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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미식 여행] 영덕 창포마을 청어과메기 오동통한 온몸에 기름이 좔좔 내가 과메기 원조!
[미식 여행] 영덕 창포마을 청어과메기 오동통한 온몸에 기름이 좔좔 내가 과메기 원조!
  • 손수원 기자
  • 승인 2009.0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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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영덕 창포마을 청어 과메기.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여행스케치=영덕] 과메기 하면 구룡포이고, 구룡포 하면 꽁치과메기가 자연스레 떠오르지만, 그 옛날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고 포항뿐만 아니라 영덕에서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반지르르한 윤기에 오동통하게 살까지 오른 과메기의 ‘원조’란 바로 이런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과메기’란 이름의 뜻을 분석해보면 청어로 만드는 ‘관목어(貫目魚)’에서 나온 말이다. 청어가 흔하던 시절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영덕과 포항 일대에선 으레 청어를 처마 밑에 걸어놓고 말려 먹었다.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는 말처럼 청어는 많이 잡히기도 하거니와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아 옛 문헌에서는 가난한 선비가 쉽게 영양 보충을 할 수 있는 생선이라 해서 ‘비유어(肥儒魚)’라고 부르기도 했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청어도 좋고, 바람도 좋고~.” 길가에서 청어를 말리는 주민.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또한 우리 속담 중에 죄인들을 오랏줄에 묶어 줄줄이 감옥으로 끌고 갈 때 쓰는 ‘비웃 두름 엮듯 한다’는 말에서 ‘비웃’ 또한 청어를 일컫는 말이다. 20마리를 줄줄이 엮는 ‘두름’처럼 청어가 무척이나 흔했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영덕에서 멀지 않은 포항 ‘까꾸리계’ 마을의 지명 또한 청어와 관련이 있는데, 파도에 청어가 밀려오면 까꾸리(갈퀴)로 긁어 모았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그만큼 영덕과 포항 일대는 예부터 청어가 많이 났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청어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대타로 들여놓은 것이 꽁치이다. 그렇게 따지면 요즘 과메기라고 불리는 꽁치과메기는 원조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청어가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금까지 그나마 조금 잡히던 것들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었다는데, 요즘 들어 수출하고도 남을 만큼 어획량이 크게 늘어 다시 청어과메기를 만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원조인 곳은 영덕의 창포마을이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잡아온 청어는 바로 손질해서 말린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대게 거리로 이름이 높은 강구항에서 창포마을로 가는 길은 경치 좋은 해안도로이다. 창포마을에 가까워지자 조금씩 생선을 말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쫀득하게 마르고 있는 모양이 과메기가 분명하나, 이제껏 봐오던 꽁치보다 훨씬 크고 기름지다. 과연 저것이 찾고 있던 청어인가 보다.

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밖으로 나오니 비릿한 생선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생선 썩는 퀴퀴한 냄새가 아닌 깨끗한 생선이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꾸둑꾸둑 말라가고 있는 청량한 냄새다. 바다의 짠내와 퍽 잘 어울린다. 

“이기 청어과미기 아인게베. 우리 마을이 옛날부터 청어가 유명해가 배 타고 나가믄 한 그물 까득 잡아왔지. 일제 때는 요게 커다란 지름공장도 있었다 안 카요. 청어 지름으로 등도 키고 신발 밑창도 만들고 했거덩.”

마을에서 수십 년간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천성본 할아버지는 요즘 청어가 잘 잡힌다며 길가와 마당에 청어를 한가득 널어놓았다. 한 해에 80여t만 잡히던 것이 요 근래엔 1000t 단위로 잡힌단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해안도로에 청어가 빨래처럼 널려 있는 창포마을.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꽁치하고 청어하고 그매이가 그매이라꼬(그게 그거라고) 하는데, 모르는 소리지. 청어는 지름이 훨씬 많고 훨씬 맛있지. 추불 때 밖에 널어노믄 밤에는 찬바람에 얼가지고 낮에는 햇볕에 녹고하멘서 이기 꼬돌꼬돌하게 마르거든. 지금 이기 한 3일 말라논 건데, 지름끼가 맨질맨질한기 입에 들가믄 쫀딕쫀딕하이 기가 멕히지.”

천 할아버지는 눈으로 봐서 뭐 알겠냐며 즉석에서 청어 한 마리를 꺼내어 다듬어 주신다. 길게 자른 청어과메기는 마치 육포처럼 생겼는데, 꽁치보다는 기름이 훨씬 많아 손에 노란 기름이 잔뜩 묻어난다. 

초고추장을 찍어 입에 쏙 놓는다. 잔뜩 비린내가 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바다 향기가 난다. 쫀득한 느낌이 눈으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꾸덕꾸덕 마른 청어 살이 입 안에서 감친다. 잘 말린 꽁치과메기와 맛은 비슷하지만 두툼한 살이 입 안 가득하게 씹힌다. 꽁치보다 큰 생선이기에 가시가 조금 섞이기도 했지만 손질을 하고 먹으면 뼈 씹는 재미마저 더한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꼬리까지 묶어서 널어놓는 배지기 과메기.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꼬시지요? 씨븐(쓴)맛도 안 나고 달짝지근하지요?”
과연 원조가 다르긴 다른가보다. 이렇게 기름기가 많은데도 비린내가 나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배 타는 사람들한테는 이기 최고 안주였지. 흔하기도 흔하고 술도 안 채고, 속도 편하고. 옛날엔 집 처마 밑에 널어놨는데, 굴뚝 연기가 더해져서 꼬신 내가 나. 우리 집 자슥들도 어릴 땐 청어과미기 한 마리씩 물고 댕기면서 컸는걸.”

이렇게 과거엔 흔하디흔한 먹을거리였던 청어과메기는 요즘 들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청어가 많이 난다고는 하지만 꽁치과메기처럼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물량 부족이다. 창포마을에서 잡아들이는 청어는 동해에서 어부들이 잡아들이는 100% 국내산이다. 꽁치는 대부분 원양에서 잡았기 때문에 양이 많지만, 청어는 동해에서도 영덕 부근에서만 잡히기에 대량생산할 정도로 양이 많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청어과메기는 전통방식 그대로 두름에 꿰어 바닷가에 널어놓는다. 꽁치는 길어봤자 일주일만 말리면 과메기가 되지만 청어는 꼬박 보름 정도를 말려야 한다. 자연히 꽁치를 말리는 것이 어민들의 입장에선 훨씬 이익이다. 

소비자들도 아직까진 꽁치과메기를 더 많이 찾는다. 가끔 외지에서 온 손님들은 청어과메기를 꽁치과메기의 ‘짝퉁’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청어과메기를 아는 이들도 맛을 보고는 사기를 포기하는 때도 있다. 이제껏 꽁치과메기에 입맛이 길들여진 탓이다. 그렇지만 창포마을에선 묵묵히 청어를 말린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마을 앞 바닷가에서 갈매기의 비행이 장관이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자부심이지 뭐. 옛날부터 여가 젤로 유명도 했고, 지금도 젤로 많이 청어가 잡히고 바람도 여기만한 데가 없어. 바로 뒤에 풍력발전소 세운 이유가 다 있다니까. 그라고 여기 사는 노인네들은 다 청어 말리는 데는 전문가라 암만 케도 맛이 틀리지. 원래 과메기는 통으로 말려서 묵는데, 요즘은 그리 잘 안 묵지. 전부 다 ‘배지기’로 말루지. 배지기는 반으로 갈라서 내장을 다 발라낸 거라서 요짐 사람들은 다 이걸 묵지. 근데 꽁치고 청어고 과미기는 통으로 묵는기 정석이지.”

청어를 통으로 배가 위로 가게 매달아 말리면 배의 기름기가 몸 전체에 골고루 흡수되면서 쫀득쫀득하게 마른다. 배지기를 하면 높은 온도에서도 상하지 않지만 통마리는 내장이 있기 때문에 한겨울이 지나야 맛을 볼 수 있다. 

말리는 기간이 한 달을 넘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과메기에 입문을 끝내고 과메기에 익숙해졌다면 이 통마리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창포마을 사람들이 청어과메기를 만들어 먹은 건 살도 살이지만 알 때문이다. 양력 설쯤부터 산란을 하는 청어로 통마리 과메기를 만들면 꽉 찬 노란 알이 진미 중의 진미라고 한다. 이 알은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지만 창포마을에선 신선한 알을 살 수도 있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마을 바로 뒤에 있는 풍력발전소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 명소이다. 2009년 1월. 사진 / 손수원 기자

또 다른 곳에선 손질한 청어를 두름에 엮느라 아낙들의 손길이 바쁘다. 창포마을은 청어 덕분에 소득도 올라가고 있다. 어민들 소득은 당연히 올라가는 것이고, 아낙들은 그물을 손질하며 일거리가 늘었다. 대게를 먹으러 왔다가 청어과메기가 있다는 소식에 일부러 창포마을로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었다. 전화나 인터넷을 활용한 주문판매도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만선의 기쁨 뒤엔 어두운 그늘도 있다. 그 많은 청어의 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청어가 잠시 사라진 사이 우리의 식탁에서 밀려나버린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래서 잡아온 청어의 대부분은 사료로 쓰이고 이렇게 과메기를 만들어 팔더라도 20마리에 1만원을 받는다. 배 한 번 띄우고 본전을 찾으면 다행이다. 같은 바다에서 나는 대게가 한 마리에 몇 만원씩 하는 것에 비하면 초라한 몸값이다.

그래서 창포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청어과메기 특구지역으로 지정되길 바라고 있다. 아랫동네 구룡포 과메기 특구처럼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전통방식 그대로 청어과메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청어를 우리의 전통 먹을거리로 정착시키고 싶은 것 또한 창포마을의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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