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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치유의 숲 ②] 맨발로 걷고 뛰고, 천년의 숲이 전하는 생명력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치유의 숲 ②] 맨발로 걷고 뛰고, 천년의 숲이 전하는 생명력 광양 백운산자연휴양림
  • 황소영 기자
  • 승인 2020.08.14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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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황소영 기자
사진 / 황소영 기자

[여행스케치=광양] 편백나무 숲에서 갑자기 만난 폭우 / 순간 산의 정적은 깨어지고 / 발을 내딛을 수 없는 / 비의 세상에 갇혀 / 먼먼 시간 속으로 간다 / (중략) / 나는 그 자락을 잡고 / 젖은 발로 편백나무 숲 어딘가로 / 이미 멀리 가고 있다 -- 정유준 시 ‘비의 모든 것’ 일부

지겹도록 내린 비는 겨우겨우 잦아들었지만 하늘은 아직도 짙은 회색으로 덧칠해져 있었다. 광양읍을 벗어난 21번 버스는 동백이 어여쁜 옥룡사터를 지나 종점인 백운산자연휴양림을 향해 신나게 내달렸다. 투명한 차창으로 엄지척, 손가락을 세운 억불봉(997m)이 보였다. 하늘의 색깔과 상관없이 산은 먼 곳에서도 위엄 있고 근사하게 반짝였다. 신라시대 고승 도선국사가 입적할 때까지 머물러 ‘천년의 숲’이라 불리는 백운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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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림 내 황톳길.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산책할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기자

다양한 체험 가득, 백운산자연휴양림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진상면·옥룡면과 구례군 간전면에 뿌리를 둔 백운산(1222m)은 도내에선 지리산 노고단(1507m) 다음으로 높은 산이자 호남정맥의 정점이 되는 봉우리다. 백운산엔 봉황·여우·돼지의 영험한 기운이 흐르는데, 봉황의 정기는 조선시대 문신 최산두, 여우는 몽고의 왕비가 되었다는 월애부인, 돼지는 ‘큰 부자의 땅’이란 의미로 광양시는 이를 포스코, 컨테이너 부두, 도내 재정 자립도 1위와 연관 짓는다. 백운산자연휴양림 치유의 숲에 각각 ‘봉황돋움길’ ‘여우오름길’ ‘돼지꿈길’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도 전설 속 세 동물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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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돋움길 등 6개의 코스가 구비된 치유의 숲. 사진 / 황소영 기자

봉황돋움길(2.2km)은 문필봉의 정기를 받는 등용정을 지나 노각나무군락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사색에 잠기는 길이고, 여우오름길(2.1km)은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침엽수림으로 이뤄진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지혜를 얻는 숲길이다. 돼지꿈길(0.6km)은 다복한 기운을 품은 숲으로 온화한 기후요법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그밖에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던 선조들의 삶의 터전을 돌아보는 숯가마옛길(2.0km)과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을 위한 무장애 테크로드 햇살마루길(0.7km), 운동요법에 맞춰 역동적인 숲 체험이 가능한 심신수양길(2.4km)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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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 데크에서 여유를 즐기는 이용객들. 사진 / 황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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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체험관 앞의 연못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사진 / 황소영 기자

휴양림 입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한옥 2층 건물인 목재문화체험장이 나온다. 갖가지 목재놀이기구와 목공활동을 통한 영유아 오감자극을 비롯해 청소년들에겐 진로체험의 기회를, 성인에게는 취미활용과 목공기술의 교육장으로 운영되는 목재문화 테마파크다. 건물 1층엔 미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매화공방과 목공예 DIY 강좌가 펼쳐지는 백운공방이 있고, 2층에는 목공예체험실인 동백공방, 친환경 목재장난감이 가득한 나무상상놀이터가 있다. 다만 2020년 8월 현재 코로나19로 실내 공간에서 시행되는 모든 활동은 중단된 상태다. 운영 재개를 기준으로 했을 때 체험료는 1000원에서 3000원, 놀이터는 6000원이다. 매 체험은 2시간씩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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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다복다복’프로그램에 참여한 다율이 가족. 맨발로 걸으면 더 즐겁다. 사진 / 황소영 기자

뺨을 토닥이는 바람, 발을 간질이는 흙
백운산 남쪽기슭 도솔봉~따리봉~한재~억불봉 사이에 자리한 자연휴양림은 산막, 생태숲, 야영장, 황톳길, 잔디광장 등의 시설을 두루 갖춰 주말이면 예약이 힘들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이다. 980여 종의 식물과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해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데다 휴양림 내 55ha 면적에 삼나무, 편백나무, 리기다, 테에다, 참나무 등이 우거져 광양시민은 물론 멀리 타지의 손님까지 불러 모은다. 치유의 숲에서 진행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더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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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이 가능한 산막 1지구와 2지구, 오토캠핑장 등이 구비된 백운산자연휴양림. 사진 / 황소영 기자

2019년 6월 개장한 백운산자연휴양림 산림치유프로그램에는 복식호흡~풍욕~명당명상~가족인터뷰~해먹~아로마테라피~족욕으로 이어지는 가족 대상 ‘다복다복’, 청소년과 성인이 참여해 오감열기~산림욕체조~등용정오르기~건강호흡~노각나무명상~아로마테라피~족욕 순서로 진행하는 ‘한걸음 두걸음’, 또 장애인과 65세 이상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싸목싸목’, 감정노동자인 직장인이 대상인 ‘여우야 놀자’ 등이 있다. 대다수 프로그램은 3월부터 12월까지, 15명 내외의 소그룹으로 진행한다. 누구나 신청 가능한 한겨울 프로그램 ‘힐링테라피’도 있다. 계절과 종류에 상관없이 휴양림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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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운동마당으로 들어서는 이용객들. 다양한 운동기구가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사진 / 황소영 기자

다율이와 하윤이 가족이 ‘다복다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본래 두 팀이었는데 한 팀이 취소를 하는 바람에 오히려 단출하고 여유 있는 길이 되었다. 진행을 맡은 공희정 산림치유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제일 먼저 솔방울 체조를 한다. 커다란 솔방울이 가족과 가족 사이의 온기를 타고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이제 신발을 벗을 거예요.” 머뭇대는 첫째와는 달리 둘째 하윤이는 ‘자연인’ 포스를 뽐내며 씩씩하게 양말을 벗는다. “발의 감각을 자극해 집중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어요. 혈액순환도 잘 돼 스트레스를 줄이고 숙면도 취할 수 있습니다.”

꼭 효능 때문이 아니어도 맨살로 흙을 밟는 행위는 즐거운 경험이다. 아이는 햇살이 드는 따뜻한 흙과 수분을 머금어 차갑고 질척한 흙, 솔잎과 잔돌이 깔린 숲을 걸으며 자연이 주는 행복감을 잔뜩 만끽하고 있었다. 바닥창 두꺼운 신발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럴 땐 살갗의 감촉을 그대로 느끼며 걷는 이들이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하다.

“아잇, 차가워!” 산에서 내려오는 샘물에 손을 적시는 모습. 사진 / 황소영 기자

“주변의 나뭇잎을 활용해 가족 나무를 만들 거예요. 뿌리를 깊이 내리고 가지를 넓게 뻗은 나무는 꼭 가족을 닮았거든요.” 아이들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과 키 작은 풀잎을 주워 모은다. 나뭇잎마다 향기가 다르고 촉감이 달랐다. 앞면과 뒷면의 결이 다르다는 것도 알아챈다. “여긴 부드럽고 이쪽은 까끌까끌 거려요.” “엄마, 개구리처럼 생긴 잎이야. 이건 하트 모양이네!” 명상쉼터에 앉아 모아온 재료들로 각자의 작품을 만든다. 바구니 안에 섞여있던 잎과 가지가 하얀 천 위에서 작품으로 탄생한다. 키키집과 토끼집, 이름도 아이들이 직접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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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나뭇잎과 가지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고 이름도 직접 지어본다. 사진 / 황소영 기자

넓은 나뭇잎이 이번엔 편지지가 된다. 글씨를 모르면 그림으로 대체한다. 거창한 문장력도 그림 실력도 필요 없다. 커다란 나무가 시원한 바람을 후후, 불어넣어준다. 바람 속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생명의 숨결이 느껴진다. 차갑게 담아온 매실차는 덤이다. 몇 잔씩 거푸 마시며 남은 더위를 씻어낸다. 원래대로라면 아로마테라피로 마무리 되지만 실내 활동은 중지됐다. 신발을 벗어뒀던 정자로 돌아와 발을 씻는 것으로 2시간 정도의 숲 활동을 매듭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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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4대 계곡 주변엔 숫불을 이용해 굽는 광양닭숯불갈비가 유명하다. 사진 / 황소영 기자

백운산계곡에선 닭숯불구이지!
취사도구와 부식거리를 갖고 왔다면 객실 주방과 야영 데크에서 직접 만들고 먹는 게 가능하지만 광양의 대표 음식 ‘광양 9미’, 그러니까 참숯을 피워 구리석쇠에 구워낸 광양불고기, 성인병과 관절염에 효과가 좋은 고로쇠, 섬진강 하류에서 채취한 갱조개 재첩, 망덕포구의 가을전어, 쌀과 막걸리를 발효해 만든 기정떡, 두말하면 잔소리 광양 매실차, 백운산 진미 닭숯불구이, 밀시감과 대봉감으로 만든 곶감, 섬진강과 남해가 합류해 더 맛있는 숯불장어구이 중 적어도 하나는 먹고 가야 아쉽지 않다.

백운산자연휴양림이 있는 옥룡면에서 가장 유명한 건 닭요리다. 예부터 숯불구이가 발달했던 곳이라 닭요리 이름도 ‘광양닭숯불구이’. 얇게 저며 손질한 닭을 석쇠 위에 펼쳐 구워 먹는데, 양념이 강하지 않은데다 기름기가 쏙 빠져 닭 특유의 담백함과 고소한 풍미가 뛰어나다. 광양 도심에서 먹는 불고기, 강 하류에서 먹는 장어구이도 좋지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까진 백운산 4대(성불·동곡·어치·금천) 계곡 인근의 닭숯불구이만큼 제격인 음식도 없다. 보통 두메산장(061-762-0337), 학사정(061-762-3868), 천리향(061-763-0229), 병암산장(061-762-6781) 등이 유명하지만 이집 저집 순위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저마다의 비법으로 최상의 맛을 제공한다. 가격은 한 마리에 5만 원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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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자연휴양림. 사진 / 황소영 기자

INFO 백운산자연휴양림
주소 전남 광양시 옥룡면 백계로 337
문의 061-797-2655
입장료 1000원
주차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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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막 1지구와 2지구, 제1야영장과 2야영장, 산림문화휴양관, 카파반 등의 숙방동이 있는 숲속의 집.사진 / 황소영 기자

INFO 숲속의 집
산막1지구와 2지구, 제1야영장과 2야영장, 산림문화휴양관, 카라반 등의 숙박동이 있다. 산막은 4인실 주말 기준 5만 원, 캐빈하우스 5인실 6만 원, 카라반 14만 원, 야영장은 7000원이다. 성수기는 7월 15일부터 8월 24일까지로 평일에도 주말 요금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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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치유의 숲 센터. 사진 / 황소영 기자

INFO 산림치유프로그램
오전 10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하루 2회 진행하며 체험요금은 일반 5,000원이다. 팀당 15명 내외로 최소인원 5명 충족 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경우 광양농협 앞에서 21번 버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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