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당진] 충남 당진오일장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구구단 5단을 외우자. 5일은 장날, 5×2=10일도 장날! 언제어디서든 달력 없이도 장날을 기억할 수 있는 ‘당진오일장 공식’이 완성된다.
상설시장이 아니라 장터 입구가 따로 없다고 했다. 장날에 맞춰 보따리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하천변과 도로변에 난전을 펴고 길게 늘어서는 진짜 ‘전통오일장’이기 때문이다. 그럼 장터까지 어떻게 찾아가느냐고 물었더니 “우선 당진보건소부터 찾구유, 보건소 뒤로 나가면 하천에 다리 하나 있슈. 그기 시장교인디유 그 위로 알록달록 천막 보일거예유. 그 앞부터 한 500~600m가 다 장터예유. 그 길로 빤듯이 내려가면 살 거 다 사고 먹을 것도 다 먹을 수 있슈” 한다. 당진시장 상인회에서 일러준 대로 당진보건소 앞에서 건물 뒤편을 바라본다.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고소한 기름 냄새와 알록달록 천막으로 길을 찾는다.
미끄러지듯 장터 안에 들어서고 보니 고문이 따로 없다. 하필이면 도착하자마자 먹자골목이다. 닭 한 마리를 가마솥에 통째로 튀긴 옛날통닭, 산더미처럼 쌓인 ‘사라다 빵’과 ‘튀긴 도나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돼지 수육까지. 군침 도는 주전부리가 길 양쪽에 수북하다. 뭐부터 먹을까 고민하다 아까부터 코를 괴롭히던 기름 냄새를 따라간다.
“젊은 아가씨는 처음 보나? 이게 메추리 통구이인데 안주로는 최고야. 에이, 살만 발라먹으면 맛이 없지. 쪽 찢어가지고 뼈째 오독오독 씹어 먹어야 제 맛이야. 자, 한번 먹어봐요.”
반주를 즐기고 있던 김영관 씨가 손수 메추리 다리를 찢어 준다. 바삭바삭한 뼈와 쫀득한 살집이 햇볕에 바짝 말린 육포처럼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메추리구이 한 접시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추억 속 ‘구르마’를 밀고 오는 냉차 아주머니를 만나 얼음 가득 넣은 칡차도 한 잔 받아든다. 달고 시원한 칡차를 쪽 쪽 마시며 점심 먹자마자 저녁거리를 찾기 위해 장터를 휘젓고 돌아다닌다. 살이 차기 시작한 대하도 좋고,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싱싱한 고등어도 맛있겠다. 당진의 열댓 개 크고 작은 항구가 지척이다 보니 새벽에 갓 잡은 해산물의 때깔이 싱싱하기도 하다. 새벽 손을 타 먹음직스러운 것은 해산물뿐만이 아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린 것만 솎아낸 호박잎, 깻잎, 콩잎, 튼실한 가지와 오이, 햇콩 등 새벽의 수확물이 난전마다 가득하다. 개중 호박잎 한 묶음을 사서 장바구니에 담는다.
“왔다 갔다 버스비가 2000원인데 이제 차비 벌었어. 지금부터가 열심히 팔아야지. 시장 안쪽에 좋은 자리를 맡아야 하는디 질 끝으로 밀려서 클났다 싶드만 아가씨가 개시해주네.”
윤정자 할머니가 개시해 준 보답이라며 햇콩을 한주먹 쥐어 주신다. “새벽에 따서 물에 안불랴도 댜. 밥할 때 물 넣고 콩 넣고 해서 먹어. 맛있어” 안부도 잊지 않는다. 콩 한주먹에 왜 이리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발걸음 경쾌하게 돌아서는데, 멀리서 철컹철컹 짤랑짤랑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린다. 흥겨운 장단에 맞춰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호객 소리가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