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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제주홀릭] 바다를 달리다, 안단테 카야킹
[제주홀릭] 바다를 달리다, 안단테 카야킹
  • 고선영 여행작가
  • 승인 2013.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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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여행스케치=제주] 올해 제주를 방문하는 여행자가 곧 1000만 명을 넘을 거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여기에 제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급격히 늘어난 젊은 이주자들의 숫자가 더해져 섬은 전에 없이 북적이고 있다. 제주의 진짜 매력을 만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살짝 귀띔한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바다를 달리다, 안단테 카야킹

단언컨대 제주의 바다와 그 바다가 품은 비경을 더듬어가는 가장 친환경적이며 근사한 여행 방법이다. 그 어떤 기계적 동력에도 의지하지 않은,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자연과 만나는 것이 바로 카야킹이기 때문이다. 월간 <산>에서 레저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한 포토그래퍼 허재성 씨가 고향인 서귀포시 보목동으로 내려와 차린 카약 카페에 들렀다가 얼떨결에 카야킹에 나서게 됐다. “자전거보다 쉽다”며 바다로 안내한 그의 꼬드김에 넘어가 쇠소깍해변 끝자락의 하효항에서 난생처음 바다 카약에 도전하게 된 것.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말은 맞았다. 너울이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를 택한 데다 그가 직접 제작한, 초보자를 위한 밑이 넓은 카약이라 생각보다 훨씬 안정감 있게 즐길 수 있다. 얼마간 패들링을 익히고  바다로 나아갔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수천, 수만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거대한 사암 절벽과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기괴한 바위 협곡을 눈앞에서 스쳐 지나면서 카야킹의 절묘함에 감탄한다. 

허재성 씨의 ‘올레카약’에서는 다양한 루트의 카야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두 번 기본적인 카야킹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명품 코스’는 법환포구에서 범섬까지 다녀온다. 낚시꾼이나 스쿠버다이버들의 전유 공간이던 범섬을 찾아 50여m 깊이의 바다 동굴을 탐험할 수 있다. 또 보목 구두미포구에서 출발해 숲섬을 다녀오거나 서귀포항에서 문섬을 다녀오는 등의 코스도 마련돼 있고 바다를 낀 올레길 6·7코스 구간을 바닷길로 탐험하는 루트도 만들어놓았다.

Tip.
법환포구에 위치한 올레카약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카약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시간 기준 2만5000원. 카약 대여 1일 4만원(운송비 별도). 가벼운 체험은 한림읍 귀덕리의 제주카약올레, 구좌읍 하도리의 제주카약에서도 할 수 있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아부오름
제주에는 360여 개의 오름이 있다. 원래 몇 개가 더 있었지만 참으로 무지하던 시절, 그것들을 싹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었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해발 200~700m 사이의 중산간 지대에 대부분의 오름이 모여 있다. 서쪽보다는 동쪽 구좌읍과 표선면, 남원읍에 걸쳐 상당수 오름이 펼쳐진다. 희한한 사실은 그 많은 오름 중 생김새가 비슷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오름엔 저마다의 뜻과 사연을 지닌 예쁜 이름이 있다. 구좌읍 송당리의 아부오름은 ‘앞오름’이라는 이름도 가졌다.

높이 300여m의 높지 않은 오름인데 눈 딱 감고 무시무시한 경사면을 오르면 5분 후엔 분화구 가장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 그곳에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참으로 멋지다. 온전한 분화구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안쪽이 움푹 팼는데 그 주위를 따라 삼나무 숲이 에둘러 섰다. 영화 <이재수의 난>을 촬영하며 심은 나무들이 온전히 오름의 풍경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아부오름은 유난히 낭만적인 풍경 덕분에 장동건, 고소영 주연의 영화 <연풍연가>를 비롯해 드라마나 광고 촬영지로 얼굴을 내밀곤 한다. 분화구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산책하는 데 20여 분 정도가 걸린다. 아부오름의 동쪽에 들어앉은 동거문오름과 백약이오름, 멀리 다랑쉬오름까지 눈에 넣고 나면 마음도 한 뼘 넓어지는 기분이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누구에게나 나만의 바다가 있다 황우지해안
언제 그렇게 입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황우지해안의 여름은 어느 해보다 여행객으로 북적였다. 여행자라면 일단 황우지해안을 찾아내는 게 일이다. 제주를 여행하는 초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른다는 외돌개 바로 옆에 있음에도 지형에 가려 보이지 않고, 번듯한 표지판 하나 없는 터라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는 일이 만만치 않다. 외돌개 주차장 건너편 ‘솔바다찻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황우지해안 무장간첩 섬멸 전적비’가 있고 이 전적비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가면 해안에 닿을 수 있다.  

일단 황우지해안에 도착하면 짧은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된다. 볼록 솟아오른 3 개의 바위와 높이 7~8m쯤 돼 보이는 절벽이 해안을 감싸 완벽한 ‘풀’을 만들어놓았다. 물이 워낙 맑은 데다 햇빛이 깊숙이 들어와 바다는 늘 투명하다. 실제로는 꽤 깊은 수심임에도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스노클링의 명소로 바뀌는 한여름뿐만 아니라 어느 계절이든 이 해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빛깔과 질감을 느끼며 눈을 들어 멀리 문섬의 자태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난다. 눈과 마음을 쉬도록 내버려두기에 참 좋은 바다가 그곳에 숨어 있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마음을 두고 오는 의외의 숲 안덕계곡 산책로
얼마 전 종방한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지리산 수호신의 달빛정원으로 등장한 곳으로, 원시 자연과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의 관심을 모았다. 화순에서 중문 방향 일주도로 위에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대평리’ 표지판을 따라 진입하면 된다. 상쾌한 나무 내음 너머로 들려오는 계곡 물소리를 따라가면 어느덧 숲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안덕계곡과 계곡을 둘러싼 숲은 전체가 천연기념물(제377호)로 지정돼 있다. 육지에서야 계곡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제주도에는 지형적 특성으로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유수천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안덕계곡은 제주가 품은 귀한 유수천 중 하나이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물이 흐르니 자연스레 숲이 발달했고 특히 계곡 양쪽 기슭의 상록수림대 안쪽으로 희귀한 식물이 많이 분포한다. 바닷가의 바위틈과 숲에서 자라는 다양한 종류의 고사리가 넓은 군락을 이루는데 그 위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빛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계곡이 굉장히 깊고 넓은 데다가 깎아지른 듯 날 선 절벽과 독특한 형상의 바위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다. 축축한 흙과 이끼, 여기에 오래된 나무들이 내뿜는 청정한 향까지 더해져 마음이 자꾸 설렌다. 오래전 계곡물을 이용해 벼농사를 지었다는 흥미로운 기록도 남아 있다. 이른 봄 계곡은 수풀에 초록빛이 스며들어 풀 냄새 그윽하고, 5월이면 진하고 향기로운 감귤 꽃향기에 휩싸인다.

여름밤 계곡의 숲은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으로 온통 반짝이며 가을에는 바스락 소리 내며 쌓인 낙엽 위를 걷는 낭만 가도로 변신한다. 안덕계곡 산책로는 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해 작은 절 남덕사와 몇몇 농가를 지나 양재교까지 1km 정도 이어진다. 중간중간 계곡을 만나는 일을 반복하는데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345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언제나 평온한 그 바다는 곽지해변
섬이다 보니 해변이 지천에 널렸건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예쁜 해변이 많은 곳이 제주다. 동쪽으로는 물빛 고운 함덕해변과 김녕 바다, 월정리해변 그리고 우도의 눈 시리도록 희고 깨끗한 홍조단괴해빈(산호사해변)이 있고 서쪽으로는 유명한 협재와 금릉해변이 대표적이다. 협재 인근에 들어앉은 곽지 바다는 협재의 유명세에 밀려 찾는 이는 적지만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정식 명칭은 곽지과물해변. 풍부한 용천수 덕분에 일찍부터 풍요로운 마을을 이루어 인심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게다가 상점이 몰려 있는 상가촌과 메인 해변이 거리가 있어 여름 바캉스 시즌에도 여유로운 분위기다. 사실 더 좋은 것은 곽지의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바다다. 한겨울이나 궂은 날이 아니라면 파도가 거의 없어 정적인 느낌이 들 정도다. 그 바다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잔잔해진다. 햇살 퍼짐에, 구름의 움직임에, 그리고 바람의 흩어짐에 따라 채도와 담도를 달리하는 바다는 시시각각 사람의 마음을 홀린다. 희고 고운 모래밭을 걷다가 옅은 파도 위를 참방이다 문득 고개를 들면 서쪽 바다 저 끝에서부터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곽지해변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낮은 파도에 멀미가 일 듯 일렁이다 삽시간에 사라지는 태양 뒤로 곧 밤이 찾아온다. 곽지의 밤은 한낮의 바다빛과 닮은 파란색이다.
주소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1565-12

Tip.
곽지해변을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카페 ‘태희’ 때문이다. 클럽메드 셰프 출신으로 전 세계 빌리지를 누빈 김태희 씨가 만들어주는 두툼하고 맛있는 버거와 뜨거운 면 요리로 허기를 달래며 시원한 산미구엘 생맥주를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참, 누누이 밝히지만 김태희 씨는 ‘남자’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집을 빌려드립니다 하우스 렌트
최근 몇 년 동안 제주는 여행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시작은 올레길이었는데 ‘힐링’과 ‘도보 여행’이라는 세계적 트렌드에, 저가 항공사의 비약적 성장이 뒷받침하여 매년 수많은 여행자가 제주를 찾고 있다. 혼자 또는 단출한 일행으로 구성된 올레길 여행자를 위해 생겨난 숙소가 게스트하우스라면, 더욱 다양해진 여행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최근 새롭게 떠오른 숙소가 바로 ‘하우스 렌트’이다.

하우스 렌트는 말 그대로 집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아담한 크기의 마당 딸린 농가 주택을 개조해 편의성을 높이고 예쁘게 꾸며서 집을 통째로 하룻밤 여행자에게 빌려준다. ‘제주 사람처럼 살아보기’를 원하는 요즘 여행자들의 요구에 잘 맞는다. 어느 소소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시골 마을에서 마치 현지 사람인 척 머무르는 것 말이다. 안덕면 사계리의 ‘레이지박스’도 그중 하나. 2개의 침실과 서재, 드레스룸을 갖춘 안채와 초록 잔디 깔린 마당, 작은 파티를 열어도 될 만큼 잘 갖춰진 키친 건물까지 모두를 하룻밤 단 한 가족에게 빌려준다. 낮에는 따사로운 햇빛 아래 마당 의자에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뒷짐 지고 사계마을 골목길을 걸어보고 저녁이 되면 근처 시장에서 장을 봐다 맛난 음식을 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숙박시설이라기보다는 ‘우리 집’에 가까운 편안함에 주인장의 감각적인 인테리어 솜씨까지 곁들여져 제주에서의 하룻밤이 더욱 특별해진다.

Tip.
하우스 렌트를 선택할 때에는 주의할 것이 있다. 일단 호텔처럼 소소한 문제가 생겼을 때 바람처럼 나타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 대부분의 하우스 렌트 주인장들은 열쇠를 건네주고 사라지거나 전화로 비밀번호를 알려줄 뿐. 대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더불어 이웃 주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초록의 바람이 나를 부르면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한 젊은 작가들이 모여든 표선면 가시리는 제주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따라비오름을 비롯해 큰사슴이오름, 붉은오름 등 크고 작은 13개의 멋진 오름이 펼쳐진 마을이다. 오름과 초원이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목축 문화가 발달했다.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한 제주의 10개 목마장 가운데 으뜸인 ‘갑마장(甲馬場)’이 바로 이곳 가시리다. 잠시 잊고 있던 그곳에 조랑말체험공원이 들어섰다. 

조랑말체험공원에서는 바람을 따라 초원을 걷고 오름을 산책하고 조랑말을 타고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리립(里立) 박물관으로 가시리 마을 주민들이 기증한 말 관련 유물과 그에 얽힌 예술 작품 100여 점이 소장돼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정작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너른 초록의 목초지를 따라 펼쳐지는 부드러운 곡선의 오름들과 아름다운 잣성(목초지를 구분하는 돌담), 여유롭게 풀을 뜯고 선 말들과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그리고 더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타나는 푸른 바다까지. 바람 속에 말테우리(목동)들의 ‘훠이 훠이’ 소리가 묻어 있는 것 같다. 

박물관 내 카페 ‘마음(馬音)’에서는 가시리에 정착한 예술가들의 소소한 작품과 함께 가장 제주스러운 메뉴를 만날 수 있다. 캠핑장과 게스트하우스, 승마장도 있다. 대부분의 캠핑 장비를 대여할 수 있어 별다른 준비 없이 가도 괜찮다. 승마 체험도 놓치기 아깝다. 제주 전역에 승마 체험장이 있지만 이곳 승마장은 여느 곳과 코스 자체가 다르다. 자연 그대로의 초지를 달리는데 기본 1km 코스에서 시작해 13km 정도의 외승 코스까지 갖췄다. 볕이 좋은 날이면 굳이 말을 타지 않더라도 갑마장길을 따라 걸어도 좋다. 
박물관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500원
주소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3149-33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제주 스타일의 애프터눈 티, 오설록 티스톤 티 클래스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안덕면 서광리의 오설록티뮤지엄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장소를 고르라면 티 클래스가 열리는 ‘티스톤’이다. 온통 검은색인 묵직하고 강건한 인상의 티스톤 안으로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세상의 소음과 차단된다.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 선생이 수천 자루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서야 추사체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건물에 담았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건물의 이름도 ‘티(tea)’와 벼루의 ‘스톤(stone)’을 조합해 지었다. 

티 클래스는 차를 맛있게 우리는 방법, 차의 활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덖음차와 찐 차, 블렌딩 차를 앞에 두고 전문가의 설명에 따라 차례로 차를 우리고 마시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향의 차와 마음을 위로해주는 음악, 그리고 유리창 너머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소소한 수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건물 지하에 위치한 발효차 숙성고를 둘러볼 수 있다. 제주의 삼나무 통에서 숙성시킨 발효차를 만드는 곳으로 차의 종주국인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스타일의 차 셀러이다. 그윽한 삼나무와 차 익어가는 향이 어우러져 매우 독특한 냄새와 분위기를 풍긴다. 숙성고에서도 차 시음이 이어진다.

Tip.
오설록 티스톤의 티 클래스는 사전 예약으로 이루어진다. 티스톤에서 나와 언덕 위로 오르면 요즘 제주의 핫 스폿 중 하나인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와 만나게 된다.  
체험비 1만5000원(50분 소요)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제주에선 제주맥주 제스피
최근 맥주 마니아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 일이 있었는데 바로 제주맥주 제스피(jespi)의 론칭이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제주에서 100% 제주 보리만으로 만든 진하고 맛있는 맥주가 탄생한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없다.

제스피는 남원읍 한남리의 소규모 브루어리에서 만든다. 보통 2개월 남짓 걸리는 공정을 거쳐 생산되는 맥주는 모두 4가지. 홉의 풍부한 향과 쌉싸래한 쓴맛이 매력적인 ‘필스너’, 감귤 향이 감돌면서 끝 맛이 깔끔한 ’페일 에일‘, 알코올 함량이 높고 보디감이 풍부한 ‘스트롱 에일’, 초콜릿과 캐러멜 맛이 어우러진 흑맥주 ‘스타우트’가 그것이다. 제주 보리에 독일과 불가리아에서 들여오는 홉(hop)을 아낌없이 넣어 진하고 강한 맛과 향을 지닌 유럽 스타일의 맥주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브루어리 규모가 작다 보니 하루에 만들어지는 양이 150ℓ 정도라는 것. 따라서 제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현재 제주시 연동의 제스피 펍 한 군데뿐이다. 오후 6시에 문을 여는 제스피 펍은 오랜 세월 밍밍한 ‘한국 맥주’에 실망한 사람들로 늘 만원이다. 제스피는 ‘제주의 정신(spirit)’을 뜻한다.
영업시간 18:00~1:00(일요일 휴무)
주소 제주도 제주시 연동 273-34

Tip.
스페인 출신의 브루마스터(brewmaster : 맥주 양조 기술자) 보리스 데 메조네스 씨의 마이크로브루어리 펍인 ‘보리스 브루어리’도 강추다. 
주소 제주도 제주시 이도2동 382-14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2013년 11월 사진 / 김형호 작가

비밀의 숲으로 초대 동백동산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곶자왈 숲 동백동산을 품은 선흘리는 지난 5월 세계에서 최초로 ‘람사르 시범 마을’로 지정됐다. 동백동산 곶자왈은 초지, 천연 동굴, 자연 습지가 있어 제주도 산간 지역의 생태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평가된다. ‘제주의 아마존’이라는 별명도 가졌다. 사실 이 숲은 제주 4·3 사건의 아픈 기억을 품은 곳이다. 동백동산이라는 이름은 4·3 사건 때 이 일대가 온통 불에 타고 다시 피어난 첫 꽃이 동백꽃이었기 때문에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금의 동백동산에는 20여 년 된 동백나무 10만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2013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의 촬영 배경이기도 하다. 2km 남짓 곶자왈을 산책하며 연못 ‘먼물깍’까지 다녀오는 길은 묘한 여운이 남는다. 전문 해설사가 상주해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안쪽 숲은 꽤 깊어 혼자 걷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가는 게 좋다.
주소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12

Tip.
동백동산은 선흘리복지관에서 선흘동2길 방향으로 좌회전해 500m쯤 가면 된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탐방로를 따라가면 습지 입구에 탐방 안내소가 나온다. 동백동산과 함께 선흘리의 명소인 ‘카페 세바’에 들러보면 좋겠다. 재즈 피아니스트 김세운 씨가 운영하는 예쁜 돌집 카페로 이름난 재즈 음악가들이 종종 이곳을 찾아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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