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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김준의 섬 여행 31] 물메기, 섬마을을 덮다 통영 추도
[김준의 섬 여행 31] 물메기, 섬마을을 덮다 통영 추도
  • 김준 작가
  • 승인 2013.02.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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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여행스케치=통영] 땅을 파고 흙을 뜨는 데 사용하는 연장을 ‘가래’라고 한다. 넓적해서 붙인 이름일까. 통영 추도(楸島)는 왜 하필 가래섬이라고 할까. 작은 섬치고는 물이 좋아 작은 다랑논을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또 산비탈을 일궈 고구마 농사를 지어 식량을 삼기도 했다. 논밭이 비탈진 탓에 소와 지게를 이용하고, 가래질을 해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일까. 그러나 지금은 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희망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큰 마을 대항리가 있고, 서쪽에 물메기를 많이 잡는 미조리가 자리하고 있다. 그 사이에 샛개, 물개 등 두 마을이 있지만, 물개는 시나브로 빈집이 늘더니 마을이 없어졌고, 샛개에는 몇 가구가 남아 있다. 대항리 선창에 도착하자 ‘미기’가 허연 속살을 드러내며 반겼다. 통영에서는 물메기를 ‘미기’라 부른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물메기는 꼼치과 물고기로, 지역에 따라 곰치, 물미기, 잠뱅이 등으로 부르며 겨울에 많이 잡힌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통영 추도에서  물메기는 겨우내 갈무리해 생활하는 1년 농사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강원도 산골에서 보았던 명태 덕장이 생각났다. 섬마을에서 물메기 덕장을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배 안에서 만난 젊은 아줌마를 따라 나섰다. 보건소 소장님이다. 추도의 유일한 기관장이다. 보건소에 앞서 초등학교가 있었다. 해방을 1년 앞두고 문을 열어 8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러나 현재 학교 운동장 구석에 있는 철봉은 녹이 슬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교실에는 물메기 통발과 덕장 등이 자리를 잡았다. 벽에 걸린 칠판에는 졸업생들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섬 길은 바다와 접해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크고 작은 마을과 섬을 지키며 살고 있는 섬사람을 만날 수 있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해월댁의 손맛에 반하다

보건소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샛개로 향했다. 그곳에 해월댁이 살고 있다. 통영에서 섬을 지키며 사는 친구 윤 씨가 몇 차례 이야기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택호이다. 그녀의 집은 해와 달이 뜨는 곳에 있었다. 하룻밤을 묵기로 한 집이다. 샛개로 가는 길목에 있는 외딴집이다. 친구는 추도에서 제일 미녀라고 소개했다. 윤 씨는 집도 집이지만 집주인에 반해 덜컥 나중에 또 하룻밤 자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마침 해월댁은 갓 잡아온 싱싱한 물메기 껍질을 벗겨놓고 직접 키운 무를 채 썰고 있었다. 물메기 회무침을 준비하는 참이다.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곱다. 안방에 걸려 있는 젊을 때 사진을 훔쳐봤다. 역시나 미인이다. 함경남도 흥원항이 고향이란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해월댁은 추도에서 제일 예쁜 어머니다. 작은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추도 물메기가 유명한 것은 산란을 하러 찾아오는 바다와 위장병도 낫게 하는 좋은 물과 해풍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전쟁 때 내려와 낙도 어린이를 돕는 봉사 활동을 하다 섬에 자리 잡았다. 

동행한 연대도 어촌계장이 물메기 포를 뜨자 해월댁이 식초로 무쳤다. 그래야 물컹물컹한 살이 꼬들꼬들해진다. 큰 그릇에 준비한 재료를 넣고 비볐다. 저녁 늦게까지 마신 술에 속이 뒤틀려 일어났다. 해월댁이 회무침을 하고 남은 뼈와 내장을 넣고 물메기탕을 끓였다. 시원하다. 술꾼들이 왜 마누라보다 물메기탕을 그리워하는지 알 것 같다. 밤샘 술타령에 쓰린 애주가의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용머리는 미조리 사람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태풍을 막아주고 가뭄이 들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 하나, 풀 한 포기도 손댈 수 없었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용머리 나무는 절대 몬 건딘다”
대항마을 해월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미조리로 향했다. 그런데 좋은 길을 놔두고 산길을 택했다. ‘찾아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추도의 옛길을 찾아 탐방로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산비탈에 돌을 쌓아 논밭들이 만들어져 있다. 정상 너머 맞은편에 미조리가 있다. 가는 길에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 

미조리가 마을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용머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면 지나칠까. 섬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배를 댈 수 있었고 마을을 이룰 수 있었다. 섬사람들은 그곳을 천하의 명당이라 했다. 또 그곳에 뫼를 쓰면 가뭄이 들고 샘물이 마른다고 믿었다. 마을 윗새미, 아래새미, 참새미 세 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마을 샘이 모두 말라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도력이 높은 도사를 모셔서 용머리로 갔다. 벼랑뿐인 곳에 황토가 한 자리 있었다. 그곳에 누가 묏자리를 본 것이다. 즉시 묘를 옮기자 학이 날아오르고 비가 왔다고 한다. 그 뒤로 섬사람들은 용머리의 나무 하나도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바람을 막아주고, 꼭 필요한 물을 지켜주니, 이런 명당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농사를 걱정 없이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추도 물메기가 명품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우물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보릿고개에 쌀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겨울철 물메기로 농사를 대신할 수 있었던 것도 우물 덕분이었다. 

새로 만든 선착장 끝에서 갈매기들이 휴식을 취하며 물메기 손질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물메기를 갈무리한 후 버려지는 것을 노리는 게다. 겨우내 계속되는 섬사람들의 물메기 작업은 갈매기에게도 1년 농사 격이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갈매기들은 우물 쪽이 아니라 물질을 하는 해녀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대항리에 하나뿐인 식당에서 제대로 된 물메기탕을 맛보지 않았다면 겨울 추도 여행은 무효다. 2013년 3월 사진 / 김준 작가

‘미기’라 해야 맛이 있다
메기를 통영에서는 ‘미기’라 부른다. 메기 모양을 한 물메기는 ‘바다메기’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미기’라고 한다. 또는 ‘물미기’라고도 한다. 서해안과 남해안(인천, 여수, 남해, 통영)에서는 물메기, 마산과 진해에서는 물미거지(혹은 미거지), 서천 장항에서는 물잠뱅이, 동해에서는 꼼치와 물곰으로 부른다. 꼼치(Liparis tanakai), 물메기(Liparis tessellatus), 물미거지(Crystallichthys matsushimae)는 쏨뱅이목으로 꼼치과에 속한다. 

추도에서 잡히는 물메기는 꼼치다. 둘은 생김새가 비슷한데다 이름도 혼용되어 더욱 구별하기 어렵다. 하지만 물미거지는 두 생선과 확실하게 구별된다. 분홍색 몸에 달걀모양의 무늬가 있다. 지느러미에도 같은 무늬가 있다. 


서해에서는 안강망 등 그물로 잡지만 남해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통발로 잡는다. <자산어보>엔 해점어(海鮎魚)로 바다메기(海鮎魚), 홍달어(紅鮎), 포도메기(葡萄鮎), 골망어(長鮎)가 나온다. 해점어는 “큰 놈은 길이가 두 자를 넘는다. 머리가 크고 꼬리는 뾰족하다. 눈은 작다. 등이 푸르고 배는 누렇다. 수염은 없다. 고깃살이 매우 연하고 뼈 또한 무르다. 맛은 담백하고 좋지 않다. 술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썩지 않는 것은 삶으면 고깃살이 다 풀어져버리므로 썩기를 기다렸다가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해점어의 속명은 미역어(迷役魚)다. 손암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했던 우이도에서 꼼치를 ‘미기’, ‘미이기’라고 부른다. 이를 음차한 것이 미역어이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는 바다메기를 물메기로, 홍달어는 꼼치로 추정한다. 

통영 미기는 모두 ‘추도 미기’다
희망봉을 넘어왔더니 배가 출출했다. 작은 섬마을에 식당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동네에서 굶기야 하겠냐 싶어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회관 앞 우물은 해바라기하기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물메기를 손질해 씻는다. 배를 가지고 물메기를 잡는 사람은 10가구도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 물메기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우물에 깨끗이 씻어 덕장에 건조하는 일을 돕는다. 많이 잡는 해에는 하루에 700여 마리까지 이른다. 한 사람이 보통 통발을 3000개에서 5000개씩 놓는다. 여러 곳에 통발을 놓기 때문에 새벽에 나가 통발을 털어 아침에 돌아온다. 작년에는 물메기가 많이 잡히지 않아 10마리 한 뭇에 22만원까지 팔렸다. 금년에는 1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보통 한 집에서 5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다. 대항리에서 만난 주민은 미조리에선 1억까지 소득을 올린 사람도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추도 물메기가 명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추도 주변 바다가 물메기들이 산란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지만, 위장병을 고칠 만큼 좋은 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마을이 서쪽 양지 녘에 있어 하늬바람과 햇볕이 명품을 만들어낸다. 

12월에서 시작해서 2월까지 3개월 동안 물메기를 잡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때가 되면 정신없이 바쁘다. 물메기잡이나 말리는 일은 미조리 사람들의 1년 농사다. 금년처럼 많이 잡힐 때면 하루에 수백 마리씩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몇 차례 씻어야 한다. 그리고 받는 품삯이 물메기 예닐곱에서 열 마리다. 물메기를 잡는 집은 10집도 되지 않는데 집집마다 덕장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찬이나 국을 끓여 먹기도 하지만 팔기도 한다. 우물가에 노인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고 점심도 같이 만들어 먹는다. 오늘 점심은 물메기죽이다. 

미조리 골목마다, 지붕마다, 빨랫줄마다 물메기가 그득하다. 마을이 물메기로 덮여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통영에 나온 물메기는 모두 추도 물메기로 둔갑을 한다. 심지어 통영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잡은 물메기까지 추도물미기로 둔갑을 하기도 한다. 

통영 섬 지킴이 윤 씨가 그랬듯이 나도 덜컥 해월댁과 약속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 오겠다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해월댁.

INFO. 가는 길 
통영여객터미널에서 추도(미조마을)로 가는 배가 있다.  
출항 시간 1일 2회 7:00, 14:30(1시간 10분 소요)
요금 7350원(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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