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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김준의 섬 여행 33] ‘고메’의 섬, 손맛에 취하다 통영시 욕지도
[김준의 섬 여행 33] ‘고메’의 섬, 손맛에 취하다 통영시 욕지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3.04.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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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스케치=통영] 여행의 고수들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여행지를 꼽을 때 꼭 빠뜨리지 않는 곳이 있으니 바로 통영 욕지도다. 통영의 쪽빛 바다를 치마처럼 두르고 빼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여기에 사계절 풍성한 어종으로 강태공들을 불러 모으고, 달고 맛난 ‘고메(고구마의 통영 사투리)’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황토밭 너머 옥빛 바다

버릇처럼 새벽에 눈을 떴다. 창문을 열자 섬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날씨가 끄물끄물해 비가 올 것 같은 표정이다.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카메라만 들고 조심스럽게 나왔다. 수원지까지 산책을 했다. 박새 소리가 요란스럽다. 100여 마리가 모였다 흩어지며 아침 인사를 했다. 마을 뒤 산자락의 황토밭은 더욱 붉었다. 작년에 고구마를 심은 밭인지 줄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골목길을 비집고 내려가자 여객선이 닿은 선창으로 이어졌다.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으로 찾아갔다. 아침에 성게알미역국을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통영에는 41개의 유인도가 있다. 욕지도는 그중 가장 큰 섬이며 외해와 접해 있다. 욕지도를 중심으로 연화도, 노대도, 두미도 등 9개의 유인도와 작은쑥섬, 볼기이, 소두방서, 검디이, 개섬, 바깥풀이 등 30여 개의 무인도가 있다. 

욕지도 가는 길은 삼덕항과 통영여객선터미널을 통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 중 삼덕항을 이용하길 권한다. 욕지도와 가까워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데다 배도 크고 쾌적하다. 우도나 연화도 등으로 가려면 통영여객선터미널을 이용해야 한다. 

처음 욕지도를 다녀온 후 그즈음 심심찮게 통영과 거제 일대의 섬을 다녔다. 모두 아름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욕지도가 강렬한 인상으로 계속 뇌리에 남았다. 황토밭과 고구마 때문이었다. 남도에서 숱하게 황토를 보고 만졌지만 욕지도처럼 강하게 뇌리에 남지는 않았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바다였다. 푸른 바다와 붉은 황토가 더욱 강하게 대비되었던 것이다.

첫 방문 때의 일이다. 섬을 둘러보고 아침도 먹지 못하고 첫배를 타기 위해 선창으로 나왔다. 선창은 지금 위치가 아니라 자부마을로 가는 동촌 입구에 있었다. 아침 먹을 곳을 찾지 못하고 배표를 사 들고 나서다가 유리창에 써 붙인 ‘빼떼기죽’이란 글씨를 보았다. 먹는 음식임은 분명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말린 고구마를 갈아 만든 죽이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통영은 ‘충무김밥’, ‘꿀빵’, ‘시래깃국’, ‘다찌집’과 함께 빼떼기죽이 유명했다. 빼떼기죽은 고구마를 원료로 사용한다. 통영에서 고구마로 유명한 곳이 욕지도다. 이곳에서는 고구마를 ‘고메’라 불렀다. 말린 고구마를 씻어서 냄비에 넣고 물을 붓고 끓인다. 이때 팥과 좁쌀을 함께 넣는다. 주걱으로 잘 저으면서 빼떼기라 부르는 ‘말린 고구마’를 넣어 으깬다. 설탕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서 끓인다. 조리 과정도 어렵지 않다. 

죽을 시켜놓고 앉아 있는데 자부마을 너머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그래도 주인은 느긋했다. 시간이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김치와 함께 내왔다. 쫄쫄 굶어야 할 형편이었는데 얼마나 맛이 있었겠는가. 그 뒤로 몇 차례 통영에서 빼떼기죽을 먹었지만 욕지도 선창에서 먹은 그 맛을 다시 느낄 수는 없었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고메’라 부르는 고구마를 말려서 팥을 넣고 끓인 빼데기죽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펜션이 섬 집 노릇을 하다

다시 욕지도를 찾았다. 이번에는 아내와 아이들도 동행했다. 날씨가 매우 좋았다. 짐을 풀고 시금치재를 넘어 유동으로 향했다. 섬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곳은 최근 유자를 많이 심었다. 시금치재는 유동과 덕동 주민들이 해안도로가 생기기 전에 꼭 넘어야 하는 고개였다. 욕지도 중앙에 천황봉(329m)과 약과봉 사잇길이다. 시금치를 이고 고개를 넘으면 도깨비가 나타나 시금치를 뺏어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전설보다는 오히려 고개를 넘어갈 때 쉬엄쉬엄 쉬면서 갈 만큼 험하다고 해서 ‘쉬어가는 고개’가 ‘쉬엄-치’가 되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수원지를 지나 시금치재를 넘자 밭 주변으로 돌담집 몇 채가 보인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자부마을로 가는 길에 작은 모밀잣밤나무숲이 있다. 욕지도는 바닷길 못지않게 숲길이 좋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꽤 높은 산자락인데도 묵힌 밭이 거의 없다. 고구마 때문이었다. 발길을 막는 반가운 집을 만났다. 지난번에도 이곳을 지나다 집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대나무로 만든 사립문 앞에 파리똥나무(왕보리수나무)와 동백나무가 아치형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인기척이 없다. 그때는 사람이 사는 흔적이 있었다. 주변에 집이 네 채가 있었다. 세 집은 빈집이었다. 그중 한 집으로 들어섰다. 돌담도 지붕도 무너졌지만 장독대만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뚜껑을 열었다. 된장, 간장, 멸치젓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인은 떠났지만 젓갈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빈집이 된 지는 몇 년 되어 보였지만 금방 잘 갈무리하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통영이 내항의 거점이라면 욕지도는 외항의 거점이다. 통영이 아름다운 것은 내항과 외항이 조화롭고 주변에 작은 섬들이 잘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섬사람들이 떠나는 와중에도 더 높은 산자락에 펜션을 짓고 있었다. 이곳만이 아니었다. 섬 곳곳에 펜션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 숙소도 주인이 부산에서 생활하다 퇴직해 들어온 사람이었다. 해안도로 곳곳에 펜션을 알리는 안내판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이미 포화 상태라고 하는데도 새로운 펜션이 지어지고 있었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붉은색 황토밭은 고구마밭이다. 생계 목적으로 심은 고구마는 이제 섬마을 특산품이 되어서 날개 돋친 듯 팔린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몽돌해수욕장에서 군소를 만나다
도동마을은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와 <1박 2일> 촬영지로 알려진 곳이다. 마을 입구에 피어 있는 동백꽃이 아름답다. 덕동은 몽돌해수욕장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은 선창에서 배 바닥을 씻고 있는 주민과 마을 입구에서 만난 노인뿐이었다. 아내가 돌 틈에서 군소를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가만히 물속에 놓아주었더니 달팽이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며 숨어들었다. 주변에는 톳과 미역과 파래가 돌에 붙어 자라고 있었다. 군소가 좋아하는 먹이들이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외해 먼 바다에 우뚝 솟은 섬이라 모래 해수욕장은 없다. 다만 몽돌 해수욕장이 몇 곳 있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고래머리에서 유동을 지나 삼여, 노적, 솔구지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아름답다. 그 길 중간에 욕지 개척 100년 기념비가 있다. 욕지도와 주변의 작은 섬에서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가 발견되었고 각종 석기와 사람 뼈도 발견되었다. 선사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1988년 욕지 개척 100년이라는 기념비는 왜 세운 것일까. 왜구와 해적의 잦은 출현으로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섬에 공식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었다. 임진왜란 후에도 해양 방어 목적으로 군인들만 머물렀다. 백성들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887년(고종 24년)이다. 1988년에 100년 기념비를 세운 것은 이런 사연 때문이다.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정책적으로 백성을 뭍이나 안전한 곳으로 이주케 하고, 수군이 머물던 섬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가 싶었다. 

저녁을 먹고 현금을 찾기 위해 우체국을 찾았다. 좁은 골목길을 서너 번 돌아가는 길에 ‘해녀집’, ‘여관’, ‘다방’, ‘세탁소’ 등이 섬마을의 어둠을 밝혔다. 이 골목이 한때 뱃사람과 작부들이 밀고 당기며 흥정을 하고 풋사랑을 나누었던 곳이리라. 나이 든 해녀가 운영하는 선술집에서 나온 사내 세 명이 부산여관이라는 상호가 별처럼 빛나는 골목길로 사라졌다. 

일제강점기의 욕지도엔 아지(전갱이)와 고등어 파시가 형성되었다. 마산과 서울은 물론 일본과 만주까지 수출했다.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나로도, 거문도 등과 함께 욕지도는 어업 전진기지가 되었다. 가거도처럼 ‘챗배’를 이용해 불을 밝혀 멸치를 잡았다.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고등어회가 비리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다면 과장일까. 직접 먹어보시라. 2013년 5월 사진 / 김준 작가

 

지금도 수족관에는 방어, 농어, 볼락, 고등어, 자리돔, 문어, 전복, 소라 등이 철 따라 가득하다. 내항에는 우럭과 돔을 양식하며 가두리 낚시 체험도 할 수 있다. 고등어 양식도 성공했고, 유동 앞바다에는 참치 양식도 시도되고 있다. 

새벽같이 쏘다녔더니 출출했다. 어제 고등어와 방어회를 맛있게 먹은 해녀집을 찾았다. 물질을 하는 김 씨는 새벽 4시에 나가고 없었다. 남편이 일찍부터 아침을 준비하며 주문한 고등어회를 썰었다. 성게알미역국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아내를 데리러 숙소로 갔다.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김 씨가 ‘대송끝’에서 물질을 마치고 돌아왔다. 망사리에는 앙장구라 부르는 말똥성게, 문어 한 마리, 돌미역 약간, 전복 4개, 모자반 약간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잠수복을 입은 김 씨의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어젯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던 늙은 해녀의 가게가 생각났다.

INFO.
미륵도 삼덕항에서 하루 8회 운항 
시간 6:45, 8:30(주말에만), 10:00, 11:00, 13:00, 14:00, 15:30
운임 7600원(편도)
소요 시간 약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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