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특집 늦여름 섬 여행] 느릿느릿 시간이 잠시 멈췄다 가는 곳
[특집 늦여름 섬 여행] 느릿느릿 시간이 잠시 멈췄다 가는 곳
  • 서태경 기자
  • 승인 2008.08.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승봉도에서 볼 수 있는 해수욕장.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여행스케치=인천] 몇 개나 되는 해수욕장과 산책로에 등대까지 갖춘 섬들에 비한다면 승봉도는 보잘것없이 보일 수도 있다. 마을로 통하는 길도 하나, 해수욕장도 하나, 학교나 교회도 모두 하나밖에 없는 초미니 섬이지만 그런 점이 승봉도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지도 모른다. 작아도, 아니 작아서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모습만큼이나 넉넉한 인심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출발한 이작도행 카페리는 승봉도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떠나버린다. 피서철이 거의 끝난 탓에 그렇잖아도 썰렁한 페리에선 내리는 사람도 몇 되지 않고 승봉선착장도 손님을 마중 나온 차량만 두세 대 있을 뿐 한적하다. 각자 약속된 민박집 차량에 나눠 타고 휑하니 사라지니 선착장은 이내 다시 조용해진다. 아마 평소에도 이곳은 그리 붐빌 일이 없어 보인다.  

봉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모양새를 가진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된 승봉도(昇鳳島). 이름만 듣고서는 왠지 모를 강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막상 마주한 섬의 모습은 순하디순하다.

아담한 섬마을이 갖고 있는 장점, 승봉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차가 거의 없어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 있고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마을엔 대략 70가구 정도가 사는데 이중 일부는 여름철엔 민박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어업과 농사를 겸하고 있단다. 섬이면서도 물이 맑고 자원이 풍부해 “팔순 먹은 노인도 호미 하나 들고 나가면 하루 몇 만원은 충분히 벌 수 있다”며 펜션을 운영하는 김영후 씨가 은근히 자랑한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아늑한 풍경이 인상적인 승봉도리 전경.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봄이면 나물들이 지천이고 사철 바지락이며 골뱅이는 기본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승봉도는 고질적인 바가지요금이 없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성수기라도 민박 요금을 약속된 적정선으로 유지하고 슈퍼마켓도 육지와 거의 다름없는 가격을 받고 있어 이미지가 좋은 섬이기도 하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은 보이는 게 전부일 정도로 자그마하다. 그래서 초행자도 마음이 편하다. 지도를 펴서 표시하고 여기부터 여기까지 몇 분 이런 식의 동선 구성이 전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도 길은 한 곳으로 통하게 되어 있으니 심한 길치도 승봉도에선 예외다.  

이일레해수욕장의 백만 불짜리 경치
섬을 둘러보려고 자전거를 한 대 빌렸다. 서울 여의도의 1/4 크기, 걸어서 3시간이니 자전거를 타면 그보다는 훨씬 덜 힘들일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다. 다행히 섬에는 심한 오르막이 없고 울창한 숲도 있어 적당히 땀을 흘리며 돌아보기에 좋다. 

송림에서 즐기는 삼림욕 역시 승봉도 사람들의 자랑 중 하나다. 도깨비식당 앞길 오르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승봉도 하이킹을 시작해본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부채바위니, 촛대바위니 하는 곳들은 대단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승봉도에선 나름 유명한 코스(?)이니 놓치지 말자. 

특히 해수욕장이 단 한 곳밖에 없는 승봉도에서 촛대바위나 부채바위, 코끼리바위 주변은 조용히 바닷가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운 백사장은 아니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이다. 물이 많이 빠졌을 때에는 한가로이 바지락 채취도 할 수 있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페리를 타고 승봉도로 가는 길,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다.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그래도 섬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건 고운 모래밭이 펼쳐진 시원한 바닷가. 승봉도에는 해수욕장이 딱 한 군데 있는데 독점도 이런 독점이 없다. 바로 길이가 1.3km밖에 되지 않는 이일레해수욕장이다. ‘이일레’라는 예쁜 이름은 옛날 소에게 쟁기질하는 걸 이곳 모래밭에서 가르쳤다고 해서 붙여진 사투리라고. 서해의 여느 바닷가처럼 썰물 때에도 갯벌이 나타나지 않는데다 물이 무척 맑아 해수욕을 즐기기에도, 그냥 한가로이 거닐기에도 좋다. 

또 뒤편으로 전망 좋은 식당도 두세 군데 있어 바지락칼국수 같은 음식 하나만 주문해도 백만 불짜리 경치가 따라온다. 내친김에 해수욕장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 본다. 뾰족탑이 인상적인 승봉교회를 지나니 아담한 초등학교가 하나 나오는데 승봉초등학교다. 아마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이 학교를 다녔을 터인데 동네 아저씨께 여쭤보니 모두 세 학급이 있단다. 

“와 많네요? 세 학급이면 몇 명인데요?” “세 학급이라니까요, 1학년, 2학년, 6학년 한 명씩이요.” “…….” 이마저도 중학생이 되면 모두 인천으로 나가야 된단다. 인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도 이런 얘길 듣고 보니 지금 섬에 와 있다는 게 다시 한 번 실감난다. “여기 노인들 중에 2, 3년씩 뭍에 안 나가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우리야 일 년에 두어 번은 나가지만 노인네들은 어디 크게 아프지 않은 이상 안 나가죠.”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승봉도의 명물 부채바위. 2008년 8월. 사진 / 서태경 기자

또 승봉도 노인들은 건강하게 장수하기로도 유명하단다. 아마도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풍부한 자원 덕에 넉넉한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마당에 앉아 열심히 바지락 까는 한 부부를 만났다. 씻어서 한번 먹어보라며 바지락을 집어준다. 생바지락은 처음이라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싱싱해서 그런지 비린내는커녕 달기까지 하다. 사고 싶은 생각도 슬쩍 들지만 가져갈 걱정에 슬그머니 마음을 접는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덧 운무가 제법 짙어졌다. 이러다 금세 해가 질 것 같다. 오늘밤에는 별 구경하러 단 하나뿐인 해수욕장에 나가봐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