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스토리가 있는 여행] 강릉 대기리 노추산 돌탑길 오지 산골에 세운 3000개의 꿈
[스토리가 있는 여행] 강릉 대기리 노추산 돌탑길 오지 산골에 세운 3000개의 꿈
  • 송보배 기자
  • 승인 2012.1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여행스케치=강릉]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노추산 자락에는 3000개에 달하는 돌탑이 있다. 한 할머니가 가족의 건강을 염원하며 무려 25년에 걸쳐 쌓았다는데, 곡절 있는 그 사연이 알려지며 이제는 대기리의 명소가 되고 있다.

강원도 강릉의 노추산은 강원도 강릉과 정선에 걸쳐 있는 1322m의 산이다. 신라시대에는 설총이, 조선시대에는 율곡이 노추산 이성대에서 학문을 갈고닦았다. 특히 율곡과 밤나무 1000그루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길을 지나던 한 도사가 어린 율곡의 관상을 보더니 호랑이에게 상을 당할 운명이라 했단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밤나무 1000그루를 심어야 한다고 전하기에 그 말대로 1000그루를 심었는데 나중에 도사와 함께 와서 확인을 하니 어쩐 일인지 딱 한 그루가 모자랐다. 도사가 호랑이로 변해 공격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나무 한 그루가 다급하게 “나도 밤나무요”하고 나섰다. 덕분에 호랑이를 쫓아내고 율곡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단다. 


바로 그 노추산 자락에 명소가 생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3000개의 돌탑이 빼곡히 들어선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탑골이 그곳이다. 탑골을 조성한 이는 차옥순 할머니로 2011년 향년 68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무려 25년 동안 노추산에 기거하면서 탑을 쌓았단다. 그가 탑을 쌓기 시작한 연유는 이렇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탑 3000기가 세워져 있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30여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들 둘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편도 정신질환을 앓는 등 할머니의 집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자신이 일러주는 장소에 돌탑 3000기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 말하였다. 이후부터 할머니는 꿈속 장소인 대기리 노추산 자락에서 기거하며 하나둘 돌탑을 올리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본 장소를 찾기 위해 무려 2년 동안 헤맸대. 그러다 여길 발견한 거야. 비가 많이 오는 날에 노추산 자락에 들어왔다는데 꿈에서 본 모습 그대로여서 산자락에 발을 들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더래. 개울이 불어서 옷도 다 젖었는데, 여기 오니까 몸도 따뜻해지고 그저 좋았다고 그래 말하더라고.”

대기3리에 살고 있는 최선웅 씨가 할머니에게 전해 들은 말이다. 대기3리 이장인 최대집 씨도 다리도 생기기 전, 배꼽까지 오는 개울을 건너는 할머니를 몇 번 보았단다. 얼굴도, 연고도 모르는 이 외지인은 마을에 나오는 일도 거의 없이 조용히 돌탑 쌓는 일에만 열중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노추산에 무속인이 들어온 줄로만 알았단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노추산 송천에서 등산객들이 쉬어가고 있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송천. 다리가 없을 때 할머니가 맨몸으로 강을 건넜다 한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노추산이 범상치 않은 산이란 얘기가 많이 있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옛날에 산불이 크게 났는데 설총 선생과 율곡 선생이 수학하던 이성대 근처까지 불길이 번졌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불을 꺼버리더래.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해. 무속인들이 종종 수행한다며 산을 찾기도 했는데 차옥순 할머니도 그런 사람인 줄 알았지.”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시간이 흘러도 떠나지 않고 우직하게 탑을 쌓는 모습을 보고 하나둘 할머니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워낙 조용히 탑 쌓는 데에만 열중하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리 살갑게 굴지 않았던 할머니였다. 이웃사촌이라고 음식을 나눠주는 주민이 있어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단다. 사람이 찾아오면 문전박대는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기지도 않았다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살가운 왕래가 없었지만, 그래도 25년의 세월은 알게 모르게 정을 도탑게 했던 모양이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지난해 태풍으로 탑 몇 기가 휩쓸려 무너졌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관에서 산불 발생을 우려해 돌탑을 철거한다고 하자 나서서 막아준 것이 바로 마을 사람들이었다. 최대집 이장이 하는 말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쌓은 돌탑을 어떻게 철거하냐면서,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를 감쌌단다. 결국 돌탑은 보존되었고, 할머니는 고맙다는 뜻으로 마을을 위한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할매가 마을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쌓은 탑이래이.”

대기3리의 노추산 등산로에 들어서자 10분도 되지 않아 하나둘 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민인 최선웅 씨가 가리킨 방향에는 사람 키보다 머리 하나가 큰 탑 2기가 서 있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았기 때문일까. 다른 탑보다 크고 웅장하게 세운 것이 한눈에도 정성을 들인 모양새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이기 뭐라 써 있나?” 관광객의 낙서를 진지하게 읽어보는 대기리 주민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입구의 작은 개울을 건너자 곧 수천 개의 탑이 성벽처럼 도열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솜씨를 부리지 않은 평범한 탑이지만 하나하나 쌓은 이의 정성이 엿보인다. 이런 탑이 등산로의 좁은 길을 따라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하니 등산로를 오르는 걸음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거 카메라 가방 조심하드래요.”


대기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둘러보는 길, 두둑한 모양의 카메라 가방이 걸음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불안했는지 마을 사람 몇이 뒤에서 주의를 준 다. 별다른 접착제나 장치 없이 돌을 쌓아 올렸으니 혹 할머니가 애써 쌓은 돌탑이 훼손될까 걱정이다. 얼마쯤 걷다 머릿돌이 떨어진 작은 돌탑을 보자 “뭐이나? 이 돌이 왜 나와 있지?” 마을 사람들이 심각한 얼굴로 떨어진 머릿돌을 주워 올린다. 한 사람이면 충분히 탑을 손볼 수 있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머릿돌이 세워질 때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탑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탑들이 잘 보존된 이유를 이들의 행동을 보니 알겠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탑 사이 오솔길로 몇몇 사람이 산책을 하고 있다. 2013년 1월 사진 / 송보배 기자

할머니가 기거했던 움막 비닐에 뭔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자 대기리 사람들이 또 금세 모여 안경을 벗었다 썼다,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뒤로 젖혔다 하면서 양미간을 찌푸린다. “뭐라고 써 있나? 읽어보래이.” 주민 셋이 모여 읽는 작은 글씨의 내용인즉 이렇다. “2012년 모월 모일 △△랑 ○○가 왔다 감.”

할머니가 살았던 움막은 몸을 펴고 눕기도 좁은 한 뼘 공간이다. 한데 나름대로 돌로 담을 쌓아 옹색하게나마 마당도 갖추었다. 좁고 추운 움막에서 25년 동안 지내며 수행 아닌 수행을 해야 했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수십 년 동안 춥고 힘들게 지냈을 생각을 하니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지만 안쓰러운 마음이다. 할머니가 식수로 마셨다는 물웅덩이에는 빨간 바가지가 흔들거리고, 할머니의 좁은 움막 안에는 빗자루며 포대 자루 같은 옹색한 살림살이가 포개져 있다. 2011년 추석 무렵 작고하셨다는데 주인이 잠깐 마실 나간 곳인 양 사람의 흔적이 역력하다. 

“3000개를 다 쌓기 전에는 방송에서 취재를 나와도 숨어버리고, 사람들도 별로 반기지 않았어. 조용히 할 일만 했지. 완성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싫었나봐. 그러다 탑 3000개가 완성되니까 하는 말이 ‘이제 다 완성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구경했으면 좋겠다’ 그러더라고.”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대로 대기리 노추산 돌탑길은 알음알음으로 알려져 지난여름과 가을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대기리 마을 사람들 추산으로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갈 동안 한 달에 2000명 정도의 관광객들이 돌탑길을 오갔단다. 왕산면사무소에서도 노추산 돌탑길에 ‘모정(母情)탑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안내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새해에는 노추산 모정탑길을 오토캠핑장과 삼림욕장으로 발전시킬 것이란다. 가족의 평화와 건강을 위해 무려 25년을 기도한 할머니의 애틋한 모정을 기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는 계획이다.   

Tip. 주변 여행지 
강릉시에서 왕산면으로 넘어오는 길에 금강소나무 원시림을 보존한 강릉솔향수목원(033-660-2320~2)이 있고, 왕산면 소재지에서 대기리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1세대 커피 명인의 수제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커피커퍼 왕산점(033-655-6644)이 있다. 커피커퍼 왕산점은 커피뮤지엄과 함께 조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나무를 재배해 커피를 생산한 곳이다. 돌탑만 보고 가기 아쉬운 이들이라면 왕산면의 명소를 묶어 함께 여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Tip.
대기리 산촌체험학교에서는 2012년 12월 28~30일에 ‘백두대간 24 겨울축제’를 개최한다. 산촌체험학교 운동장 전체에 얼음을 얼려 얼음 축구를 비롯, 각종 겨울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제 2회를 맞은 축제는 여타 겨울 축제와 달리 입장료가 없으며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무료이다. 얼음썰매, 눈썰매는 물론 연 만들기와 팽이 돌리기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감자와 가래떡을 모닥불에 구워 먹으며 동심으로 돌아가봐도 좋을 것이다. 
주소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953(용수길 11) 

INFO. 모정탑길 
주소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산716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