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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시골 장터 기행] 찰캉찰캉 엿장수 가위질에 맞춰 찰랑찰랑 냉차 구르마가 달리는 충남 당진오일장
[시골 장터 기행] 찰캉찰캉 엿장수 가위질에 맞춰 찰랑찰랑 냉차 구르마가 달리는 충남 당진오일장
  • 전설 기자
  • 승인 2014.09.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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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당진] 충남 당진오일장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구구단 5단을 외우자. 5일은 장날, 5×2=10일도 장날! 언제어디서든 달력 없이도 장날을 기억할 수 있는 ‘당진오일장 공식’이 완성된다.

상설시장이 아니라 장터 입구가 따로 없다고 했다. 장날에 맞춰 보따리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하천변과 도로변에 난전을 펴고 길게 늘어서는 진짜 ‘전통오일장’이기 때문이다. 그럼 장터까지 어떻게 찾아가느냐고 물었더니 “우선 당진보건소부터 찾구유, 보건소 뒤로 나가면 하천에 다리 하나 있슈. 그기 시장교인디유 그 위로 알록달록 천막 보일거예유. 그 앞부터 한 500~600m가 다 장터예유. 그 길로 빤듯이 내려가면 살 거 다 사고 먹을 것도 다 먹을 수 있슈” 한다. 당진시장 상인회에서 일러준 대로 당진보건소 앞에서 건물 뒤편을 바라본다.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고소한 기름 냄새와 알록달록 천막으로 길을 찾는다.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미끄러지듯 장터 안에 들어서고 보니 고문이 따로 없다. 하필이면 도착하자마자 먹자골목이다. 닭 한 마리를 가마솥에 통째로 튀긴 옛날통닭, 산더미처럼 쌓인 ‘사라다 빵’과 ‘튀긴 도나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돼지 수육까지. 군침 도는 주전부리가 길 양쪽에 수북하다. 뭐부터 먹을까 고민하다 아까부터 코를 괴롭히던 기름 냄새를 따라간다.

“젊은 아가씨는 처음 보나? 이게 메추리 통구이인데 안주로는 최고야. 에이, 살만 발라먹으면 맛이 없지. 쪽 찢어가지고 뼈째 오독오독 씹어 먹어야 제 맛이야. 자, 한번 먹어봐요.”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푸근하게 미소 지으며 시원한 냉차와 따끈한 커피를 내주는 ‘구루마 아줌마’ 최정애 씨.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인근 장고항에서 들어온 싱싱한 대하를 비롯해 제철 해산물이 풍성하다.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김영관 씨와 벗들이 장터 먹자골목에서 반주를 즐기고 있다.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반주를 즐기고 있던 김영관 씨가 손수 메추리 다리를 찢어 준다. 바삭바삭한 뼈와 쫀득한 살집이 햇볕에 바짝 말린 육포처럼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다. 메추리구이 한 접시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추억 속 ‘구르마’를 밀고 오는 냉차 아주머니를 만나 얼음 가득 넣은 칡차도 한 잔 받아든다. 달고 시원한 칡차를 쪽 쪽 마시며 점심 먹자마자 저녁거리를 찾기 위해 장터를 휘젓고 돌아다닌다. 살이 차기 시작한 대하도 좋고,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싱싱한 고등어도 맛있겠다. 당진의 열댓 개 크고 작은 항구가 지척이다 보니 새벽에 갓 잡은 해산물의 때깔이 싱싱하기도 하다. 새벽 손을 타 먹음직스러운 것은 해산물뿐만이 아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여린 것만 솎아낸 호박잎, 깻잎, 콩잎, 튼실한 가지와 오이, 햇콩 등 새벽의 수확물이 난전마다 가득하다. 개중 호박잎 한 묶음을 사서 장바구니에 담는다.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2014년 10월 사진 / 전설 기자

“왔다 갔다 버스비가 2000원인데 이제 차비 벌었어. 지금부터가 열심히 팔아야지. 시장 안쪽에 좋은 자리를 맡아야 하는디 질 끝으로 밀려서 클났다 싶드만 아가씨가 개시해주네.”
윤정자 할머니가 개시해 준 보답이라며 햇콩을 한주먹 쥐어 주신다. “새벽에 따서 물에 안불랴도 댜. 밥할 때 물 넣고 콩 넣고 해서 먹어. 맛있어” 안부도 잊지 않는다. 콩 한주먹에 왜 이리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발걸음 경쾌하게 돌아서는데, 멀리서 철컹철컹 짤랑짤랑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린다. 흥겨운 장단에 맞춰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호객 소리가 반가워 한달음에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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