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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7월호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복사꽃처럼 어여쁜 간이역, 군위 화본역
[권다현의 아날로그 기차 여행] 복사꽃처럼 어여쁜 간이역, 군위 화본역
  • 권다현 여행작가
  • 승인 2020.03.10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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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히는 화본역
옛 시절 떠올리게 하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삼국유사' 벽화 따라 책 읽듯 즐기는 산책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힌 군위 화본역.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여행스케치=군위] 한때 기차역은 마을 사람들이 들고나는 유일한 문이자 가장 번화한 중심지였다. 기차 시간이 다가오면 하나둘씩 모여든 이웃들끼리 저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랑방이기도 했다. 편리함을 쫓아 달아난 시간은 그 모든 풍경을 추억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여기, 복사꽃처럼 어여쁜 간이역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섰다. 

뾰족한 삼각 지붕을 얹은 화본역은 낡은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아련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혀 역사를 모델로 한 미니어처도 판매된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던 급수탑은 기차역이 품은 오랜 시간을 대변한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추억박물관과 <삼국유사>를 주제로 그린 벽화, 관사로 쓰던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한 민박까지 마을 구석구석 볼거리가 보석처럼 숨어있다.

꿈결처럼 화본역에 도착하다
청량리역에서 아침 7시 38분에 출발한 기차는 정오를 조금 넘겨 군위 화본역에 도착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에 들뜬 기분도 잠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 탓인지 기차가 경기도를 채 벗어나가기도 전에 노곤한 졸음이 밀려왔다. 휴대전화 알람에 부랴부랴 기차에서 내렸더니 꿈결인 듯 눈앞이 뿌옇다. 몽롱한 기분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흑백사진처럼 아련한 풍경들이 이어진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느티나무 잎사귀 너머 살굿빛 화본역사가 보인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날이 흐려 우야노.” 

서울 아들네에 다녀오는 길이라며 살갑게 말을 붙였던 어르신은 잠시 안쓰러운 눈빛이더니 곧 걸음을 재촉했다. 하루 한 번, 서울에서 화본마을로 오는 유일한 기차임에도 플랫폼에는 대여섯 명이 전부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던 그때, 플랫폼 너머로 삐죽이 솟은 급수탑이 눈에 들어온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던 급수탑은 ‘칙칙폭폭’ 정겨운 기적소리가 사라지면서 이젠 몇 남지 않은 소중한 철도 문화재가 되었다. 현재까지 원형이 보존된 급수탑은 전국적으로 스무 개 남짓. 그중에서 연대가 가장 오래된 연산역 급수탑을 비롯해 절반 정도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이들과 달리 내부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화본역 급수탑은 기차 여행자들에겐 손꼽히는 볼거리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석탄절약' 등의 글귀가 적힌 급수탑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찻길 너머로 눈길을 사로잡는 화본역 급수탑.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찻길 너머로 눈길을 사로잡는 화본역 급수탑.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이곳 급수탑은 전형적인 원통형 모양이지만 높이가 무려 25m에 달할 만큼 규모가 상당하다. 경북 내륙의 험난한 지형을 달리려면 그만큼 강한 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내부엔 ‘석탄정돈’, ‘석탄절약’과 같은 당시 작업 풍경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글귀들이 남아있어 더욱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기찻길 너머 뾰족한 삼각 지붕을 얹은 화본역은 낡은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애틋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철도동호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은 이유를 단번에 알겠다. 실제로 화본역을 모델로 한 간이역 미니어처도 판매될 만큼 담박한 건축미가 돋보인다.

다른 역사들과 달리 살굿빛으로 칠한 외벽도 마치 시골 소녀의 뺨처럼 수줍고 사랑스럽다. 역사 내부엔 화본역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역무원들이 쓰던 모자도 비치돼 색다른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화본역의 모습을 본뜬 간이역 미니어처.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화본역의 옛 모습이 전시된 역사 내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기차역 앞마당엔 멋스러운 느티나무 한 그루가 그림처럼 서 있다. 봄바람에 연둣빛 잎사귀가 일렁이는 모습이 퍽 서정적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해설사는 “어릴 때부터 저 모습 그대로 서 있었으니 수령 100년은 훨씬 넘었을 것”이라며 “기차 시간이 되면 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옛 풍경을 전한다.

“근처 영천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침부터 기차역이 들썩일 만큼 온 동네에 활기가 넘쳤다”며 “집마다 자동차를 굴리고 아스팔트를 덮어 큰길을 내기 전까지 화본역은 이 마을의 가장 번화한 중심가였다”고 덧붙인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철도 이용객도 자꾸 줄어들면서 마을 사람들은 혹여 화본역에 기차가 끊기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아름다운 기차역 풍경이 인기 예능프로그램과 영화에 소개되며 꾸준히 여행자들이 찾아와줬다. 해설사는 덕분에 오늘도 기차를 타고 화본역으로 출근했다며 난생처음 본 여행자에게 정다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INFO 화본역
주소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 711-9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화본역 건너편 언덕배기에는 테마 박물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가 자리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7080 추억박물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한때 시끌벅적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로 가득했던 산성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마을 인구가 자꾸만 줄어들면서 결국 폐교되었다. 아이들이 떠나고 덩그러니 남은 초등학교는 주말이면 관광객들의 주차장으로 활용된다. 그래도 화본역 건너편 언덕배기에 자리한 산성중학교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란 이름의 테마 박물관으로 변신해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니 옛 교실에 손때 묻은 책상과 걸상, 흑칠판 등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리운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옆 반 정복’이라고 적힌 급훈도 재미있다. 옆 교실에는 뮤직 박스와 촌스러운 꽃분홍색 소파가 놓인 음악다방, 추억의 포니 자동차가 70~80년대의 감성으로 초대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박물관 내 재현된 옛 교실 풍경이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옛 마을 풍경을 재현한 공간.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꽃분홍색 소파가 놓인 음악다방.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회본역 모양의 앙증맞은 빵.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복도 반대쪽에는 ‘역전상회’와 ‘화본이발소’ 등 옛 마을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공간이 자리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운동장에선 굴렁쇠와 제기, 달고나 등 ‘엄마 아빠 어렸을 적’의 장난감들이 가득하다. 갓 구워낸 달콤한 빵 냄새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화본빵은 기차역을 쏙 빼닮은 모양이 앙증맞다.   

INFO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11월~2월은 오후 5시까지) 
관람요금 성인 2000원, 어린이(만3세부터 초등학생) 1500원, 단체(10인 이상) 1000원 
주소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 722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삼국유사>를 테마로 그린 화본마을 벽화.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보석 같은 이야기가 숨은 화본마을
언덕을 내려와 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자연스레 담벼락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흔히 군위를 ‘삼국유사의 고장’이라 일컫는데, 이는 저자인 일연이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화본마을의 벽화는 이 같은 <삼국유사>에 실린 다양한 신화를 소재로 그렸다. 마치 그림으로 책을 읽듯 마을을 걷는 재미가 남다르다. 동화 느낌의 오밀조밀 귀여운 작품부터 일연을 주인공으로 한 사실적인 작품까지 벽화 하나하나 개성이 넘친다. 

이름도 정겨운 역전상회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로 인기다. 바로 옆에 해설사가 추천해준 화본식당이 자리한다. 손맛 좋은 주인이 인심도 넉넉해 마을 사람들도 즐겨 찾는단다. 얼갈이를 넣고 구수하게 끓여낸 어탕국수와 멸치를 이용한 도리뱅뱅이가 별미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얼갈이를 넣고 끓인 화본식당의 어탕국수는 별미로 꼽힌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로 인기인 역전상회.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조금 더 걷다 보니 안 그래도 좁은 인도를 떡하니 차지한 고인돌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뒤쪽으로는 아예 남의 집 한쪽 마당을 차지했다. 고인돌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긴 하지만 어느 시대에, 어떤 이유로 여기에 자리하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지나는 어르신께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이다. 사람 다니는 길을 막고 있으니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르신 대답에 찡한 감동을 받는다.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여기 있던 돌이니 우리가 한 걸음 돌아서 다니는 게 맞겠지.”

고인돌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1930년대 중반에 지어졌다는 일본식 건물을 만날 수 있다. 화본역 관사로 쓰였던 이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하절기 마을 민박으로 운영한다. 꽤 규모가 큰 다다미방이라 가족 여행객에게 안성맞춤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화본마을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즐기기 좋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길가에 전시된 고인돌.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1930년대에 지어진 화본역 관사. 하절기에는 마을 민박으로 운영해 숙박할 수 있다. 사진 / 권다현 여행작가

INFO 화본마을 철도관사
주소
경북 군위군 산성면 산성가음로 6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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