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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이루리의 성곽여행] 정조의 꿈 품은 시민의 안식처, 경기 수원화성
[이루리의 성곽여행] 정조의 꿈 품은 시민의 안식처, 경기 수원화성
  • 이루리 여행작가
  • 승인 2020.06.11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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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수원화성
용연에서 데이캠핑, 통닭거리에서 치맥 즐기기
임금의 새로운 고향, 화성행궁 산책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원화성은 조선 후기 성왕 정조가 축조한 성곽이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여행스케치=수원] 수원에서 화성을 그대로 들어내 버린다면 도시에는 삭막함만 남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수원에서 화성이 가지는 풍경적 효과나 정서적 의미는 남다르다. 그것은 아마 도심과는 다소 떨어진 산자락 위에 둘러쳐진 다른 성곽들에 비해 도심 한가운데, 매일같이 사람 발길이 채는 곳에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이웃집 담벼락처럼 말이다.

수원화성은 높지 않다. 아침저녁으로 시민의 발길이 머무는 곳에, 출퇴근하며 눈길이 미치는 곳에 화성이 있다. 서울로 치면 한양성곽과 비슷한 모양새지만 한양성곽이 서울의 주산인 인왕산, 북악산, 남산 등을 연결해 산등성이에 지어진 것과 달리 수원화성은 평지에 턱을 올려 성곽을 짓고 그 곁에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구조라는 점이 다르다. 그 때문에 수원화성은 시내에 있다가도 금방 성곽으로의 접근이 가능하고 성곽을 걷다가도 바로 시내와 만나게 된다.

성왕 정조가 사랑한 그곳
수원화성은 어쩔 수 없이 조선 후기 성왕 정조와 그의 충신 정약용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1794~1796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으로 옮기기 위해 화성성곽을 축조하고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했다.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여러 곳이 파손되고 훼손됐다가 1975년부터 복원과 보수 작업을 거쳐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내고 있다.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은 수원화성 역시 남한산성처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원화성에는 총 5.7km의 성곽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서포루에서 화서문 방향으로 가는 길.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원화성을 복원하는 데는 당시 축조상황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큰 역할을 했다. 정조의 명으로 봉조하ㆍ김종수가 편찬한 <화성성역의궤>는 수원화성의 건축보고서라고 볼 수 있는데, 축조에 관한 경위와 제도ㆍ의식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의궤는 조선 후기 축성공사의 실태와 무기 발달에 대응한 축성법을 잘 기록하고 있는 데다 수원화성 축조에 든 물동량과 축조 전반에 대한 경영사항을 알 수 있어서 당시의 사회경제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화성이 본래의 모습으로 제대로 복원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기록은 세대를 잇고 소통하게 한다. 지금의 SNS처럼 꼭 실시간으로 쌍방향 소통을 해야만 소통은 아니다. 지난 시절의 기록을 따라 18세기의 성곽을 21세기에 다시 복원하면서, 또 복원된 화성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도 또 다른 방식으로도 선인들과 소통할 수 있다.

INFO 수원화성
주소
경기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20-2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정조의 꿈을 간직한 화성은 이제 시민의 산책로이자 휴식처가 됐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정조대왕 동상에서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닿는 서포루 옆길.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도시의 중심부를 가르는 5.7km 둘레길
수원의 중심부에 둘러쳐진 화성에는 총 5.7km의 성곽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둘레길을 한 바퀴를 돌아보는 데 대략 2~3시간 정도 걸리지만, 걷기만 하지 않고 풍경 속에 녹아 쉬엄쉬엄 걷다 보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를 길이다.

전망 좋아 쉬어가기 좋은 전각도 곳곳에 위치한 데다 언제든 성곽 옆으로 포진한 예쁜 카페에라도 들를라치면 시간은 한정 없이 늘어진다. 성곽길을 걷다가 차를 마실 수도 있고 점심이나 저녁을 먹은 후 산책 삼아 마실 삼아 성곽길을 걷기도 좋다.

장안문에서 멀지 않은 화서문 아래쪽 선경도서관 밑으로는 행궁의 경리단길이라고 해서 일명 ‘행리단길’이 펼쳐진다. 트렌디한 카페와 소소한 맛집, 갤러리와 사진관, 게스트하우스 사이의 촘촘한 골목길은 2030의 데이트 코스가 됐다.

수원화성은 그렇게 성의 위엄을 내세우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토박이 시민에게는 거리의 전봇대처럼 익숙한 풍경일 테고 나들이객에게는 타지의 이질감을 없애주는 안락함을 준다. 바람이 살랑대는 성곽길은 외지인 눈에는 사계절 언제든 ‘거기 있는’ 수원시민의 안식처처럼 보인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신발을 벗고 서북각루 마루에 올라서면 360도로 수원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화성을 배경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펼치는 용연. 방화수류정이라고도 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용연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나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제격이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용연에서 데이캠핑, 통닭거리에서 치맥 즐기기
수원화성에도 한양성곽처럼 4대문이 있다. 동쪽으로 창룡문, 서쪽으로 화서문, 남쪽으로 팔달문, 북쪽으로 장안문이 있다. 이중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장안문과 팔달문을 잇는 대로 옆으로는 수원천이 흐른다. 수원천 북쪽과 남쪽에는 북수문과 남수문 2개의 수문이 있는데 북수문인 화홍문 인근으로 아름다운 용연이 있다.

용연 주위로는 높게 쌓아 올린 성곽과 함께 경치 좋은 누각인 동북각루가 있으며, 이곳의 풍경은 굉장히 이국적이다. 한국적인 성곽에 다소 이국적이 누각과 연못이 어우러져 꽤나 독특한 전경을 뿜어낸다. 장안문에서 화홍문을 거쳐 용연을 지나 연무대로 이어지는 길은 수원화성길의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로 꼽히기도 한다.

주말이면 수원시민이 모두 용연에 모인 것 마냥 사람들로 북적인다. 돗자리를 깔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연인끼리 도시락을 싸 들고 나와 알콩달콩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간단한 캠핑 장비를 활용해 데이캠핑을 즐기며 음식을 시켜 먹는 가족들의 모습도 잦다.

용연에서 노니다가 배가 고파지면 수원천을 따라 1km 정도 걸어 통닭거리로 나오면 된다. 수원의 명물인 수원통닭거리를 섭렵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명대사를 남긴 영화 <극한직업>을 통해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탄 수원통닭거리는 늘 사람으로 넘쳐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원통닭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치맥.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원통닭거리에는 다양한 가게가 성업 중이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원천 인근으로 야외에 테이블을 펼친 곳도 보이고, 수원사람에게 이름난 가게, 외지 사람에게 더 유명한 통닭집 등이 밀집한 골목의 밤은 지치지도 않는다.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대표 메뉴 ‘치맥’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전국에서 치킨집이 가장 많은 지자체가 수원시다. 전국에 치킨집이 8만7000여 개가 있는데 그 중 수원에만 1800여 곳이 몰려 있다고 한다.

INFO 수원통닭거리
주소
경기 수원시 정조로800번길 일대(팔달구 팔달로2가~북수동)

임금의 새로운 고향, 화성행궁
수원화성에 아무리 이야깃거리가 많더라도 화성행궁을 빼놓기는 아쉽다. 화성행궁은 수원화성의 중심에 있다. 왕의 행차 시에는 왕의 처소로 사용되었고, 평소에는 수원부의 관아로 쓰였던 행궁은 연회나 과거시험의 장소로도 활용됐다. 효심이 깊었던 정조가 1795년에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낙남헌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이 소실됐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996년에 복원공사가 시작돼 2003년 10월부터는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비록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화성행궁의 아름다움만은 여전한 듯 <왕의 남자>, <구르미 그린 달빛> 등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장소가 됐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화성행궁 뒤편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수원화성을 축조한 정조대왕 동상도 만난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수원화성의 백미는 야경. 덕분에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기 위한 연인들의 발길도 잦다. 사진 / 이루리 여행작가

정문에는 신풍루가 있는데, 이는 ‘임금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신 수원화성에 대한 정조의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렀던 1975년에 정조는 신풍루 앞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끓여 먹이는 진휼행사를 열었다. 지금도 신풍루 앞으로는 너른 광장이 있어 시민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행궁의 전각 중에는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즐기기 위해 지은 건물인 노래당을 비롯해 수원화성을 사랑한 정조의 초상화(어진)가 모셔져 있는 화령전도 있다.

화성행궁 뒤쪽 산책길에는 커다란 정조대왕 상이 세워져 있는데, 동상 주위를 빙빙 돌며 인라인스케이트와 자전거 등을 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조가 여전히 수원화성을 통해 시민과 함께 살며 서민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다가다 언제든 발길을 둘 수 있고, 또 쉽사리 그 곁을 내주는 친근한 성곽. 수원화성 주말 나들이로 한주의 피로를 푼다.

INFO 화성행궁
입장료
성인 1500원, 청소년ㆍ군인 1000원, 초등학생 700원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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