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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특집  늦여름 섬 여행] 보길도 고산 윤선도가 한눈에 반할 만하네
[특집  늦여름 섬 여행] 보길도 고산 윤선도가 한눈에 반할 만하네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8.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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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완도] 다도해라 불리는 남해안에는 아름다움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섬이 많다. 세상과 결별하겠다는 결심으로 제주도로 향하던 고산 윤선도 선생은 우연히 보길도에 머물다 ‘잠깐’이 아닌 12년이나 그곳에서 은신했다.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까닭이다. 

노화도에서 배를 내려 연도교를 건너 보길도에 들어선 순간, 전복을 따고 들어오는 어부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흔치 않은 구경거리에 사람들의 눈이 그곳으로 쏠리는데, 전복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 전복의 70% 이상을 생산하는 완도답다. 웬만한 어른 손바닥보다 큰 전복들이 상자 가득이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입맛을 쩝쩝 다신다.  

고산 윤선도 선생은 보길도에 들어섰을 때의 첫인상이 어떠했을까, 과연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았기에 그렇게 감탄했던 것일까.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송시열의 글이 씌어진 바위를 지켜보는 사람들.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겁도 없이 아스팔트길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게.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벅차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보길도 관광안내도를 살펴본다. 보길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천혜의 환경을 간직하고 있으며, 고산 윤선도 선생의 유적들이 어우러진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크게 자연 해수욕장을 둘러보는 코스와 고산 선생의 흔적을 따라가는 코스로 나누어볼 수 있다. 

더운 날씨에 바닷가를 먼저 구경하고 싶어 예송리 해변으로 향한다. 보길도는 백사장 해수욕장과 몽돌 해수욕장을 둘 다 가지고 있다. 그중 예송리는 검은 자갈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으로 ‘다도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은 보길도요, 보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은 예송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장 인상적인 해변이다. 이곳은 둥그스름한 자갈들이 모래 대신 해변을 덮고 있다. 그 모습이 평범한 해수욕장과는 달리 보여 신기해하고 있을 즈음,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들려와 하던 일을 멈춘다.  

‘촤르르르륵~’
모래사장을 오르는 파도라면 그저 ‘촤악’이면 끝나는 것을 예송리 해변에서는 파도에 밀리고 쓸려 몽돌이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덧입혀져 제법 들을 만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가만히 몽돌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일정한 것처럼 들리면서도 변칙적으로 연주되는 대자연의 연주에 졸음이 쏟아진다. 자연이 들려주는 자장가다.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맛도 좋고 몸에 좋은 전복이다!” 완도 하면 전복이 최고다.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뜨거운 몽돌에 등판이 익을 것 같아 몸을 세우니 저 바다 멀리로 어렴풋이 섬들이 보인다. 당사도, 예작도, 닭섬, 추자도,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엔 제주도의 모습도 걸려 있다.
 
예송리를 나와 섬의 가장자리를 다시 달린다. 백사장 해수욕장인 통리해수욕장은 울창한 솔숲과 야영장이 함께 있어 산림욕과 오토캠핑을 함께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또 다른 백사장인 중리해수욕장은 마치 거대한 풀장을 연상시킨다. 백사장에서 바다까지 나가는 경사가 완만해 해안에서 200m 정도는 어른 키를 넘지 않을 정도다. 

해변을 다 둘러봤으니 이제는 고산 선생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조선 시가문학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는 고산 선생의 ‘어부사시사’가 완성된 곳이 바로 보길도이다. 고산 선생이 보길도로 오게 된 연유는 앞에서 밝혔고, 12년 은둔 생활의 흔적이라 함은 그가 머물던 낙서재와 곡수당을 비롯해 동천석실, 그리고 세연정을 꼽을 수 있겠다. 

그중 부용동의 세연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흔히 우리나라 3대 전통 정원을 꼽으라면 담양의 소쇄원, 영양의 서석지와 함께 보길도의 세연정을 말한다. 그만큼 도저히 작은 섬에 있는 정원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전통 정원의 모습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파도와 만나는 예송리의 검은 몽돌.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전망대에서 바라본 예송리 해변 전경.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세연정이란 이름을 풀이해보면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정자’란 뜻이다. 세연정은 부용동 원림에서도 가장 공들여 꾸며진 곳이며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곳으로 놀이와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세연정 주위의 동대와 서대로 불리는 네모난 단과 연못 가운데의 너럭바위에서 무희는 춤을 추고, 악사는 풍악을 울렸던 것이다. 연못인 세연지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물이 넘칠 때는 폭포가 되고 평소에는 다리가 되는 판석보도 눈길을 끈다. 

그렇게 세연정 한 바퀴를 돌고 있자니 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볼거리들을 꼼꼼히 살피기 위해서라도 그러거니와 왠지 양반걸음을 걸어야 할 것 같은 세연정의 고풍스런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한 모양이다.   

세연정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그가 머물던 곡수당도 복원이 한창이다. 이곳은 고산 선생의 아들인 학관이 휴식하는 공간으로 지어진 것인데,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는 중이라 예스러움은 덜하다. 다만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일삼교와 유의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여 있고(물론 이것도 복원한 것이지만) 상연지와 하연지 등 작은 연못들의 배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산 선생의 흔적을 느낄 수 있음이다. 선생의 또 다른 거주지였던 낙서재는 복원 전이라 터만 남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동전석실. 2008년 8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곡수당에서 오른쪽으로 솟아 있는 안산을 바라다보면 산중턱에 고산 선생이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는 동천석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인데, 특히 동백나무가 울창하여 봄이면 붉은 꽃길이 되어 신비로운 느낌까지 준다. 

약 15분을 올라 동천석실에 이른다. 지나온 세월 때문인지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달리 다소 허름해 보이기도 하지만 깎아지른 절벽 위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과 부용동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절로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다시 해변가 길을 달리다 ‘망끝전망대’라는 곳에 잠시 멈춰 선다. 이 망끝전망대는 옛날 보길도의 아낙들이 고기 잡으러 나갔던 남편들의 배가 무사히 들어오는지를 바라보았다는 곳이다. 비가 오고 파도가 치면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고, 날씨가 맑으면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며 육지를 바라다보았을 애틋함이 깃든 보길도의 또 다른 ‘역사적 장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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