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마을탐방] 삼척과 울진의 경계 고포마을 왼쪽은 강원도고 오른쪽이 경북이여~
[마을탐방] 삼척과 울진의 경계 고포마을 왼쪽은 강원도고 오른쪽이 경북이여~
  • 박지영 기자
  • 승인 2007.08.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이짝이 강원도, 저짝이 경상도래요~" 강원도 마을 이장님과 경북 마을 이장님.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행스케치=삼척,울진] 7번 국도를 타고 삼척에서 울진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원도 삼척과 경북의 경계에 마을이 나타난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2리, 남쪽은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6리로 나뉜 강원도의 끝과 울진의 시작 지점인 고포마을이다. ‘도’는 다르지만 한 마을에서 사이좋게 지내며 사는 고포마을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이짝이 강원도, 저쪽이 경북이지, 여서는 경북 마을, 강원도 마을 이래지.” “이짝(경북) 잔치 지내믄 강원도 사람 다 모이고 이짝(강원도) 잔치 지내믄 경북 사람 다 모이고 그래.”

마을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방인의 눈에는 단지 집 사이에 골목길이 있을 뿐인데 왼쪽이 강원도, 오른쪽이 경북이란다. 마을에서 만난 경북 이장 임명철 씨에게 마을 토지 경계의 구심점을 물었더니 대뜸 산꼭대기를 가리킨다. 울진 방향으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니 도로 오른편에는 ‘여기서부터 강원도’라고 적힌 표지판이, 도로 왼편에는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이라는 표지판이 서로 엇갈리게 세워져 있다. 이곳을 기준으로 강원도와 경북으로 나뉘는 것이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뒤로는 산, 앞으로는 바다가 어우러진 고포마을.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고포마을 앞 해변.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아랫마을 경북 사람, 윗마을 강원사람이 매일 어우러져 화기 애애한 분위기를 꽃피우는 마을회관이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고포마을엔 그 흔한 강아지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마을 자체적으로 깨끗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동물을 기르지 않기로 했단다. 마을을 중심으로 앞에는 바다가, 뒤에는 산을 등지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피서지로 산과 바다가 있는 ‘조용한’ 어촌을 찾던 친구에게 파도 소리 들으며 쉬다 오라고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   

고포마을에는 40가구가 산다. 사이좋게도 강원도 쪽에 20가구, 경북 쪽에 20가구가 있는데 몇몇 집은 주인들이 여름에만 휴가차 찾아 간혹 빈집들이 눈에 띈다. 한 마을이지만 ‘도’가 달라 이장이 두 명이고 코앞에 보이는 건넛집에도 시외지역번호를 눌러야 한다. 매년 정월대보름마다 제를 올리는 성황당도 두 곳이고 선거 때도 각자의 지역으로 간다. 심지어 학군도 다르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 노인들이 많지만 2~3명 정도의 어린아이가 남아 각자의 지역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닌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물에 넣으면 힘없이 풀어지는 양식미역에 비해 고포 미역은 두껍지만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맛이 좋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7번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강원도 끝지점에 나오는 고포마을.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하지만 행정을 떠나 하나뿐인 포구를 함께 사용하고 총무도 한 사람을 두어 양쪽 의견을 조율하며 마을 자체 행사는 늘 함께 치른다. 삼척시에서 지어준 강원도 마을회관에는 누구나 들러서 밥도 같이 먹고 점 10원짜리 고스톱을 어울려 칠 정도로 가족처럼 지낸다.

“강원도 살아도 경북 살아도 다 친척간이고 형제간이고 그렇지. 바깥사람들 눈에만 그렇지, 다 한 동네야. 좀 희한하긴 하지.” 동네 어귀에 앉아 있는 경북할머니는 눈도 맞추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내 젊었을 적 예뻤을 때 찍어주지, 와 쪼그리 방탱이 된 모습을 찍노?”하며 멀리 도망가버린다. 한 동네에 두 도인 이 재미있는 소재를 각종 매스컴에서 숱하게 다룬 탓에 마을 주민들은 “뭐 찍으러 왔소?”가 아닌 “이번엔 어디요?(어디서 왔어요?)” 하고 물을 정도로 단련이 되어 있다. 

한 마을에서 도가 나누어진 데서 온 불편함은 없을까? 이 질문에서 강원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강원도에 속해 있던 울진군이 1963년 1월 1일 경상북도로 편입되면서 한 마을 두 도로 나뉘게 되었다. 문민정부 시절에 대통령까지 마을이 통합되도록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그동안 수 차례 통합을 시도했지만 매번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할머니는 울진 사람, 손자는 강원도 사람.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마을의 성황당. 수령이 500년은 족히 되는 향나무가 굵은 가지를 내뻗고 두 마을의 든든한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미역어장 때문이다. 통합되면 삼척시의 어로구역이 울진으로 통합되는데, 이곳에는 임금님께 진상했던 명품돌미역이 나는 곳이라 삼척시로선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 마을 두 개 도’로 나뉘고 10년 전 마을과 가까운 울진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나오는 연간 수천 만원의 지원금이 강원도 마을 사람들에게는 한 푼도 지원이 되지 않는다.

같은 마을이지만 도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다. “강원도는 혜택 못 받는 게 좀 애로지. 그 당시엔 먹고살 것이 없으니 미역바위를 서로 안 내줄라고 했지. 그때 강원도, 경북 사람 모아놓고 찬반투표를 했는데 강원도에서 여섯 집 빼고 전부 울진 나곡6리로 통합을 찬성했어. 근데 나는 우리 부모가 나를 낳아준 곳에서 살고 싶었단 말이야.” 내일 모레면 일흔의 나이인 삼척마을 최동웅 이장. 그래도 강원도 마을에선 젊은 축에 낀단다. 

고포마을은 유난히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다. 경북 마을엔 91세의 김순악 할머니가 최고 연장자다. 사진 찍는 기자를 보고 “딸아, 부지런히 댕기게” 하며 인사말도 잊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시다. 그 비결을 물으니 청정한 공기를 제치고 모두 미역을 첫손에 꼽았다.

“산에 풀로 보면 해를 못 받는 풀은 노랗잖아. 우리 미역이 어떻게 임금님 진상에 올라갔냐 하믄 바다가 얕아서 1~3m의 수심에서 태양을 골고루 받으면서 자란다고. 양식미역하곤 틀리지. 두껍고 꼬들꼬들해. 근데 국에 넣어 끓이면 보들보들해지고 고소한 맛이 나지.”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간간이 파도에 떠밀려 미역귀가 올라오는데 말려먹으면 맛있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마을의 하나뿐인 포구의 전경.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고포마을은 돌미역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수심 3~4m는 훤히 보이는 비취색 맑은 물속의 바위틈에 미역이 자생하는데 인근 호산지역에서 온 해녀들이 (고포마을에는 해녀가 없다) 잠수해서 일일이 손으로 따고 양이 많지 않아 일반 미역보다 1.5배에서 2배 가까이 가격이 비싸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4월 초에 미역을 수확하고 바위틈에서 성게나 전복도 따고 여름철 찾아오는 피서객들에게 민박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대문 앞에 ‘돌미역 팝니다’, ‘민박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서울에서 살다가 위가 좋지 않아 건강 때문에 1년 전 고포마을로 온 이순덕 할머니(74)는 병원에서도 병명을 알 수 없는 위의 통증을 미역을 먹고 고쳤다. 마을 해변에 쓸려온 미역귀를 말려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꾸준히 먹었는데(할머니 댁에서 묵었을 때 미역을 입에 물고 잠드신 모습을 보았다) 약을 먹어도 듣지 않던 위염이 사라졌단다.  

마을 앞의 작은 몽돌해수욕장을 제외하고 해안선을 따라 죽 철조망이 놓여 있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쳐놓았던 것인데 여름 피서철에는 개방을 한다. 해수욕장을 철조망 사이로 통과한다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그만큼 외지인의 발길이 뜸해 청정한 자연 그대로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동해의 푸른 바다와는 또 다른 투명한 비취색 물빛 속에서 미역이 자라는 모습과 고기가 노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고포마을의 갯바위에서는 세월보다는 고기 낚을 확률이 훨씬 높다.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마을 앞 몽돌해변에서 찾은 하트 모양 몽돌. 2007년 8월. 사진 / 박지영 기자

여름철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태국 파타야의 산호섬보다 더 맑고 투명해 “우리나라에도 이런 바다색이 있었어?”하고 반문할 정도다. 곳곳에 갯바위가 많아 낚시꾼들도 많이 찾는다. 고포에서 호산 방면으로 걸어서 5분이면 방파제가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은 주로 그 위에서 낚시를 한다. 방파제 끝부분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는 수중 주위가 일급 포인트로 감성돔을 포함한 다양한 어종들이 잡힌다. 주변 갯바위 주위에서도 잘 잡히지만 7~8월 여름철 외에는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어 출입이 쉽지 않은 것이 아쉽다.

방파제 바로 옆의 월천해수욕장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족들이 텐트 치고 쉬었다 가기 좋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좋은 곳을 보면 그곳이 쉽게 노출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고포마을이 그랬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투명한 비취빛 바다가 있어 진정으로 휴식을 원할 때 꼭 다시 찾고 싶다. 강원도와 경상도 땅을 한꺼번에 밟고 싶을 때도 물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