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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해외여행] 설국열차? 남국열차! 나의 규슈 신칸센 종단기
[해외여행] 설국열차? 남국열차! 나의 규슈 신칸센 종단기
  • 구완회 작가
  • 승인 2013.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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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여행스케치=일본] 개봉 한 달 만에 관객이 1000만 가까이 들었다는 영화 <설국열차> 대신 ‘남국열차’에 올랐다. 이 열차는 일본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한 규슈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신칸센이다. 섬 끝의 가고시마에서 북단 기타큐슈까지 불과 1시간 40분. 최고 시속 240km를 자랑하는 신칸센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대한민국 출판계에 때 아닌 규슈(九州) 열풍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규슈 편. 시리즈의 첫 편이 나왔을 때 전국의 유적지에 책을 든 사람들이 북적인 것처럼, 일본 규슈에도 답사기를 손에 든 한국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단다. 때마침 지난달 내가 다녀온 여행지도 규슈였다. 유홍준 교수처럼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대신 규슈의 남에서 북까지 열차로 가로질렀다. 규슈의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를 출발해 불의 도시 구마모토(熊本)를 거쳐 규슈의 중심지 후쿠오카(福岡), 최북단 기타큐슈(北九州)까지 하루에 한 도시씩 점을 찍었다. 규슈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신칸센이 있기에 가능한 일정이었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지금도 하루 두세 번 분화하는 사쿠라지마 화산.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사쿠라지마의 화산재는 지금도 날리는데

‘나의 규슈 신칸센 종단기’의 첫 출발지는 규슈 최남단의 가고시마 현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남짓 날아가니 가고시마 국제공항이다. 가고시마 현은 바로 얼마 전에도 5km 상공까지 화산이 폭발한 활화산 섬 사쿠라지마(櫻島)로 유명하다. 유홍준 교수의 규슈 답사기에도 등장하는 관광 명소다. 원래 섬이었던 사쿠라지마는 1914년 화산 폭발로 규슈와 연결되었지만, 지금도 여행자들은 배로 그곳을 찾는다. 저 멀리 흰 구름을 머리에 인 작은 후지 산 같은 것이 보이는데, 위쪽 어딘가에서 공장 굴뚝처럼 검은 연기를 뿜고 있다. 하루에 두세 번 양치질하듯이 검은 연기를 뿜는단다. 1년이면 이런 분화가 줄잡아 800여 건. 이런, 위험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세계 제일의 화산 폭발 예측 시스템을 갖춘 일본 정부의 24시간 감시 속에 5000여 주민들의 생활은 사뭇 평화로워 보였다. 활화산의 연기 폭발을 가까이 보면서 유황 냄새를 느끼는 것은 꽤나 색다른 경험이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사쿠라지마 해변의 셀프 온천 체험.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아슬아슬한 활화산 덕분에 이곳에는 특별한 온천이 있다. 이름 하여 ‘해변의 비밀 온천’. 사쿠라지마의 검은 모래사장을 파내면 뜨거운 온천수가 흘러나온다. 잠시의 삽질 뒤에 편안한 해변 족욕이라. 이 또한 활화산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이색 경험이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히는 구마모토성.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불의 도시 구마모토에서 만난 임진왜란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신칸센에 올랐다. 확실히 KTX보다 넓고 흔들림이 적어 편안하다.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에키벤(驛弁 열차 도시락)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이에 비례해서 운임은 KTX와 비교할 수 없이 비싸다. 가고시마를 출발한 지 40여 분 만에 ‘불의 도시’ 구마모토에 도착했다. 이곳이 불의 도시라 불리는 것은 세계 최대의 분화구를 가진 아소 산(阿蘇山) 때문이다. 지금도 흰 연기를 뿜고 있는 아소 산은 어제 사쿠라지마의 활화산을 본 관계로 생략. 오늘의 메인은 400여 년 전에 지어졌다는 구마모토성(熊本城)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성, 오다 노부나가의 나고야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名城) 중 하나인 구마모토성은 1607년 가토 기요마사가 세웠단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구마모토성의 화려한 실내.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가만, 가토 기요마사라면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임진왜란의 선봉에 선 자가 아닌가? 정유재란에 패배하고 도요토미 사후 벌어진 내전에서 가토는 도쿠가와 편에 서서 싸워 라이벌 고니시의 영지를 전리품으로 챙겼다. 그리하여 한층 넓어진 자신의 영지에 난공불락의 요새를 세웠으니 바로 구마모토성이다. 5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해자, 곳곳에 숨겨놓은 무기와 지그재그로 들어가야 하는 진입로까지, 이 모두가 난공불락이란 수식어에 딱 어울린다. 가토는 임진왜란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 안에 120여 개의 우물을 파고, 다다미 바닥을 먹을 수 있는 고구마 줄기로 만들었단다.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구마모토성의 넓은 해자 또한 난공불락에 한몫을 한다.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하지만 제아무리 난공불락의 성도 내부의 적은 막지 못했다. 내부의 분쟁으로 가토 가문의 지배는 2대 만에 막을 내리고, 구마모토는 호소카와 가문의 영지가 된다. 11대를 이어가며 구마모토를 지배한 호소카와 가문은 ‘혼마루고젠(本丸御膳)’이라는 전통 상차림을 남겼다. 덕분에 구마모토성을 찾는 오늘날의 여행자는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호소카와 가문의 문양을 닮은 겨자연근을 비롯해 다양한 요리로 빼곡하다. 무가의 전통 조리법을 재현했다는 상차림은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한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가고시마의 명물 먹자골목, 후루사토 야타이무라.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하록 선장과 함께 기념 촬영을
구마모토 다음으로 찾은 기타큐슈에서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수십 년 전 일요일마다 ‘교회냐, 만화영화냐’로 고민하게 만든 철이와 메텔, 하록 선장. 물론 그때는 이들이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알지 못했다. 이들을 다시 만난 곳은 기타큐슈의 만화 뮤지엄. 6층짜리 건물이 온통 만화와 애니메이션 관련 콘텐츠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무려 5만 권의 만화책이 빼곡한 공간에서 비스듬히 누워 만화 삼매경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기타큐슈의 근대문화유적지에서 만난 인력거.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하카타 기온 야마가사 마쓰리 디오라마.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사실 기타큐슈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만화 뮤지엄이 아니다. 구마모토가 불의 도시라면 기타큐슈는 제조업의 도시다. 한국전쟁 이후 맞이한 고도 성장기에 기타큐슈는 야하타 제철소를 중심으로 ‘기타큐슈 공업지대’를 형성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공업지대가 되었다. 기타큐슈에 만화 뮤지엄이 들어선 것도 이곳에 제철소와 항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품이 활발히 오가는 항구를 통해 서양의 만화가 들어왔다. 이 만화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일본 만화를 이끄는 대표 작가가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이 마쓰모토 레이지였다. 

과거의 영화는 스모그 같은 환경오염을 남긴 채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기타큐슈 공업지대의 야경은 인기 있는 관광 코스로 꼽힌다. 하지만 도카이만 크루즈를 타고 실제로 본 공장 야경은 팸플릿의 사진보다 어두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야간 조명을 줄인 탓이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일본은 늘 우리의 가까운 미래였다. 삼성이 소니를 추월하고, 임해공업단지의 불빛이 기타큐슈 공업지대보다 밝아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이제는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구마모토 영주의 밥상, 혼마루고젠.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다음 날 아침, 어제 본 <은하철도999>의 실물을 만났다. 100여 년 전의 철도 회사  건물에서 100여 년 된 기차를 전시하고 있는 규슈 철도기념관이다. 이곳에는 <은하철도999>를 꼭 닮은 증기기관차부터 세계 최초의 3단 침대열차, 민박을 겸했다는 일본의 초기 열차 등을 전시하고 있다. 신칸센의 쾌적함이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규슈 철도기념관의 증기기관차.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후쿠오카의 은하철도
규슈 신칸센 종단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후쿠오카다. 기타큐슈보다 조금 남쪽에 있지만 여기서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일정으로 잡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규슈 최대의 도시 후쿠오카는 일본 면 요리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1242년에 건립되었다는 조텐지(承天寺)에는 중국에서 처음 면 요리를 들여왔다는 쇼이치 국사(聖一國師)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불교 공부를 위해 송나라로 떠난 쇼이치 국사는 불경뿐 아니라 제분 기술과 만주, 양갱을 만드는 기술까지 가지고 돌아왔단다.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기타큐슈 공장지대의 야경. 2013년 10월 사진 / 구완회 작가

그리하여 오늘날 일본 음식을 대표하는 우동과 소바가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후쿠오카라는 것이다. 당시 한반도의 고려는 이미 중국의 면 문화를 받아들여 국수를 먹고 있었다. 오늘의 상황으로 본다면, 국수 또한 우리가 먼저 시작했지만 일본에서 훨씬 더 풍성해졌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저녁에는 우리가 묵은 니시테이 료칸(西亭)에서 일본 3대 우동 중 하나라는 이나니와 우동(稻庭うどん)을 제공하여 맛보았다. 이나니와 우동은 원래 규슈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아키타 현의 명물이지만 ‘면 문화의 발상지’에서 먹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사쿠라지마 화산 연기에서 시작한 규슈 종단 여행이 후쿠오카의 우동으로 끝을 맺었다. 그사이 구마모토성과 기타큐슈의 만화 뮤지엄, 공업지대까지 둘러보았으니 규슈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보고 먹고 느낀 셈이다. 이번에 핵심이 되는 도시를 돌아보았으니 다음엔 각각의 여행지를 여유롭게 깊숙이 살펴봐도 좋을 듯하다.  

유노히라 전망대(湯之平展望所)
운영 시간  9:00~17:00
주소  鹿兒島市櫻島小池町1025
문의 099-298-5111(관광교류센터)
아리무라 해안(有村海岸)-천연 온천 파기 체험
주소  鹿兒島市有村町(※번지수 없음)

구마모토성(熊本城)
입장료 고등학생 이상 500엔, 초·중학생 200엔 
구마모토성·구 호소카와 교부 저택(舊細川刑部邸) 공통권 고등학생 이상 640엔, 초·중학생 240엔
운영 시간 8:30~17:30(3~11월), 8:30~16:30(12~2월)

주소 熊本市中央區本丸1-1

혼마루고젠(本丸御膳)
구마모토성 내 혼마루고젠 오오미다이도코로
(大御台所) 1·2층에서 제공
가격 3000엔(입장료 별도)
운영 시간 11:30~14:00
주소 熊本市中央區本丸1-1
향토 요리 아오야기(靑柳), 접수는 10:00~17:00까지. 단, 12월 29일~1월 3일은 접수 휴무

기타큐슈 만화 뮤지엄
입장료 어른 400엔, 중고생 200엔, 초등학생 100엔
운영 시간 11:00~19:00(매주 화요일 휴관, 입장은 폐관 30분 전까지만 가능)
주소 北九州市小倉北區淺野二丁目14-5 あるあるCity 5·6階

규슈 철도기념관
운영 시간  9:00~17:00 
주소  北九州市門司區淸瀧2丁目3番29號

INFO.  
신칸센을 이용해 규슈 곳곳을 여행할 때는 JR규슈 레일 패스가 경제적이다. 규슈 지역 신칸센과 특급열차, 보통열차를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여행박사, 코레일 관광개발, 하나투어에서 교환권을 구입해야 한다. 일본 도착 후 역에 있는 JR 창구에서 레일 패스로 교환한다. 

가격 북부 규슈 지역 3일권 7000엔, 5일권 9000엔, 규슈 전 지역 3일권 1만4000엔, 5일권 1만7000엔.(6~11세 어린이는 반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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