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걷기 여행] 걷기가 쉼이 되는 섬 여수 하화도 꽃섬길
[걷기 여행] 걷기가 쉼이 되는 섬 여수 하화도 꽃섬길
  • 전설 기자
  • 승인 2013.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여행스케치=여수] 옛날 옛적에, 전쟁을 피해 바다로 나온 한 사내가 외딴섬 들꽃 풍경에 반해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기 시작했다. 오늘날 ‘꽃섬’이라 불리는 전남 여수 하화도(下花島)의 유래다. 아는 사람, 찾는 사람이 적어 여수의 숨겨진 보물이라 불리던 이 꽃섬이 최근 눈에 띄게 분주하다. 어디서 누구에게 귀띔을 받았는지, 찾아오는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구절초, 동백꽃, 진달래…, 철마다 꽃 잔치가 열리는 섬. 오죽하면 ‘화도(花島)’일까. 거금도와 소록도 사이 마주 본 두 섬 중 위쪽을 상화도(上花島), 아래쪽을 하화도(下花島)라 부른다. 우리말로 풀면 윗꽃섬, 아랫꽃섬이라는 뜻인데 그 어감부터 벌써 마음을 당긴다. 오늘의 목적지는 하화도에 조성된 5.7km의 ‘꽃섬길’이다.


꽃섬길은 비렁(벼랑의 여수 사투리)을 따라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섬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다. 배를 대는 선착장에서 출발해 휴게정자1~휴게정자2~순넘밭넘 구절초공원~큰산전망대~깻넘전망대~큰굴삼거리~막산전망대~애림민 야생화공원까지, 넉넉잡아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여수 앞바다의 수많은 섬 중 가장 어여쁜 이름을 가진 섬의 경치는 이름만큼 고울까.

“말로 혀서 뭣혀. 어느 정도 소문이 났냐 하면 아랫꽃섬 경치 본다고, 꽃섬길 걷는다고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람이 끊이질 않어. 꽃이 지천이라는데, 기자 양반이 좋은 카메라로 사진 좀 잘 박아다가 어디 잘 보이는 곳에 좀 올려놓으쇼.”

백야도 선착장에서 뱃길을 따라 하화도로 향하는 길. 고희훈 선장이 섬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 말끝에 관광객 견인에 한몫하고 있는 꽃섬길 자랑도 빠지지 않는다. 뱃사람들의 수다에서 하화도의 유래와 지난해부터 부쩍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봄을 맞아 김충석 여수 시장이 다녀갔고 그전에는 한국철도공사, 한국관광공사에서 철도 여행 상품 개발을 위해 현지답사를 다녀갔단다. 작은 섬에 쏟아지는 관심이 그네들이 느끼기에도 심상치 않은 모양이다. 이 말 저 말을 주고받으며 먼 옛날 뗏목을 타고 섬에 흘러들었다던 나그네의 발자취까지 되짚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 주홍색 지붕이 점점이 찍힌 아담한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따, 벌써 다 와부렀네.” 해가 말갛다. 이번 여정은 시작이 좋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주홍빛 지붕이 올망졸망 아름다운 마을 풍경.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복조리, 혹은 하이힐 섬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여수는 어디든 10분만 달려도 바다를 볼 수 있는 고장이다. 365개의 섬으로 빼곡한 다도해인 만큼 섬으로 가는 뱃길도 여러 갈래 열려 있다. 그중 하화도로 가는 배편은 여수 시내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2회, 여수 남쪽의 백야도 선착장에서 3회 운항된다. 소요 시간은 1시간 내외로 낭도, 사도, 추도 등 주변 섬을 거쳐간다. 

선착장에 내려서니 담벼락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꽃과 섬 그림이 지천이다. 재작년 섬을 찾아왔던 대학생 자원봉사단의 작품이라는데, 유독 더운 날 찾아와 구슬땀깨나 쏟고 갔다며 마을 어르신이 귀띔해준다. 주홍색 지붕에 담장의 벽화가 어울려 제법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을회관 앞에는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느티나무가 넓은 그늘을 만들고 섰다. 섬의 모든 것들이 모난 데 없이 아기자기하다.

벽화를 따라 섬 안쪽으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꽃섬 하화도’라고 적힌 돌 안내판과 꽃섬길 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안내도가 있다. 그 앞에서 섬 모양을 짚어보니, 꼭 하이힐을 엎어놓은 모양 같다. 본래는 복조리 모양이라 했는데,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구두 섬, 하이힐 섬으로 더 많이 불린단다. 안내판을 기점으로 휴게정자 방향과 큰굴 방향 중 원하는 코스를 택해야 한다. 갈림길이지만, 어느 방향을 선택하든 섬을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돼 있어 고민스럽지 않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절벽 한가운데 동그랗게 큰굴이 뚫려 있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멀리 마주 보고 선 상화도를 등지고 마을 뒤편 언덕으로 향한다. 하화도의 최고 비경이라는 큰굴을 하이라이트로 남겨두기 위해, 그 반대 방향부터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언덕 중턱에 하화도 태양광발전소가 눈에 들어온다. 1987년 전국 섬마을 최초로 세워진 태양광발전소다. 태양 아래 반짝이는 태양광 패널이 햇빛을 듬뿍 먹고 눈부시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 돌릴 수 있는 휴게정자.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꽃섬이 아니라 딸기섬이네”
한바탕 봄꽃 잔치가 끝나서일까. 기대와 달리 풍경이 허전하다. 섬 한가득 오색 빛깔 꽃잎으로 가득한 광경을 상상하고 왔으니, 심심할 수밖에. 애써 아쉬움을 달래는데 고개 너머로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흐른다. 천연 옥빛이다. 짙푸른 바다를 에메랄드에 비하기도 하지만, 하화도에서 바라본 바다는 그보다 연하고 뭉근한 빛깔이다. 김 서린 온천수처럼 은은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시야로 빨간 점이 쏙쏙 들어온다. 사방을 둘러보니 가지가 휘어질 만큼 알이 굵은 산딸기가 지천에 열려 있다. 열매가 맞나 긴가민가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맛을 보고 낮은 덤불 사이로 뛰어든다. 금세 알사탕만 한 산딸기가 두 손 가득 담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물론, 시골에서 큰 사람도 처음 보는 야생 산딸기밭이다. 단물을 듬뿍 담아 톡, 입안에서 터지는 새콤한 맛에 연신 웬일이야, 웬일이야, 감탄사가 터진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10분 만에 두 손 가득 야생 산딸기를 땄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꽃섬이 아니라 딸기섬이네, 산딸기섬.” 내딛는 곳마다 알알이 익은 산딸기가 넘쳐나니, 굳이 한곳에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다. 걸음을 늦추고 보니 야생화가 자잘한 꽃봉오리를 피워놓았다. 그제야 조급한 마음에 미처 보지 못했던 찔레꽃, 돈나무, 갈기조팝나무, 돌가시나무의 희고 여린 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광나무는 노란 술에 흰 꽃을 터뜨리고, 후박나무는 연노랑 다섯 잎새와 새붉은 꽃을 피웠다. 식탁 위에 귀해졌다는 고사리도 지천이다.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보물이 되는 산나물이 잔뜩 널려 있다. 눈앞을 막고 있던 콩깍지가 벗겨진 기분이다. 걸음을 멈추고 잎새를 만지고 꽃향기를 맡으며 꽃섬길을 걷는다. 섬의 모든 풍광이 한곳에서 태어난 듯 엷고 부드러운 색감이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꽃섬길 내내 천연의 옥빛 바다가 펼쳐진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하화도 최고의 비경, 해안 절벽 큰굴
벌도 나비도 부산스러운 초여름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송아지와 황소 모자를 만났다. 삶 자체가 평화로워서 그런지 어미 소도 어린 송아지도 낯선 이방인에 대한 공포가 없다. 아무리 크게 불러 세워도 본체만체다. 다시 길을 나선다. 평지 구간이 끝나고 오르막과 계단 구간이 차례로 반복된다. 어느덧 일정의 막바지로 접어드는 시점. 정갈하게 깔린 나무 데크를 따라 큰산전망대, 깻넘전망대를 넘어간다. 큰산전망대는 벼랑길 위쪽에 설치돼 시야가 뻥 뚫려 있다. 장애물 없이 너른 바다 풍경을 한눈에 감상하기에 좋다. 깻넘전망대는 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그대로 전망대로 활용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다. 두 지점을 넘으면 하화도가 품은 최고의 비경, 큰굴이 나타난다.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사이에 파도가 들이쳐 협곡을 만들었다. 그 틈으로 바닷물이 찰랑거리며 부딪힌다. 벼랑의 한쪽 면에는 커다란 굴이 뚫려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다 냅다 정권 지르기를 한 듯 동그랗게 뚫려 있는 큰굴이다. 풍경만으로 발길을 붙잡는 큰굴에는 수많은 옛이야기가 얽혀 있다.

“옛날에 말이제, 여수서 밀수로 떼돈 버는 인간들이 단속 뜨면 저 비렁 밑 큰굴에다 화장품, 시계, 금붙이 다 숨기고 그랬다고 하제. 뭣하면 사람도 숨고 말이여. 단속이 떠도 큰굴에는 섬사람 아니면 외지인은 함부로 못지나가니께.”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장애물 없이 뻥 뚫린 큰산전망대.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밀수꾼들의 피난처였다는 큰굴을 지나 본격적으로 섬 정상부로 오르는 ‘깔딱 지점’이 시작된다. 걷기 편하게 나무 데크로 조성되었지만 숨이 달리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오르막길이 멈추면 비로소 하화도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막산전망대가 나온다. 꽃섬길의 2/3를 지난 것이다. 하화도 최고의  높이 막산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하계도, 추도, 자봉도, 화태도 등 여수 다도해상의 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높은 곳에 올라 내려다본 바다는 여전히 옅고, 하늘과 닿아 있는 수평선이 흐릿해, 바다가 아니라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느낌이다. 바람이 사방에서 휘몰아쳐 더운 땀이 순식간에 식는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바다 건너 상화도가 마주 보고 서 있다. 2013년 7월 사진 / 전설 기자

몽돌해변과 야생화공원
배 시간이 빠듯하다. 완주 시간을 넉넉히 잡았건만 예상을 초과해버렸다. 산딸기에 취해, 경치에 취해, 늦장을 부렸나 보다. 하화도에는 아직 민박, 음식점, 슈퍼 등이 따로 없다. 허기는 마을 주민들이 만드는 야생 부추전이나 소담스러운 해물 백반으로 달랜다지만, 잘 곳이 없으니 1박 2일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하룻밤 자고 갈 거면 말하씨요. 여기꺼정 왔는디 그냥 가면 섭하제. 마을서 운영하는 마을회관이 있는디 하루 묵자 하면 방 내드리께. 가끔 먼 외지에서 손님 와불믄 빈집도 내주고 하니 부담 갖덜 말고. 지금에야 잘 데, 먹을 데 없으니까 손님 받기가 쫌 미안스럽제. 안 그래도 이참에 손님들 와서 배불리 먹고 갈 식당 하나 만들라허요. 방도 손님들 자고 갈 수 있게 깨끗이 치워불고 있으니 아마 여름에 올 땐 식당이고 방이고 다 만들어져 있을 거구만.”


임화용 이장의 제안이 귓전을 맴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왔다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당일 찾아와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싶어  돌아선다. 아쉬움이 가시지 않지만 뭉그적거릴 틈이 없다. 선착장을 향하는 몽돌해변으로 내려선다. 멀리서 봤을 땐 고인 물처럼 잔잔했던 바다인데, 해변에 내려와서 보니 파도 소리가 제법 소란스럽다. 동글동글한 몽돌로 뒤덮인 해변에서 파도 소리가 잘게 부서진다. 물이 빠질 때마다 쪼르륵, 돌 틈으로 간지러운 소리도 난다. 돌을 쥐고 던져보기도 하고, 몽돌에 다닥다닥 붙은 고둥을 잡으며 짧은 바다 피서를 즐긴다.

바다를 뒤로하고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에 작은 야생화 군락지가 펼쳐진다. 애림민 야생화공원이다. 철을 놓쳐 만개한 야생화의 향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싱싱한 보랏빛 붓꽃과 꽃잎의 생생한 빛깔이 아름다운 작약으로 아쉬움을 덜어본다.

하화도는 영화 <꽃섬>에서 슬픔을 잊게 해주는 이상향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직접 와서 섬을 들여다보면, 하화도는 이상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수수하다. 화려한 멋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이 간다. 꽃섬길을 걷다보면 여행의 설렘과 긴장감은 가시고 끝도 없는 안도감이 몰려온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인다. 낯선 이방인조차 딱딱한 어깨를 풀고 마음껏 걷다가 쉬었다 돌아간다. 여수 앞바다에는 걷기조차 쉼이 되는 섬이 있다.  

INFO.
여수여객선터미널

주소 전남 여수시 교동 682 
운항 시간  둔병도(하화도)행 6:00, 14:20 
여수행 8:00, 15:10
운임 성인 9700원
소요 시간  1시간 10분

백야도 선착장
주소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53-1 
운항 시간  낭도(하화도)행 08:00, 11:30, 14:50 
백야도행 9:50, 13:40, 17:00
운임  성인 6000원
소요 시간 40분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