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독도] 또 독도를 흔들어댄다. 일본은 자기네 섬이라고 우기고, 미국은 어느 나라 섬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수천 년을 우리 섬으로 뿌리내린 채 동해를 지키고 있는 독도를 다녀왔다.
여행을 잘 하려면 여행지에서 늦잠을 자지 마라. 머나먼 길을 달려가서 늦잠을 잔다면 손해다. 한 그루의 나무나 한 개의 돌멩이라도 더 눈에 담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보기 위해서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기자는 하루에 500km를 운전해도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일출을 맞이한다. 일출이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게다가 해는 날마다 떠오르는 것이라며 차라리 늦잠을 자겠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울릉도의 일출을 기대하며 일찍 눈을 떴다. 리조트의 창문을 열었더니 창밖에는 아직 어둠이 깔려 있다. 상큼한 바닷바람이 여행객을 반기는 듯 방 안으로 들어왔다. 숙소 앞 바다는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울릉도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가슴을 졸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울릉도의 일출이 얼마나 장엄한지 구경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도에 가는 배가 운항할 수 있는 날씨인지 살피려는 뜻이다. 태풍주의보가 내리거나 비가 많이 내리면 독도로 가는 배가 뜨지 않는다. 바닷길이 멀고 거칠어지기 때문이다.
울릉도야 나중에 자주 올 수 있지만 독도는 여행할 기회가 많지 않을 터였다. 동경했던 섬, 독도. 일본 사람들이 잊어버릴 만하면 자기네 섬이라고 흔들어대는 동해의 작은 섬에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리조트 마당에 나가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데 동쪽 하늘이 밝아온다. 아, 울릉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다니… 양팔을 벌려 심호흡을 한다. 갯냄새가 좀 나기도 하고, 바람이 좀 찬 듯하지만, 가슴 속까지 부드럽다. 날마다 이런 바람을 가슴에 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울릉도 도동항에서 독도 가는 배를 기다린다. 30분이나 일찍 나와서 기다린 탓인지 시간이 더디게 간다. 육지를 떠나기 전에 독도해운에 예약을 해놓았으니 승선에는 문제가 없겠지.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다니는 여객선은 보통 하루에 한 번 있다. 예약 손님이 많으면(500명 이상) 오전 오후로 나눠서 두 번씩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파랑주의보나 태풍주의보가 내리면 배가 뜨지 않는다. 독도에 가겠다는 여행객 숫자가 100명 미만이어도 배가 운행하지 않는다. 독도 가는 배가 일반 여객선이라 손해를 보면서까지 운행할 수 없다는 게 선주측 입장이다. 온 국민이 아무리 울분에 찬 목소리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동해를 지키고 있는 국토의 막내 독도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조차 넉넉하게 지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정부다. 이것은 국토를 지키는 막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표적인 푸대접 사례다.
그동안 정부에서 푸대접한 국토가 어찌 독도뿐이겠는가. 백두대간이 사기업에 팔려서 허리가 잘려나가고 있지만 정부는 무관심하다. 그럼에도 여행 중에 이런 복잡한 문제로 울분을 터뜨리는 것은 바보짓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배가 도동항을 출항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멋진 비행을 한다. 독도는 어떻게 생겼을까? 독도에는 무슨 꽃이 피고, 무슨 새가 살까? 독도에 가면 무슨 일을 먼저 할까? 온갖 상념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늘은 파랗고 물빛은 시퍼렇다. 저 멀리 안개 낀 수평선이 보인다. 그러나 섬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멀리 있는지? 그 먼 바다에 홀로 떠 있을 섬을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하다. 날씨가 맑으면 울릉도에서 독도를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데….
독도가 보인다. 도동항을 떠난 지 1시간 남짓 되었는데 저 멀리 한 점 섬이 보인다. 해저 약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약 460만 년 전부터 250만 년 전 사이에 생성되었다. 울릉도보다 약 200만 년 앞선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인 두 개의 바위섬과 약 90개의 바위와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여행객의 시야에 들어온 독도는 아직 한 덩어리 섬일 뿐이다. 독도의 지목은 임야와 대지, 잡종지이며 101필지에 면적은 187,554㎡이다.
독도 위로 갈매기가 날고 있다. 독도가 두 개의 섬으로 나뉘어 보이고, 마침내 2시간 남짓 푸른 물을 가르고 온 배가 동도선착장에 닻을 내린다. 독도경비대원들이 여객선과 여행객을 맞이한다. 날마다 보는 여행객이어서 그런지 대원들의 얼굴은 웃음기조차 없이 무표정하다.
선착장은 콘크리트로 만들어놓았다. 선착장 한켠에 독도의용수비대가 세운 대한민국 영토라는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보고 섰는데 가슴이 울컥 치밀어오른다. 한쪽 구석에는 독도에 근무하다 순직한 분들(경찰, 전경대원, 수비대원)의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를 둘러보고 동도에 오른다. (일반 여행객은 동도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취재기자에겐 특별히 정상에 오르도록 허락했다.)
동도에 올라보니 정말이지 동쪽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사방이 10~30m 절벽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저 무시무시한 폭풍우와 파도에 시달리며 이 바다를 지켜왔을까? 가슴이 아린다.
동도에는 독도경비대가 근무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숙소가 있고, 24시간 돌아가는 KBS 카메라가 있고, 한국령(韓國領)이라 씌어진 바위가 있다.
동도는 최고봉 98m로 북쪽에 화산 흔적인 분화구가 있으며, 분화구에서 바다까지 바닷물이 드나드는 동굴이 있어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 분화구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정상은 그런대로 평탄한데 독도경비대가 머무르고 있다.
정상 오르는 길에 빨간 우체통이 보인다. 경비대원들이 사용하는 우체통인 모양인데 여행객들도 울릉도에서 가져온 엽서에다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집어넣는다. 이건 순전히 받는 사람을 위해 쓰는 편지일 게다.
섬 여기저기에 해국이 피어 있다. 해국은 언제 어느 바람에 실려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 섬과 함께하고 있을까? 키 작은 해국이 여행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서도는 최고봉 168m로 정상부가 뾰족한 원뿔형이다. 독도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높고, 가장 넓다. 경사가 가파른 하나의 봉우리로 되어 있고, 해안에는 많은 동굴이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20번지, 서도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1991년 11월 17일부터 김성도, 김신열 씨 부부가 어로활동에 종사하며 거주하고 있다.
서도의 물골에서는 자연수가 용출되고 있다. 경비대원이 생활하고 있는 동도에는 자연수가 나지 않는다. 식수를 만들어 먹는다. 예전에는 빗물을 모아서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식수는 울릉도에서 공급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바닷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조수기(바닷물 식수화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서도에는 오르지 못했다. 다시 배가 나갈 시간이다. 독도를 한 바퀴 돌면서 독도의 전설을 듣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다시 또 언제 독도를 찾게 될지 모른다. 마음이야 늘 독도를 밟고 싶지만 뭍에서 섬으로 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독도를 한 바퀴 돌아서 울릉도로 방향을 트는데 시선은 오래도록 독도에 박혀 있다. 까마득히 한 점으로 바뀔 때까지 여행객들은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독도여, 안녕!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마라. 영원히 우리 국토로 존재하라. 섬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