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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국토 재발견] 우리나라 최서단 섬 가거도에 서다 어기야디야 다 왔구나, 아홉골래밀 다 왔구나* 
[국토 재발견] 우리나라 최서단 섬 가거도에 서다 어기야디야 다 왔구나, 아홉골래밀 다 왔구나* 
  • 송수영 기자  
  • 승인 2007.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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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우리나라 최서단에 자리한 가거도.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여행스케치=가거도] 여기 퀴즈 하나, 우리나라 최동단 땅은 독도, 최남단은 마라도, 그렇다면 최서단은? ‘웬만큼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땅끝 섬, 가거도를 찾아가보았다.

可居島 

목포에서 남서쪽 136㎞, 흑산도에서는 65㎞ 떨어진 곳에 신안군 가거도(可居島)가 있다. 동경 125°7′, 북위 34°4′.

우리 국토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해 있어 중국에서 우는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얘기도 있고, 심지어 6·25전쟁이 발발한 것도 모르고 살았단다. 대개 섬마다 조선시대 죄인들이 유배되었던 기록이 있지만 이곳만큼은 웬일인지 그런 기록이 전무하다. 조정의 명이 아무리 서릿발 같아도 죄인을 호송하다가 자칫 자신의 목숨까지 거친 바다에 내버릴 수는 없었을 터. 적당히 흑산도 등에서 멈추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가거도 바위섬들 사이를 유유히 오가는 고깃배.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우러러보면 그저 감탄사만...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그러고 보면 그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그곳에 삶의 뿌리를 이어 내려온 가거도 사람들의 삶이 더욱 애잔하다.    

가거도에 가려면 목포에서 쾌속선을 타야 한다. 동양고속과 남해고속이 짝홀수날로 나누어 번갈아 운행하는데 비금도, 흑산도, 하태도 등을 거쳐 들어간다. 날이 좋으면 약 네 시간이고 홍도를 거쳐 갈 경우엔 대여섯 시간이 족히 걸리므로 역시 만만한 여정은 아니다(서울에서 떠난 여행객이라면 이미 전날 목포까지 KTX로 4시간을 타고 왔을 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날이 좋아 오늘은 파도가 높지 않다는 소식이다. 파도가 높으면 배 안에서 초죽음이 될 것이고, 그나마 아예 배가 뜨지 못하는 날도 허다하니 최서단의 섬은 속살을 그리 호락호락 보여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번 여행은 가거도에서 1박 하는 짧은 일정이다. 가거도를 제대로 알기엔 턱없이 빡빡한 스케줄.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가거도 팔경 중 ㅎ나로 꼽히는 칼바위의 당당한 위용.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비경 
신안군청 문화관광과의 박관호 씨는 “홍도의 기암괴석들이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럽다면 가거도는 훨씬 웅장하고 남성적이다”고 말한다.  

가거도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낚싯배를 하나 대어 섬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겠다. 일만이천 봉 금강산을 바다에 옮겨놓은 듯 깎아지르는 주상절리 바위섬의 위용에 일행이 모두 넋을 놓는다. 수천 년 동안 세찬 파도와 바람에 깎여 둥글어지기도 했으련만, 바위는 여전히 막 손질한 무사의 칼처럼 서슬이 퍼렇다. 

자세히 보니 군데군데 갯바위에 사람 기척이 있다.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강태공이다. 사실 여행객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바다낚시꾼에게 가거도는 일종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훼손되지 않은 청정한 바다에 주변 해역의 수심이 깊고 해저가 대부분 암초 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어족이 풍부한데, 특히 철 따라 굵직굵직한 갯돔이며 감성돔, 방어 등이 ‘솔찬히’ 올라온다. 여기에 거친 야성미가 물씬 풍기는 자연환경은 낚시하는 맛을 제대로 살려준다.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기기묘묘한 형태로 깎인 주상절리의 철벽.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고깃배가 드나들 정도로 큰 구명이 뚫린 곳도 잇다.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잔잔한 파도에 우리가 탄 고깃배가 둥실둥실 춤을 춘다. 바로 옆에서 흐물흐물 해파리도 박자를 맞추고 있다. 물 좋고 먹이가 많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해파리 이놈도 크기가 웬만한 사람 머리보다 크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갔을까, 배가 가파른 절벽 끝에 잠시 멈춰섰다. 마치 암벽등반을 하듯 조심스럽게 올라가니 거짓말 아니라 학교 운동장만큼 너른 터가 있다. 엄청난 규모의 평바위로, 이 동네 사람들이 일명 논산훈련소라 부른다는 극흘도다. 엄청난 바위의 위용에 갑자기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졌다. 어째 소란스럽다 했더니 바위 한쪽 끝 그늘에서 가거도 주민 몇몇이 모여 라면에 우럭을 넣고 끓여 술자리를 한판 벌이고 있다. 낯선 이들이 갑자기 들이닥치자 “으디서 왔는가, 서울? 워매, 그람 이거 함 묵어보소” 하며 시장 상인이 손님이라도 끌듯 손짓을 해댄다. “여그가 우리 명당이지라. 을매나 좋소. 안 그요?” 하며 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그네들의 말처럼 이 명당에서 오늘 일정 다 접고 망망대해가 빨갛게 물들 때까지 질펀한 술자리를 해도 좋겠다 싶다. 

그러나 다음 일정을 위해 일행은 서둘러 배를 타고 길을 재촉한다. 처음 배에 탔을 때 여기저기 감탄 속에 연신 울려대던 셔터 소리도 줄고 이제는 모두 조용히 앉아 바다에 취해 있다. 사실 엄청난 자연 앞에선 어떤 수사(修辭)도 부끄러울 뿐이다.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가거도 등대.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이국적 풍경
하루에 배만 여덟 시간 가까이 타고 나니 육지에 내려서도 어질어질. 그래도 서둘러 저녁 식사를 하고 언덕 너머 항리(2구)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거도는 총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배가 들어오는 대리(1구)가 중심을 이루고 대리와 대풍리(3구)가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다. 아는 사람은 가거도라는 말에 이미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을 떠올렸을 것이다. 섬 전체가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었지만 특히 항리에는 영화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학교(폐교)가 아직 남아 있다. 

이곳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트럭. 식당 주인의 자가용 트럭 뒤에 떼지어 올라타고 언덕을 힘차게 올라 내지른다. 도시에선 트럭 짐칸에 타는 일이 어림없는 일이지만 가거도에 오면 가거도 법을 따를지니, 덕분에 복고적 낭만을 한껏 즐기게 됐다. 트럭이 엔진 소리를 높이며 가파른 언덕을 넘으니 꾸불꾸불한 외길 저 건너편으로 작은 학교 건물이 보인다. 지금은 폐교로 남아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말없이 그렇게 있다. 팔팔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었을 교정이 어느덧 은퇴하여 조용히 늙어가는 모습이 처연하다. 

바람이 많은 동네인지라 학교 담은 돌로 아기자기하게 둘러처져 있다. 지금은 그나마 여길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아 풀들이 웃자라 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흡사 이런 모습이 아닐까. 저 멀리서 사람들이 풀어놓은 검은 염소만이 조용히 오간다.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주요 배경지였던 소흑산초등학교 향리분교.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마을 구경 
어촌의 아침은 부지런히 시작되어 다음날 우리 일행이 아침 식사를 한 7시 무렵엔 이미 마을 주민 모두가 깨어서 돌아다니는 듯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동네를 슬슬 돌아보는데 골목 안 그늘에서 할머니 두 분이 쪼그리고 앉아 생선을 다듬고 있다. 

“할머니 그 생선 이름이 뭐예요?”
(질문과 상관없이) “워매, 어제 서울서 배 타고 들어온 기자들잉가?”
네, 하는 대답을 하며 우리는 연신 처음 보는 생선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는다. 
“다 찍었는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우리들이 사진 찍는 것을 의식해서 일부러 고개를 들고 활짝 웃는 포즈를 취하고 계셨던 것이다.)
“(웃음) 처음 보는 생선이네요.”
“열기라꼬, 여그밖에 안 나는 것이여.”
“어떻게 먹는 건데요?”
“지져도 묵고, 말려서 지리로 묵어도 엄청 맛있어. 쩌번에 서울에 이마트 갔을 때 봉께 이거 한 마리씩 포장해서 팔드라꼬. 월매냐구 물어봉께 만원이라 안 그요. 여그꺼정 왔응께 묵어보믄 좋을낀데, 거시기 시간이 있을랑가?”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가거도 마을 전경.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순박한 섬사람 인심이 폴폴 묻어난다. 

너무 맛있어서 남편한테는 숨기고 새서방에게만 몰래 두고 준다는 열기를 아쉽게도 실컷 구경만 하고 골목길 안으로 올라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프랑스의 애즈(독수리마을)처럼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래된 가옥들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각기 좋아하는 색을 칠한 것인지 핑크색 지붕이 있는가 하면 짙은 코발트의 원색적인 벽도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 지방의 단조로운 흰색도 멋지지만 자유롭게 멋을 낸 가거도 주민들의 독창적이고 낭만적인 취향도 못지않다. 그저 순박해 보이기만 하는 얼굴 속 어디에 이런 예술적 끼가 숨어 있을까. 

어제 서울서 외지인이 왔다고 졸졸 따라다니던 초등학교 1학년 최지혜가 우리를 보고는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벌써 얼음과자 하나를 사서 한 손에 들고 있다. 

“여그는요, 1000원이라 써 있는 과자는 1200원이고요, 그런데 600원짜리는 700원이에요. 700원이면 800원이요.”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넉살좋게 늘어놓는 꼬마숙녀. 할머니와 단 둘이 섬에 사는데 말괄량이 캔디처럼 쾌활하다. 우리도 ‘1200원짜리’ 아이스바 하나를 물고 잠시 평상에 앉아 땀을 식히자니 주인아줌마가 나와 옆에 앉는다.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홍합을 따온 마을의 주민.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핑크색 담장과 창이 푸르른 하늘 아래 눈부시다.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2007년 9월. 사진 / 송수영 기자
산등성이 밭을 메고 집으로 가는 마을 주민. 2007년 9월. 사진 / 양미경 작가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니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경상도 사투리다. “선 봐서 결혼했는데 여긴 줄 몰랐지, 뭐” 하면서 웃는다. 부산이 고향이라 예전에 친정 나들이 한번 할라 하면 흑산도에 가서 하루 묶고 다음날 목포 갔다가 다시 광주로 올라가서 거기서 고속버스 타고 또 끝없이 가야 했단다. 이만큼 된 것도 엄청 편해진 거라며 만족하는 얼굴. 신랑 좋아서 여기까지 왔으니 불편한 게 없다는 말로 다시 한번 우리를 놀래키는 만물상 슈퍼 주인 이명숙 씨다. 

그러고 보면 편하고 불편하고는 마음먹기에 달렸는지 모른다. 그녀가 처음 시집을 온 이십오 년 전만 해도 이곳에 그저 관광 삼아 놀러 온다는 것이 가당키나 했을 것인가.

심지어 ‘가거도멸치잡이노래’의 무형문화재 최호길 씨(63세)의 어린 시절엔 목포까지 돛단배를 타고 가야 했단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학생이 그 배를 타고 목포에 공부하러 나갔다. 바람이 잘 불면 하루에 닿지만 아니면 이틀이고 삼일이고 바다에서 헤맸다. 

그런 거친 세월을 보낸 이들 앞에서 너무 멀다는 둥 불편하다는 둥 하는 말은 얼마나 기름진 사치였을는지. 찾아오기 힘드네 어쩌네 해도 대한민국의 서쪽 끝 가거도의 삶은 이처럼 꿋꿋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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