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군산]고군산군도의 맏형, 신시도. 신시도 대각산 정상에 오르면 군산(群山)이라는 지명이 왜 생겼는지 이해가 된다. 모양도 제각각, 크기도 각기 다른 수십 개의 섬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하모니. 비경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명세로 치자면 선유도에 한참 처지지만 고군산군도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신시도로 가야 한다. 선유도가 신선들이 놀다 가는 곳이라면, 신시도는 신선들이 몰래 찾아와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할 만하다. 마을 자체도 아름답지만 대각산 정상에서 보는 고군산군도의 풍광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군산, 김제, 부안 등을 잇는 새만금방조제의 건설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신시도까지의 접근이 훨씬 편해졌다.
신시도에 가기 위해서는 일단 비응항 쪽으로 가야 하는데 비응항은 새만금방조제의 군산 기점으로 현재 이 일대는 천지개벽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풍력발전단지와 함께 대형 선박들이 정박할 수 있는 어항과 휴양 시설을 두루 갖추게 되어 앞으로는 서해안을 대표하는 중심 항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춰 수산물 식당이나 숙박시설 등 여행 관련 편의시설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여기 정말 섬 맞아?
신시도에 가려면 새만금방조제를 지나야 한다. 아직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아야 해 현재까지는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방조제길을 따라 신시도까지는 10km 남짓이지만 공사 차량이 수시로 들고 나는데다 아직은 길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 일반 포장도로를 생각하면 안 된다. 방조제는 야미도를 지나 신시도까지 이어지는데 야미도 역시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육지화되면서 조용한 변화를 맞고 있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낚시꾼들 사이에서만 알려졌을 뿐 평소에도 그리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아니었다. 최근 대각산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이들이 간간이 있는 정도다. 방조제길로 차량이 들고 날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2년 전부터다.
그 전까지는 비응항에서 신시도 주민의 배를 타거나 내항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신시도는 10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작은 어촌이지만 고즈넉한 농촌의 풍경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임시주차장에서 작은 재를 하나 넘으면 포장된 임도가 하나 나타나는데 한쪽에 넓은 갈대밭이 펼쳐져 순간 섬이 아닌 시골마을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든다.
오솔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넓은 녹지가 펼쳐지고 그 아래에서 풀을 뜯는 몇 마리의 소, 재 너머에 이런 한가로운 풍경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신시도는 굳이 대각산 등반이나 낚시를 하지 않더라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유있게 돌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도 전혀 다니지 않는, 쉬엄쉬엄 걷기 좋은 길이 마을까지 이어진다.
마을에 이르기 전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이 나오는데 대각산 등산로 중에선 유일하게 정비된 길이다.
전망대에 이르려면 199봉 → 월영재 → 월영봉 → 전망대에서 다시 월영재를 통해 새만금공사현장사무소로 내려오는 4시간 코스가 있고, 월영봉을 거치지 않고 대각산에 올랐다 같은 길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이 코스는 왕복 2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시시각각 펼쳐지는 섬들의 파노라마
대각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는 아까부터 눈에 들어오는데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 능선을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정상까지 2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설명이 의심스럽다. 하지만 한 10분이나 올랐을까,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한 섬을 1분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아늑한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고 중간중간엔 잠깐 쉬어 가라는 듯 너럭바위가 있어 고군산군도를 눈에 담을 수 있다. 2시간 정도는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든다.
선유도가 워낙 유명한 까닭인지 군산 사람들 중에도 신시도에 이런 비경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단다. “군산 사람들도 이곳에 한번 오면 이런 곳이 있었냐”며 놀란다는 것이 시청 관광진흥과 임현 씨의 설명이다.
산을 오를수록 마을과 바삐 오가는 어선들 그리고 선유도와 횡경도, 그 너머엔 관리도까지 눈에 들어온다.
시야가 맑은 날에는 말도와 명도까지 볼 수 있지만 여름철엔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대각산 산행은 보기보다 힘든 코스는 아니다. 몇 개의 난코스(?)가 있긴 하지만 능선의 굴곡을 따라 리듬을 타다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길이다. 동네 뒷산이라도 몇 번 타본 사람이라면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는 얘기.
하지만 그 위에서 발견한 비경은 자신 있게 보물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압권이다. 산 정상에 오르기 전까지는 정말 저 아래에 저런 경치가 숨겨져 있을지 상상도 못했는데 2시간도 채 오르지 않고 만난 자연의 선물 치고는 너무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각산 정상엔 전망대 외에 아무것도 없지만 고군산군도를 360°로 감상하기는 더없이 좋다. 숨겨진 군도들이 펼치는 파노라마. 바라만 봐도 좋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