚝뚝 떨어지는 벌레 장대비에 소스라치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머리 위를 촘촘히 가리던 수목이 걷고 기와지붕 몰랑이 시작되는 능선에 다다른다. 바다 쪽이 직벽에 가까워 디디고 선 양발이 후들 거린다. 옆은 기암절벽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그 너머 꼿꼿하게 선 거문도등대가 한눈에 담긴다. 가히 ‘거문도 최고의 경치’라 할 만하다. 바다 한복판에 세운 하늘 기와집의 꼭대기를 걷는 기분. 비렁을 건너 몰랑을 타고 신선바위를 거쳐 보로봉까지 걷는 동안 걸음은 차차 느려지고 턱까지 차오른 숨이 서서히 진정된다. 몰랑을 휘감는 바닷바람에 더운 땀이 차게 식는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배말, 고둥 조림과 매생잇국을 곁들인 갈치구이 정식. 갈치는 알이 꽉찬 ‘뱃진데기’부터 먹는 것이 정석.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깔치 뱃진데기 한 뽈테기 해야지
기와지붕의 끄트머리에서 365계단을 타고 내려선다. 여기서 ‘몰랑길’은 곧바로 ‘거문도등대길’로 이어진다. 눈앞에 비경을 두고 돌아서기는 차마 아쉬워 ‘목넘어(수월목)’ 건너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산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이름 그대로 어린아이도 수월하게 넘는 길이라니 마음도 가볍다. 바다 위 바위로 다리를 놓은 듯한 갯바위 지대 잔교를 성큼성큼 건넌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능선을 타고 걷는 길 내내 푸른 바다가 발밑에 넘실거린다. 2014년 6월 사진 / 전설 기자

“거문도에 전깃불이 1973년도에 들어왔어요. 전깃불이 없을 때는 달이 휘영청 떴을 때 서도 녹산등대에서 이짝 목넘어를 보면 섬과 섬 사이 푹 주저앉은 부근이 꼭 사람이 가랑이를 떡 벌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단 말이죠. 그 가랑이 한가운데 요 바위가 벌떡 선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우리 거문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참… 그 머시기한 바위라고 부릅니다.”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보니 오르막에서 아껴둔 입담이 터진다. 김기빈 씨의 걸쭉한 거문도 해설에 파하하, 웃음이 마를 새 없다. 그가 일러준 대로 가뭇가뭇한 ‘정금’ 열매도 따먹고 향기가 만 리까지 퍼진다는 돈나무 꽃에 코를 파묻는 사이, 어느덧 거문도등대에 도착한다.

저 푸른 바다 위에 그림 같은 등대를 보다, 노란 달팽이 모양의 우체통 앞에서 한참을 기웃거리다, 거문도등대 앞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관백정에 걸터앉아 먼 바다를 본다. 백도가 한눈에 내다보인다는 정자에서는 백도뿐만 아니라 저 멀리 수평선 너머 아득한 나라에 손이 닿을 듯하다. 정신을 쏙 빼놓는 절경에 까무룩 말을 잃었다가 “실컷 걸었으니 갈치 뱃진데기 한 뽈테기 해야지요?” 허기를 재촉하는 부름에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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